나가는 글
시리즈의 출발은 ‘가부장제의 훈육에서 벗어나는 다양한 몸의 시도들이 여성의 주체성 회복 과정이지 않을까?’라는 질문이었다. 창작자가 그리는 여성의 이미지가 가부장제의 훈육에서 벗어나려는 다양한 몸의 시도로 이어질 때, 이는 곧 여성의 주체성 회복 과정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여성의 몸과 역할을 통해 '여성성을 수행하지 않는 여성 재현'을 이뤄낸 <여고생 임연수>와 <이대로 멈출 순 없다>, <어글리후드>는 질문에 대한 긍정적 답변이 된다.
세 웹툰은 각기 다른 결을 지닌 작품이지만 공통되게 ‘가부장제가 부여한 여성성을 수행하지 않는 여성 캐릭터’를 통해 여성을 재현한다. 여성성을 수행하지 않는 여성의 재현은 얼핏 남성성 모방으로 보이며, 어떤 의미에서는 모방이라고 할 수도 있다. 여성성이 남성성의 여집합으로 여겨지며 열등함의 기표로 읽혀 온 역사가 길기 때문이다. 이는 이성과 감성이 우등과 열등의 관계로,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이 더 중요한 것과 사소한 것으로 읽히던 역사와 맥을 같이 한다. 미디어 속 여성 재현 역시 이러한 맥락 속에서 한정된 여성성에 머무는 사례가 아직은 더 많고, 이는 현실에 존재하는 다양한 여성의 성질/성향과는 별개로 ‘여성성’의 개념을 한정하는 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때문에, 새로운 여성 캐릭터를 통해 다면적 인간군상을 보여주는 일은 테레사 드 로레티스가 말하는 “소문자 여성women과 가부장제가 재현해 내는 이미지로서의 대문자 여성Women을 구분”하도록 “실존하는 소문자 여성에 대한 말을 더 많이 만들어(손희정, 2019에서 재인용)” 내는 한 가지 방법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여성 재현은 여성성과 남성성의 이분법적 대비로 구성된 가부장제 사회에 균열을 낼 수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성은 '현모양처'와 같은 모범적 규범으로, "아이는 엄마가 키워야지"나 "여자는 이래야 해" 또는 "남자는 이래야 해"와 같은 성역할 관념으로, '남자가 좋아하는 여자 특징'처럼 암묵적인 태도나 뉘앙스로 전해져 왔다. 그리고 여성성에 부합하지 않는 여성은 쉽게 억압의 대상이 되거나 삭제되었다. 일례로, 1990년에 성감별 낙태가 정점을 찍은 이유 중 하나는 '백말띠에 태어난 여자는 드세다'는 미신이었다(뉴스1, 2017.08.30.). 성감별 낙태가 기승을 부릴 때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는 자의식과 함께 태어난 1990년대생들은 ‘능력만 있으면 뭐든 할 수 있다’라는 신자유주의식 자기 계발 환상을 체화하며 자랐고, 고용 성차별을 통해 그 논리가 젠더 앞에 무너지는 경험을 했다. '여자라서 죽었다'는 사실과 구조적 폭력을 외면하는 사회가 가시화된 강남역여성살해 이후에도, 이 알고리즘은 신당역 스토킹 살해와 같은 사건으로 끊임없이 반복되었다. 이처럼 성차별과 폭력을 통해 일상에서 '2등 시민'의 위치를 통감한 여성들은 이제 가부장제가 요구하는 여성성 수행이 백해무익하다고 판단하기에 이르렀는지 모른다. 이는 '비혼' 현상으로 나타나기도, 사회가 말하는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으로 치장하기를 거부하는 ‘탈코르셋’ 운동의 흐름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부조리와 차별에 참지 않고 맞서는 당당한 태도와 강한 언행, 또는 퀴어 섹슈얼리티의 외형적 수행으로 나타나는 '걸크러시'는 여성에게 카타르시스를 주며 어필하는 하나의 기본 코드로 보이기도 한다. 대중문화와 미디어 속 여성 재현은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점점 더 확장되고 있다.
이러한 흐름에서 웹툰은 가부장제가 불허하는 여성 캐릭터들, 여성성을 수행하지 않고 이성 연애를 하지 않으며 '드세고' 강한 여성 캐릭터를 다양한 얼굴과 몸으로 드러낸다. 이는 그간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고 왜곡해 재현하던 여성 신체와 섹슈얼리티를 실존하는 몸의 반영으로 바꾸어 가는 시도이기도 하다. 여성 캐릭터가 많아지고 다양해지며 이제는 '여자의 편도, 여자의 적도 여자'인 서사 역시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이와 같은 여성 재현은 여성 독자에게 카타르시스를 줄 뿐만 아니라, 대상화되지 않는 몸과 능동성을 통해 ‘실존하나 보이지 않던 여성들’을 가시화하며 주체성 회복에 기여한다. 나아가, 여-남 성별의 전복적 배치와 역할 수행을 통한 젠더 반전은 가부장제의 허용 범위 바깥에서 '여성 인간'을 상상하는 기반이 된다. 가부장제를 위협하는 존재가 괴물이나 신화가 아닌 평범한 여성 인간의 모습과 이야기로 재현되기 때문이다.
앞으로 가부장제 사회 바깥에 있는 여성의 모습이 더 많이, 더 다채롭게 재현되기를 기대한다. 관념 속 여성과 여성성의 범주가 실존하는 모든 여성의 모습으로 확장되기를 기대한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여성이 자유로워지기를 기대한다. 늘어날 '날뛰는 여자들'을 기대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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