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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knight Mar 02. 2019

꽤 오랫동안 산타를 믿었다.

크리스마스 아침에 일어나면 항상 머리맡에 비닐봉지에 담긴 선물이 나를 기다렸다.

선물은 과자, 샤프, 노트 등 까무러치게 좋아할 만한 것은 아니지만 초등학생 인생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그리고 소소한 행복을 주는 물품들로 구성되어있었다. 

그리고 선물 꾸러미에는 어김없이 편지가 있었는데 "부모님 말씀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하라" 는 내용이 매년 반복되었다. 역시 산타할아버지는 일관성 있는 사람이었다.


한 번은, 아니 몇 번은 산타의 정체를 밝히기 위해 형과 작전을 짜기도 했다.

자는 척을 하다가 산타의 기척이 느껴지는 순간 일어나서 덮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 작전은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는데 그 이유는 이상하게도 우리는 매 번 잠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 이유를 알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인데 너무나 당연하게도, 우리는 너무나 피곤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형과 나는 너무 왕성한 활동을 했다. 아침 일찍 학교를 갔고 돌아와서는 매번 놀기 바빴으며 걷기보다는 뛰는 것을 선택했다. 가끔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도 역시 그랬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그제야 산타 포획 작전 실패의 이유를 납득할 수 있었다.


산타의 정체를 알게 된 것은 아마도 중1 때인가.. 였다.

우연히 부엌문을 열다가 선물을 사서 막 들어오시는 어머니와 눈이 마주친 것이다.

어머니와 나는 약 1.7초간 정적을 마주했다.


사실 그전부터 산타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형은 그전부터 이미 산타는 없다는 이론에 편승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냥 믿고 싶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굳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하면서까지 스스로의 동심을 깨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어머니와 삼촌이 산타에게 전화해서 내가 갖고 싶은 것을 전해주겠다는 말까지 믿었던 나는, 크리스마스를 앞둔 어느 겨울날, 그렇게 동심을 한 꺼풀 벗어내고 있었다.


가끔 그 시절을 생각해보면,

우리가 잘 때까지 기다렸다가 선물을 놓으신,

아직 세상의 색에 물들지 않은 아들의 동심을 깨고 싶지 않았던 어머니의 사랑이 느껴지면서도,

지금 내가 아는 어머니가 정말 그 어머니였다는 사실이 실감이 되지 않는다.



덧.

마지막 줄은 어머니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는 아니다.

단지, 지금과는 다른 시대를 살았고, 그런 사랑을 받아본 적 없는 분이,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게 조금 신기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이렇게 길게 설명하는 것이 글에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덧붙이는 글로 해명을 해본다.


#동심 #산타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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