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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 knight Mar 26. 2020

지금 생각해보면 참 신기했던 한 달

어린 시절, 특별한 기억

내가 태어난 곳은 아주아주 산골이다.

방학만 되면 형과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시는 그 시골집에 맡겨졌다.

시골답게 근처에는 계곡도 있었는데 그곳에서 약 한 달간 지냈던 이야기를 해보련다.


당시 나는 초등학교 4-5학년쯤 되었다.

여름 방학을 맞이했는데 부모님께서 계곡에서 장사를 하기로 했다.

무슨 장사인고 하니 관광객을 상대로 평상을 대여해주고, 음식도 만들어서 파는, 그런 관광지 장사였다.

(요즘에는 이런 게 불법 아닌가 모르겠다.)


덕분에 나이가 어렸던 형과 나도 계곡으로 갔다.

우리는 텐트에서 잠을 자고, 텐트 앞의 평상에서 밥을 먹고, 근처에서 생활하면서 살았다.

어린 시절에 생활이랄 게 노는 거 말고는 없었다.

뜨거운 여름 햇살에 눈을 뜨고, 물에 뛰어드는 것이 일상이었다.

TV도 없고, 스마트폰은 고사하고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라 자연과 함께 어우러지는 것이 강제된 환경이었다.


하지만 워낙 물에서 노는 걸 좋아해서였는지 심심하지 않았다.

(얼마나 물에서 많이 놀았는지, 등 껍질이 한 세 번은 벗겨졌으리라.)

아니, 어떻게 해서든 노는 방법을 창조해냈다는 게 맞는 표현 같다.


가끔은 놀러 오는 관광객과 이야기를 하고,

방학을 맞이해서 놀러 온 친척들과 어울려 놀았다.

제법 큰 물고기가 있는 곳을 습격하기도 했고, 물길을 따라 올라가다가 폭포를 만나기도 했다.

밤이 찾아오면 한낮의 열기가 댑혀놓은 커다란 돌 위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도 여름밤을 좋아하지만, 그때의 여름밤은 정말이지 평화로웠다.

방해 없이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 벌레 소리, 반짝이는 별들은 또 어떻고.

친척들과 만나면 그렇게 할 이야기가 많았는지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모르고 떠들다 잠이 들었다.


아마 원시 사회에서는 모두 이러고 살지 않았을까.


지금 다시 그런 생활을 하라고 하면 과연 해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해내야" 하는 문제의 영역이 되어버린 것은 확실하다.


너무 많은 것을 알게 된 까닭이다.


밤이 주는 무서움을 알게 되었고, 

심심함을 이길 창조의 세계를 잃어버렸다.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알게 되었고, 

또 사람에 대한 그리움도 알게 되었다.


더 이상 그 시절만큼 순수해질 수 없기에, 그토록 어려운 일로 생각되어 발목을 잡힌 것일 게다.


그렇기에 그 시간들은, "지금 생각해보면 참 신기했던 한 달" 이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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