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의 파도와 젊음이라는 방파제
아무런 공지도 없이 급여가 지급되지 않은 경험을 해보셨나요?
크리스마스이브 저녁으로 기억합니다. 원래 오전에 지급되어야 하는 급여가 오후 늦게까지 입금되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늦게 주나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운동을 다녀와서 다시 책상에 앉으니 메일이 한 통 와있었습니다. 오늘은 급여의 일부만 지급되고 나머지는 나중에 준다는 메일이었습니다. 직장 생활이 처음인 저는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정확한 사정은 알 수 없었지만, 회사가 어려워지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습니다. 제가 놀라기도 하고 신기했던 것은, 급여가 지급되지 않은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회사가 현재 어떤 상태인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인지 누구도 말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회사의 익명 게시판에 저의 심정을 올렸고 그때부터 반응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대체 회사의 과장, 차장, 부장, 팀장 등 상위 직책자들은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지금도 이때를 생각하면, 선배로서 그리고 어른으로서의 행동은 어떤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급여는 결국 몇 달을 밀려 나오기는 했습니다. 하지만, 회사의 상황이 좋아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며 이런저런 복지와 비용을 축소했습니다. 그럼에도 극복 가능한 상황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여전히 정보는 불투명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급여가 나오지 않는 것이 당연시되었습니다. 눈치가 빠른 사람들은 회사의 자산에 압류를 걸기도 했습니다. 퇴사자가 많아지고 퇴직금이 제대로 지급되지 않자 뭐라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퇴사자 중심으로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단체 대응을 위한 카페가 만들어졌고 변호사를 선임해서 밀린 급여와 퇴직금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짧게 요약하자면, 회사가 파산되었음이 인정되면 국가로부터 일부 보상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꽤 걸리긴 했지만, 결국 밀린 급여와 퇴직금 일부를 국가로부터 돌려받게 됩니다. 이 일은 제가 다른 회사로 이직 한 이후에야 완료되었습니다. 그때 대표이사를 대상으로 고소, 고발도 함께 진행되었는데, 나중에 취하해 달라며 메일까지 왔습니다. 자기가 필요할 때만 연락을 하고 그 이후에 다시 연락은 없었습니다.
불행은 몰려서 온다고 했던가요.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부모님의 건강에 문제가 생겨서 집에도 돈이 필요했습니다. 돈이 필요한 부모님께 차마 월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말은 혼자 삼키고 그동안 모아둔 돈을 쓰게 되었습니다. 다행히 수술비는 그리 크지 않은 돈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생각보다 긍정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급한 마음보다는 일단 모아둔 돈을 쓰면서 버티면 된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게 미래의 자산에 영향을 미친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미래 생각을 했다 한들, 그 상황에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요. 긍정적인 생각이 오히려 다행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급여도 나오지 않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그럼에도 당장 갈 수 있는 회사보다는 가고 싶은 회사에 도전했습니다. 한 차례 실패 끝에 결국 원하던 곳에 입사하게 됩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이 선택은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후 인생은 큰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이때 이직이 가능했던 이유는, 개발자 채용이 그나마 원활했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는 망했지만, 시장 전체적으로 힘든 시기는 아니었습니다. 물론, 저의 역량을 부정하지는 않지만, 객관적으로 보면 채용이라는 것이 당시 시장 환경에 영향을 받기 때문에, 이를 무시할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좀 더 겸손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회사 생활 한 지 2년 정도 지나서 회사가 망했으니, 저는 자산이라고 부를만한 무엇도 없었습니다. 모아둔 돈은 집안 사정과 생활비로 써야 했으니까요. 그럼에도, 서른에 갓 접어든 젊음의 힘은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긍정적인 생각을 품고 결국 희망의 씨앗을 틔워냅니다. 이후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자세히 풀어보겠습니다.
월급이 나오지 않는다면, 당장 이직을 준비하라.
회사의 재정적 어려움은 쉽게 극복되지 않는다.
단, 이직은 신중하게 준비하자.
채용은 절대평가보다 상대평가에 가깝다.
실력을 쌓으되 시장 환경도 객관적으로 봐야 한다.
지나친 자만이나 자책은 지양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