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활

선택과 태도는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by 문나잇

‘컴퓨터를 잘 모릅니다. 그래서 배우려고 지원했습니다’


대학교 면접실에서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함께 면접 온 다른 고등학교 학생들은 빌 게이츠부터 IT 관련 이야기까지 수려한 말솜씨로 답변을 내놓았습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대학과 전공을 어떻게 선택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어떤 직업이 있고, 어떻게 일하는지를 전혀 모르는 상황에서 진로를 결정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집에 컴퓨터도 없던 제가 컴퓨터 공학 쪽으로 전공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보다 성적을 고려했고, 가려고 했던 대학에서 국가사업으로 밀어주는 학과였으며, 공대가 취업이 잘 된다는 어렴풋한 소문 때문이었습니다. 치열한 고민 없는 선택이라 면접장에서 위와 같이 답변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소위 SKY에 갈 거 아니면 큰 의미 없다는 어리석은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SKY를 갈 수 있는 수능 성적은 아니었기에 등록금이 저렴한 집 근처의 국립대학에 지원했고, 특차로 등록금 면제를 받고 입학했습니다. 당시가 2,000년대 극초반이니, 훗날 이 선택이 어떤 영향을 미쳤을지 짐작하실 겁니다. 결과적으로는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등록금은 저렴했지만 대학생활에도 돈은 필요했습니다. 개강총회, 종강총회, MT 같은 학과에서 진행하는 모임도 꽤 있었고, 대학 동기나 친구 생일, 데이트 같은 이벤트도 많았습니다. 가난했지만, 이런 모임을 피할 수는 없었고, 자연스럽게 경제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고민의 결과는 알바였습니다. 주차장 알바를 시작으로 술집, 고깃집 알바까지, 학교를 다니며 다양한 경험을 쌓게 되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알바를 꽤 재미있게 했다는 것입니다. 물론, 돈이 필요해서 한 건 맞지만, 돈을 벌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다는 생각보다는, 나름 일을 잘해보려고 노력했습니다. 의식적으로 노력한 것은 아니었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바쁜 시간에 얼마나 정확하고 빠르게 테이블을 세팅하고 주문한 음식을 실수 없이 서빙했는지, 밀려오는 손님들을 대기 없이 잘 안내했는지 등을 의식했고, 고기를 굽거나 판을 닦고 밥을 볶는 등의 일에서도 나름 즐거움을 느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생각한 건 모든 일에는 즐거움과 성취감이 있다는 것입니다. 몸을 쓰는 일은 그것대로 즐거움과 쾌감이 있었습니다.


군대를 다녀와서도 알바를 계속했습니다. 그런데, 변화가 생겼습니다. 주변에서 현장실습 같은 제도를 이용하면 전공 관련 일을 하면서도 돈은 더 많이 받는다는 조언이 들렸고, 고학년이 되다 보니 전공으로 돈을 벌고 싶은 마음도 생겼습니다. 일 하는 가게에서 후배들을 만나면 솔직히 조금 쑥스러운 감정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마침 그때 선배의 소개로 한 업체가 의뢰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게 됩니다. 우여곡절은 있었지만 마침내 완성하고 계약금을 받는 순간의 짜릿함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내 전공으로 돈을 받고 만든 최초의 프로그램이라는 사실이 너무 기쁘고 뿌듯했습니다.


대학 입학 때만 해도 저는 컴맹이었기에 수업을 따라가기 너무 힘들었습니다. 집에 컴퓨터가 있거나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미 학습하고 입학 한 동기들에 비해 너무 뒤떨어진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자존심이 상해서 여름 방학에는 영어 자판을 모두 외울 수 있도록 부지런히 연습했습니다.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하다 보니 조금씩 이해가 되었고 재미가 붙기 시작했습니다. 수업도 재미있었고 자연스레 성적도 좋아졌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개발자의 길로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게임 만드는 동아리 활동으로 이런저런 습작을 만들었고, 대학생 프로그래밍 대회에 나가보기도 했습니다.


특히 대학생 프로그래밍 대회는 개발자가 되는데 결정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개발자는 4D 업종으로 불렸습니다. 밤새는 일도 많고 고생도 많이 하는데 처우는 좋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프로그래밍 대회에서는 우리를 아주 극진히 대접해 줬습니다. 뷔페식 식사에 1박 생활 비용까지 쥐어줬습니다. 세상 물정 잘 모르던 시절이었지만 처우가 나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턴 시절에는 새벽 3-4시까지 제 책임도 아닌 서비스 개발에 몰두했습니다. 그런데, 그때는 그게 너무 재미있었습니다. 어떤 세계를 머릿속으로 온전히 이해하고 내 손으로 바꿔간다는 것이 즐거웠던 것 같습니다.


여기까지만 적으면 꽤 괜찮았던 대학생활 같습니다만, 절망의 순간은 곳곳에 숨어있었습니다. 군대를 다녀오니 집안 사정은 더 안 좋아져 있었습니다. 단칸방에 짐을 풀 수도 없어서 박스에 무엇이 들었는지 표기를 해두고 필요할 때만 꺼내서 써야 했습니다. 화장실은 밖에 있는 재래식에 부엌은 겨울의 추위를 거의 막지 못했습니다. 또 가끔씩 일어나는 가정의 불화를 겪을 때면, 제 인생에서 희망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다는 절망감에 한탄한 적도 있습니다.


인생은 그렇게 바닥을 향해 가다가도 다시 희망이 고개를 들어 앞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저 또한 그랬습니다. 당시에 들었던 조언은, 가정을 위해 너무 희생하면 안 된다, 니 나이때 할 수 있는 걸 해보지 못하면 후회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말도 맞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제가 했던 생각은, 제가 가족을 위해 희생한다는 생각으로 인생을 살다 후회하는 순간이 오면, 가족을 원망할 것 같았습니다. 그때 가서 원망해 봤자 남은 것은 이미 망가진 제 삶뿐입니다. 그래서, 어쨌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잘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인생이 잘 풀리면 용서가 따라오고, 잘 풀리지 않으면 원망이 따라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그래도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하면서 대학 시절을 보냈습니다. 술도 많이 마시고, 우정도 나누고, 연애도 하고, 공부도 하고, 돈도 벌며, 바쁘고 치열하게, 청춘이라 불리는 그 시절을 온몸으로 느끼며 보냈습니다. 그렇게 학부 생활과 대학원까지 마치고 사회로 나가게 됩니다.


전공으로 컴퓨터 공학을 선택한 것은 지금 돌아보면 정말 잘 한 선택이었습니다. 취업을 한 이후 개발자의 처우는 점점 좋아졌고, 코딩 열풍까지 불어 IT 업계는 초호황을 맞이했습니다.


그럼 이 선택을 한 번 평가해 보겠습니다. 이건 정말 훌륭한 선택이었을까요?


결과만 놓고 보면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선택 이후 펼쳐질 일을 정말 하나도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모든 걸 알고 계획하고 한 선택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보다는 성적, 컴퓨터에 대한 무지, 밀어주는 학과라는 요소가 선택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제 스스로 대단한 선택을 한 것이라고 평가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이건 그냥 누구나 할 만한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좋게 평가할 수 있는 부분은 어떤 일이든 잘해보려고 하는 긍정적인 생각, 그리고 성실함과 꾸준함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당시에는 이게 장점이라고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일을 대하는 태도야말로 성공과 가장 가까운 것임을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을 찾기보다 일단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을 사랑하라고, 그 유명한 젠슨황도 이야기했다죠. 처음부터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찾기란 어려우니까요. 저도 이 말에 너무 공감이 됩니다.


또 하나 잘했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소신껏 미래를 설계했다는 점입니다. 가정환경만 생각했으면 대학원은커녕 계속 알바나 하면서 세월을 흘려보냈을 것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휴학도 진지하게 생각했었으니까요. 부모님도 휴학을 반대하긴 했지만, 저 역시 개발자의 길을 인생에서 놓지 않았습니다.


종합해 보면, 이렇게 요약해 볼 수 있겠습니다.


선택 당시에는 결과를 알 수 없다.
이 사실을 인정하면 선택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선택을 옳게 만드는 일이 훨씬 중요한 일임을 알 수 있다.
일을 대하는 태도와 성공은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가난이 당신의 삶까지 집어삼키도록 두지 말라.
자신의 미래는 누구 때문이 아닌 스스로를 위한 선택이어야만 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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