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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a Apr 18. 2022

동생이 공무원시험을 망쳤다.

우리는 정말 노력하면 뭐든 할 수 있을까? '긍정의 힘'이 가진 폭력

© Pexels, 출처 Pixabay


동생이 외박을 했다.

예순여섯 우리 엄마는 밤을 지새웠다.


서른 넘은 동생이 외박을 하는 일이야 걱정할 일이 아니지만, 엄마의 걱정은 '외박의 이유'에 있다.

몇년째 공시 준비 중인 동생이 지난 국가직 공무원시험을 망쳤다.


동생은 삼수끝에 명문대에 들어갔고, 졸업 후 공무원시험을 준비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이제 동생은 다시 6월에 있을 지방직 공무원 시험 공부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독서실에 앉아 100분에 100문제를 풀기 위해 또 지루하고 기계적인 학습과 훈련을 시작해야 한다.


동생은 실수를 최소화하는 반복적이고 기계적인 공부를 너무 오래했다. 잘모르겠다. 그 지루한 반복이 동생의 인생을 얼마나 행복하게 해줄지.


나는 동생에게 어떤 위로를 해줄 수 있을까.

괜찮아 잘될거야. 힘을내 노력하면 다 할 수 있어 라고 해야하는 걸까?


『긍정의 힘』 조엘 오스틴 목사는 믿는 대로 된다며 긍정의 힘을 설파한다.

『시크릿』의 론다 번은 수 세기 동안 단 1%만이 알았던 부와 성공의 비밀이라며 진실로 믿으면 뭐든지 이뤄진다고 설파한다.


과연 믿는 대로 이뤄지는 것일까? 긍정의 힘은 항상 우리를 성공으로 이끄는 것일까?


철학자 한병철은 이 지나친 긍정의 힘을 ‘우울증’의 원인으로 보고 있다. 그의 저서 『피로사회』는 2010년 출간된 이후로 아직도 회자하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은“시대마다 그 시대에 고유한 주요 질병이 있다”라는 문장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그는 21세기를 신경증적이라고 규정한다. 이를테면 우울증,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성격장애, 소진 증후군 등이 21세기 초의 병리학적 상황을 지배한다고 설명한다.


이 시대의 우울의 원인은 무엇일까? 그 이유를 그는 ‘긍정성의 과잉’으로 보고 있다.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사회 전반의 맹목적 신앙. YES WE CAN을 부르짖는 사회의 집착. 의지와 노력만 있으면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는 사회에서 성취하지 못했을 때 우리는 우울을 겪는다. 병적인 긍정의 사회에서 좌절하는 자신을 보았을 때 우리는 우울을 느낄 수밖에 없다. 아이러니하다. 부정의 시대가 아닌 긍정의 시대의 대표적 질환이 바로 ‘우울증’이니 말이다.


그러나 나에게는 그의 말이 퍽이나 와닿는다. 주변을 둘러보자.


유튜브에서는 당신도 노력만 하면 조기 은퇴 후 페라리를 몰 수 있다고 부추긴다. 유명 유튜버는 단군 이래 가장 돈을 벌기 쉬운 시대라고 한다. ( 적어도 나는 아닌데 말이다.)인스타그램에서는 이십 대의 셀럽들이 샤넬과 에르메스를 자랑한다. 모바일 광고에서는 4등급도 노력만 하면 서울대를 갈 수 있다고 부추기며, 인강 만 듣고 몇 달 만에 고시에 합격했다는 수기가 네온사인처럼 번쩍인다. 그들은 늙지도 않는다. 환갑이 넘은 셀럽은 젊은 역시도 가꾸고 노력하면 성취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현실 속에는 십 년간 공무원 시험에 매달린 동생이 있고, 육아에 지쳐 맞벌이를 포기한 내가 있다. 대출금을 갚기 위해 주말 부부를 하는 친구들이 있고, 인서울을 하기 위해 밤늦도록 학원버스에 몸을 싣는 아이들이 있다. 그렇게 사회가 만들어 놓은 긍정의 나, 이상의 나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할 때 우리는 우울함을 느끼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는 조금 내려놓으면 안될까?


우울할 때, 세상에서 나만 뒤쳐진 것 같을 때. 남들은 다들 봄인데 나만 한겨울 패딩을 입고 백화점에 들어선 것 같은 느낌이 들 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그 강한 긍정을 향한 맹목적 신앙에 대한 의심이다. 그것은 자신이 주체가 되어 착취하는 사회의 강한 최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이상 너는 뭐든 할 수 있어. 노력하면 다되는거야. 라는 말로 그들의 노력을 아무것도 아닌것으로 만들지 않았으면 좋겠다. 


세상에 정답은 없다. 수만가지의 선택이 있을 뿐. 


소진되어 바스라지는 청춘들에게 꼭 이루지 않는다고 네가 아닌 것이 아니니, 괜찮다고 토닥여주고 싶다. 그것을 이뤘건 이루지 않았건 내가 나라는 사실엔 변함이 없으니까.



그리고 함께 이적의 ‘걱정말아요그대’ 한 곡 정도 들었으면 좋겠다.


이게 내가 동생에게. 그리고 너무 우울한 공시생들과 세상의 모든 지친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이다.


그대여 아무 걱정 하지 말아요

우리 함께 노래 합시다

그대 아픈 기억들 모두 그대여

그대 가슴에 깊이 묻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떠난 이에게 노래 하세요

후회없이 사랑했노라 말해요



그대는 너무 힘든 일이 많았죠

새로움을 잃어 버렸죠

그대 슬픈 얘기들 모두 그대여

그대 탓으로 훌훌 털어 버리고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후회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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