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모닝커피는 누가 내려주나요?
내가 세상을 떠난 후 내 묘비명은 이렇지 않을까?
매일 아침 맞춰놓은 알람은
항상 무의식의 내가 꺼버린 지 오래다.
달그락달그락.
낮고 조용한 소리에 다시 잠을 깬다.
물이 끓는 소리.
핸드드립 하는 소리다.
산뜻한 과일 내음이 묻어나는 커피 향이 방안까지 스며든다.
똑똑.
굿모닝.
누군가에게는 천사 같은 아내가.
어떤 이에게는 자상한 남편이 내려주는 아침의 커피.
나의 아침을 향기로 열어주는 이는.
나의 사랑스러운 6학년 딸아이이다.
언젠가부터. 내가 커피 내리는 모습을 유심히 보던 딸 아이가 말했다.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다음날부터 나는 커피 향에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큰딸은 어려서부터 잘 자고 잘 일어나는 것으로 유명했다.
해가 지면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났다.
“우리 소율이 밭매러 나가려고 준비하는구나~”
다행이다. 평생을 잠과 싸우는 나를 닮지 않아서.
그런 딸은. 이제 나가 가장 좋아하는 핸드드립 커피를 만들어주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마르고 긴 팔다리.
허리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
얼굴의 반을 차지할 것 같은 동그란 눈
언제까지 나의 아기로 머무를 것 같은 둘째가 제 허리까지 오는 빨래 바구니를 들고 세탁실에서 나온다.
“엄마 건조기 다 돌아갔어요!”
야무지게 건조기의 물을 빼고.
건조기의 먼지 망을 털어 낸다..
세탁기에 남은 빨래를 더 넣고. 세탁기를 돌린다.
싱크대엔 간식을 먹고 남은 그릇이 두세 개 남아있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릇을 닦는다.
야물게 싱크대 거름망을 꺼낸다.
탁탁…. 음식물 쓰레기통에 넣고 헹군다.
부엌 바닥이 조금 흥건해졌지만 괜찮다.
고맙다는 나의 인사에 둘째 아이가 말한다.
집안일은 모두가 함께 하는 거래요. 선생님이.
뉘 집 애들인지 잘 키웠다.
나는 12년 차 엄마이다.
그리고 전업주부기도 하다.
첫 아이를 낳고. 시부님의 도움으로. 일을 할 수 있었다.
둘째를 낳고는 육아휴직을 하고 아이를 키웠다.
둘째가 네 살 되던 해 처음으로 어린이집을 보내고, 아이를 종일반에 둘 용기가 나지 않았다.
아이는 괜찮았다
내가 분리불안이고. 지나친 애착 중이었다.
결국, 나는 아이와 떨어질 수 없었고. 퇴직을 결심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릴게요.
과장님 나이에 이렇게 돈 주는 회사가 많은 줄 아세요?
아마 퇴직하자마자 일이 년 안에 엄청난 후회가 밀려올 거예요.
이 나이에 경력까지 단절되면.
어디 써주는 회사가 있는 줄 아세요?
5년 후배라고 했나?
아무튼, 그 인사담당자 남자 후배는 나에게 촌철살인의 조언을 아끼지 않고 퍼부어주었다.
나름 나에게 애정이 있었나 보다.
그의 애정이 어린 조언을 뒤로 한 채 나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가 사랑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그리고 나는 그의 예언이 틀렸음을 알게 되었다.
왜냐면. 퇴직하고 일이 년 안에 후회하지 않았으니까.
나는 정확히 퇴직 후 3년 뒤부터 후회하기 시작했다.
육아하는데 돈이 들기 시작했다.
어랏! 아이는 사랑으로 키우는 거 아니었나요?
틀렸습니다. 돈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제법 스스로 할 일을 해내기 시작했고.
나는 몇 년만의 처음으로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리고.더는 대기업 과장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나는 구직 시장에서 경력단절 여성으로 불렸다.
처음엔 원래 다니던 회사 규모 정도의 경력직을 찾아보았고.
그다음엔 페이는 조금 작아도 안정적인 공기업을 찾아보았다.
그리고 마지막엔 계약직. 프리랜서.
시장에서의 내 나이는 빨랫줄에 널린 양말 같았다. 미풍에도 흔들리다 흙바닥에 탁하고 떨어지는.
구직 시장에서 내 경력은 다 버려야 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게 가장 힘들었다.
화가 나기도 했고 움츠러들기도 했다.
과거의 선택이 발목을 잡았고. 자꾸만 허우적거렸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인정하니까 편해졌다.나의 선택을 탓했지만.
깔끔하게. 모든 우연의 퇴적은 필연이며. 지금 이 순간은 필연임을 직시하는 편이 나에게 이로웠다.
과거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다 보면.
내가 지금 얼마나 아름다운 곳에 있는지 보지 못하게 된다. 늪에서 나와보니. 나의 세상은 푸르름으로 가득 찬 오후의 고요한 숲이었다.
핸드드립을 기가 막히게 하는 종달새 한 마리.
집안일은 가족이 함께하는 거라는 파랑새 한 마리.
그리고 나의 모든 선택을 지지해 주고 나의 후회까지 안아주던 아름드리 남편까지.
언제부터인가, 내 아름다운 숲을 보며 과거의 나를 잊을 용기가 밀려왔다.
마흔이라는 시작점 앞에서.
나는 무엇이든 시작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다시 공부하고. 다시 책을 읽고. 다시 글을 써야지.
그리고. 지금까지처럼. 또 아침마다 잠과 싸우고. 큰아이가 내려주는 커피를 마시고
둘째 아이와 함께 빨래를 개켜야겠다.
그리고 찬란한 미래가 기다리는 두 아이와 다시 손을 잡고 나아가야겠다.
내 남은 미래 역시도 그들처럼 찬란할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