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6 딸은 오늘도 그네를 기다린다.
해가 내려오고 선선해지는 저녁 즈음
우리는 정확히 6시가 되면 저녁을 먹는다.
더도 덜도 말고 정확히 6시이다.
공부 시간표는 없지만.
밥시간표는 있다. 우리의 힘은 밥심이니까.
오전 7시 30분에 아침.
12시에 점심을 먹고
6시가 되면 저녁을 먹는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일종의 강박처럼 이 시간들을 지키고 있다.
시간의 구속이 없으면 인간은 루즈해지고.
뱃살은 더 루즈해지니까.
6시에 밥을 먹고 나면
딸들과 나는 자전거를 타러 나간다.
허벅지가 터지도록 미친 듯이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나면 종착역은 놀이터이다.
큰딸은 놀이터 간다고 하지 않는다.
큰딸에게 그네란? 물어보고 싶다. 이참에 오늘 밤 물어봐야겠다.
그네를 타러 가면 꼭 놀이터 터줏대감들이 그네를 타고 있다.
그러면 딸은 암묵적인 기다림의 줄인
그네 옆 안전 가드에 앉아 차례를 차분히 기다린다.
보통. 그렇게 누군가 기다리고 있으면 1분에서 3분 정도 타다 자리를 양보하고
그런데 최근엔 그런 룰이 많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
아무래도 코로나 영향으로 오랜 집콕 생활로 아이들의 감각이 무뎌져 암묵적 룰을 잊은 모양이다.
더욱이 6학년쯤 되면
딸아이는 묵묵히 그리고 조용히 기다린다.
그녀는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이 된 것이다
오늘은 둘째가 코딩 학원에 간지라.
그네 줄을 함께 기다려 주기로 했다.
큰아이는 안전 가드에 얌전히
나는 놀이터 벤치에 앉아서 조용히 기다린다.
집 앞 놀이터에는 그네가 두 개 있다.
하나는 최선을 다해서 그네를 타는 아이가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하나는 아주 많이 복스러운 아이가 차지하고 있다.
말 그대로 그냥 차지하고만 있다.
복스러운 아이는 복스러운 아이 답지 않게 깨작거린다.
그네에 배를 대고 엎어져 있다.
그러다 배가 아플 때쯤 되면 일어서서 그네를 떠나는 척한다.
그러나 한 손은 그넷줄을 잡고 있다.
그넷줄을 잡고 두 리번 두리번거린다.
그네는 타지 않아도 그네를 놓치지는 않는다.
그렇게 십 분을 넘게 시간을 끈다.
딸아이는 그렇게 십분 넘게 복스러운 아이 쪽에 줄을 서 있다가
포기하고 최선을 다해 그네를 타는 아이 쪽으로 넘어가 줄을 선다.
그때
복스러운 아이의 엄마가 등장했다.
이제 보니. 아까부터 근처에 있던 여성이다.
"엄마랑 좀 뛰자"
복스러운 아이는 싫다고 거절한다.
그래.. 네가 뛰었다면 안복스러웠겠지.
엄마는 이제 언니한테 양보해야지 라는 말없이 혼자 뒤로 가버린다.
혼자만 안복스러워지려는 심산이다.
아이는 그렇게 엄마 없이 깨작거렸고.
갑자기 엄청난 함성이 들렸다.
갑자기 최선을 다해 그네를 타는 아이의 친구들이 몰려온 것이다.
갑자기 최선을 다해 그네를 타는 아이에게 돌진한 한 아이가 네가 술레! 하며 도망을 간다.
최선을 다해 그네를 타던 아이는 이제
드디어 딸아이는 영광스러운 그네를 차지한다.
6학년 딸아이의 얼굴에 화색이 돈다.
하루 중에 제일 행복해 보이는 시간이다.
힘껏 발로 바닥을 차며 중력을 거스른다.
허벅지 힘이 센 만큼 그네도 훨훨 난다.
운동에너지가 위치 에너지가 되었다가
다시 위치 에너지가 운동에너지가 되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한다.
나는 어릴 적에 그네를 좋아했던가?
어릴 적 기억을 소환해본다.
그네 하면 두 가지 기억밖에 없고
미끄럼에 대한 추억만 다량 검출되는 걸 보니
나는 그네 person 이기보다는 미끄럼 person이었나 보다.
그네에 대한 기억 두 가지 중
첫 번째는.
고등학교 야자 끝나고 그네에 앉아 담탱이 험담을 까던 기억과
두 번째는.
초등학교 언젠가.
최선을 다해 그네를 타면서 방귀를 뛰었는데
원심력 때문에 엉덩이가 터질듯한 폭발음과 함께
정말로 내 엉덩이가 터져버릴 뻔했던 기억이다.
(그 뒤로는 꼭 내려서 뀌거나 한쪽을 들고 뀌었다.)
오랜만에 딸아이 옆에 앉아 그네를 타본다.
마이너스 중력이 찌르르 내 몸을 간지럽힌다.
조종사도 6배의 중력도 견디지만.
마이너스 중력은 견디기 힘들다지 않는가.
오랜만에 느끼는 덜컹거리는 느낌에 혼자 소리다 웃다 한다.
갑자기 이렇게 그네를 타다가 폴짝 뛰어내리곤 했던 기억이 난다.
힘껏 타다가 뛰어본다.
무릎과 발바닥에 끔찍한 충격이 온다.
앞으론 나이 생각해서 다시는 하지 말아야겠다.
살랑이는 바람이 그네를 타는 우리의 귓가를 간지럽힌다.
내일부터는 딸아이와 같이 줄을 서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