얘 때문에 회사 그만두려고요!
"나는 회식이 너무 그리운 거 있지?!"
지난 주말 만난 S는 전직 은행원, 현직 전업맘이다. 요즘 부쩍 삶이 지루하다는 그녀는 회식이 그립다고 했다. 회식이 왜 그립냐는 나의 질문에, 그녀가 답했다.
"내 돈 주고는 사 먹기 힘든 곳에서 법인카드로 먹는 즐거움이 있잖아. 사람들이랑 대화도 나누고."
내가 말한다.
"잘 생각해 봐. 정말 그 기억이 맞는지. 난 요즘 정말 신기한 경험을 해. 같은 음식을 먹어도, 내 돈으로 가족들이랑 사 먹으면 진짜 맛있는데, 법카로 먹으면 영 맛이 없어."
사람은 객관화된 기억을 가질 수 없다. 철학에서 이야기하는 기억의 재형상화이다. 끊임없이 반추하고 생각하며 의미를 부여하고, 그러니까 쉽게 말하자면 지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할 수 밖에 없다. 그것도 아주 왜곡해서.
내 경우도 그렇다.
한동안 회사 앓이를 했었는데, 꿈에서 매일 출근을 했더랬다. 하이힐을 신고 쾌적한 지하철 2호선 서초역에서 내려 스타벅스에서 아메리카노를 텀블러에 받아 으리으리한 건물로 출근하던 나의 과거. 회식이 그렇게 그리울 수 없었다. 연말회식 장소였던 라센느, 팀원들끼리 신나게 탬버린을 흔든 강남의 가라오케.
서른넷 퇴직을 하고, 알바, 해외연수, 프리랜서, 대학원까지 다니면서도 내내 그리웠던 회사. 재취업을 하고 출근한 날 오후 바로 깨달았다. 지하철 2호선은 절대 쾌적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출퇴근 시간이 길어 주로 나는 운동화를 신고 다녔으며, 스타벅스는 갈 여유가 없어서 주로 믹스를 마셨다.
그리고 줄줄이 생각났다. 주량은 곧 업무성과와 비례한다던 가발을 벗었다 썼다 해서 나를 헷갈리게 하던 팀장, 아침마다 공중부양으로 서있던 지하철 2호선, 무소 때 사이에서 끌려가던 환승역.
그렇다 나는 파렴치한 기억 조작범이었던 것이다.
재 취업을 하기 전엔 나도 사람과 회식이 무척 그리웠다. 남편이 회식이라도 하고 온 날이면 괜히 남편이 미웠다. 나는 하루종일 미취학 아동들이랑 세 마디 이상 왔다 갔다 할 수 없는 대화만 하고 있는데, 으른들과의 대화를 하더니! 그것도 법인카드로! 맥주와 함께! 그래서 이렇게 말했다.
"아니, 하루죙일 같이 같이 붙어있는 사람들이랑 술까지 마시고 싶어?"
대기업 공채 생활만 했던 나는 서열이 나름 확실한 집단에 있었다. 대부분 공채로 들어오기에 선후배가 확실했고, 그렇기에 후배들 때문에 힘들어 본 경험은 없었다. ( 물론 내가 삼십 대 초반 그만둔 것도 한몫하겠지만) 이곳은 달랐다. 나는 경력직 과장으로 재취업을 했는데, 나를 경계하는 이가 하나 있었으니... 바로 이십 대 후반의 신입사원 순자(가명)였다.
순자는 딱 나보다 한 달 먼저 입사를 했다. 몇 달간 팀의 일을 돌아가며 익히는 대기업 공채와 다르게 재 취업한 규모가 작은 회사는 바로 실무 투입이기에 한 달의 차이는 어마 어마 했다. 직급은 과장을 달고 있지만 너무나 오래 쉬었던 나는 엑셀의 브이룩업도 가물가물한 시원찮은 상태였다. 적응하는 것도 힘들었는데 그녀의 갈굼은 실로 어마 어마 했다. 띠동갑을 훌쩍 넘는 그녀는 (이미 존댓말을 쓰고 있는) 나에게 존댓말 쓰라고 요구하거나 ( 이 부분은 정말 억울했다. 왜냐면! 나는 어린이집 알바를 할 때도 아가들에게 존댓말을 하는 유형의 인간이기 때문이다!) "뭔 말이에요?"라고 핀잔을 주거나. 굽신굽신 묻는 질문에 "내가 전에 말했잖아요. 이해 못 해요?"라고 쏴 붙였다. 억울한 건 항상 단 둘이 있을 때만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게 순자에게 질문하기와 순자에게 부탁하기가 되어버렸다. 그녀가 나의 대무자. 내가 그녀의 대무자이기에 휴가를 쓸 때면 그 애에게 부탁해야 했었는데, 부탁하기 이틀 전부터 가슴이 두근거렸다. 진짜 사소한 질문이라도 해야 할 때면 먼저 야수의 심장을 장착해야 했다.
정말 얘 때문에 사표 씁니다.라는 말이 목구멍을 넘어 혀 끝까지 왔었다.
그러나 항상 그 한마디는 항상 주머니에 잘 넣어두었다. 왜냐면 너무나 창피했으니까. 고작 띠동갑도 훌쩍 넘는 애 하나 때문에 내가 그만두다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공부했다. 밤이면 엑셀 독학을 했고, 다른 사람들과 친해져서 그들에게 질문하고 배워나갔다. 한 번은 그 애가 나를 대하는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다른 팀 팀장이 나 대신 화를 냈다. 나는 넘어갈지 모르겠지만 본인은 이런 꼴 못 본다며 당장 상무에게 말한다는 것을 내가 뜯어말렸다. 내가 그녀를 뜯어말린 이유는 그 애가 예뻐서가 아니다. 이유는 하나이다. 어차피 매일 같이 일해야 하니까.
이십 대의 나와 사십 대의 나는 다르다. 예전의 나였다면 어떻게 한번 복수를 해주지? 어떻게 한번 쏘아주지? 머리를 굴렸겠지만. 늙고 힘없는 나는 크리스마스 조공으로 명품화장품을 사준다거나, 커피와 밥을 대접하고 은근슬쩍 남초회사에 다니는 남편팀에는 어쩜 다 싱글인데 차은우 같은 애들만 다니는지 모르겠다는 이야기를 흘리는 것으로 대신했다.
그리하여 순자의 마음을 얻었다는 해피엔딩으로 끝났을까? 그건 아니다. 다른 방식의 해피엔딩이다. 나는 그 애와 끝까지 친해질 수 없었다. 대신 그녀는 다른 팀으로 갔고, 지금은 뒷통수만 봐도 착하고 예쁜 후배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게다가 원플러스 원 행사도 아니고.. 본인 업무실적서 까지도 나에게 미루던 팀장까지 바뀌었다. 엄청 난 젠틀맨으로! 돌이켜보면 뭐 순자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엑셀의 달인까진 아니어도 회사에서 꿀리지 않을 정도의 엑셀실력을 갖게 되었으니까.
사실, 전업맘일 때도 사람 때문에 마음 끓일 일이 없던 건 아니다. 순자보다 더 독특하고 파란만장한 사람들도 있었다. 직장상사처럼 하대하는 동호회 회원도 만나봤고, 이 엄마 저 엄마에게 사기치고 다니는 자칭 부동산 갑부도 만나봤다. 그럼에도 다른 점이 있다면, 그 사람들은 안 만나면 그만이라는 점이다. 그 사람들이야 차단해 버리면 그만이지만 회사에서의 인간관계는 그럴 수 없다. 그래서 회식도 결코 아름다울 수 없는 것이다. 이걸 깨달아버리고 나니 20년이나 말없이 직장생활을 한 남편이 한없이 안쓰럽고 기특하다. 그 긴세월을 어떻게 묵묵히 버텼을까? 어쩌면 인생은 버티기이다.
아! 물론 회사에서의 회식이 다 병맛인 건 아니다.
앞서 말한 뒷통수까지도 예쁜 후배가 들어온 후로는 팀회식이 꽤나 즐겁다. 그럼에도 나에게 1년 9개월 동안 회사생활을 하며 가장 행복했던 회식이 무엇이었냐고 물으신다면,
바로! 출장 가서 한 나 홀로 회식!
추적추적 비 오는 날 저녁이었지, 낯선 동네 처음 보는 쌀국숫집에서 한 나와의 데이트!
그래서 직장생활 1년 9개월 만에 깨달아버렸다.
전업맘은 회식이 그립지만.
직장맘은 회식이 지겹다.
전업맘은 사람이 그립지만.
직장맘은 사람이 지겹다.
그것도 아주 매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