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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a Apr 03. 2024

재취업 후 일 년 반 만에 얻는 것은 대.상.포.진

작년 12월 29일 작은 책방의 소설 쓰기 모임을 마지막으로 30일부터 안구통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욱신거리기만 하다가 안구를 꺼내서 아스팔트 위에 문지르는 지경에 이르더니 마지막엔 안구를 통째로 에어프라이기에 210도로 튀기는 느낌이 들었다. 


밤새 잠들지 못하고 울다가 통증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1월 1일 새해 아침부터 남편에게 나를 응급실에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다. 1월 1일 적막한 응급실에서 나는 "심한 각막염 같아요. 눈이 너무 아파요."라고 말했다. 각막염주제에 무슨 응급실이냐는 눈으로 의사들은 나를 구석에 방치해 두었다. 각막이 아파서 각막염이라고 했지만 고통은 점점 내 인내를 넘어섰고 통증으로 실신직전의 얼굴로 퍼져있는 나를 보고 거의 만 8시간 만에 의사들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응급실 구석에 찌그러져 있던 나의 통증이 더 심해지더니 갑자기 얼굴에 수포가 올라오며 고열과 구토가 시작되었다. 의사들은 이건 각막염이 아니고 대상포진과 뇌수막염 같다며 나에게 이런저런 검사를 시작했다. 나는 생전 처음 MRI와 척수검사를 경험했다. 


내 경우는 MRI 통에 들어가는 것보다 조영제 투입이 색다른 경험이었는데 온몸을 뜨거운 물분자가 휘감는 느낌이었다. 나는 무협지 마니아인데, 혼원단 같은 무가지보를 복용하면 그 기운이 온몸을 일주천 하며 내공이 일갑자 (60년) 정도 는다는데 딱 그 느낌이 이 느낌이 아닐까 싶었다. 뜨거운 기운 같은이 온몸을 도는데 다른 점이 있다면 그 기운이 단전에 모이는 게 아니라 그보다 아래로 내려가 MRI 하다 실수한 것은 아닌가 (아픈 와중에) 고민하게 만들었다. 


또 하나는 말로만 듣던 전설의 척수검사였다. 척수검사의 악명은 정말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척수에서 사랑니를 빼는 기분이라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검사를 거부했다. 극도의 통증에 시달리면서도 검사 거부를 하다가  뇌수막염의 부작용을 검색해 보고 용기를 내어 검사했다. 그때 의사 선생님이 나를 진정시키며 정말 주사보다도 안 아프게 검사를 해준다 약속하셨는데, 실제로 정말로 주사보다 안 아프게 척수검사를 해주셨다! (할렐루야)


결국 나는 대상포진과 뇌수막염을 진단받고 병원에 3주간 입원했다. 입사한 지 딱 일 년 반만의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회사생활 할 때의 내 건강은 그리 좋은 편은 아니었다. 첫애를 임신했을 땐 조산기운으로 한 달 넘게 입원했으며, 만성 위염을 달고 살았다. 나는 뭘 하든 내가 하고 싶은 것에 있어서는 과하게 집착하는 편이라 중용이 미 같은 건 잘 모르는 편이다. 그래서 항상 탈이 나는 경우가 많다. 


작년의 경우도 그랬다. 오랜만의 회사생활이어서 그랬을까? 매사에 오지랖이었다. 뒤늦게 시작한 회사 생활이라 고과욕심 진급욕심하나 없었는데도 과몰입을 해버렸다. 그뿐 아니라 회사 일이 끝나면 밤에는 집에 와서 소설을 썼다. (애도 키우는 마당에 말이다.) 매주 월요일 작은 책방에서 소설 쓰기 모임을 했고 마지막 두 달은 신춘문예를 준비하며 아침엔 커피 저녁엔 와인의 힘으로 버텼다. 


결국 회사 고과는 S를 받았고, 신춘문예 당선은 되지 않았지만 조선일보의 마지막 세편에 들어 신문에 내 심사평이 실리는 영광을 얻었다. 회사와 소설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다 잡은 것처럼 보였지만 나는 그 심사평을 응급실에서 읽었다. 결국 나는 회사생활 일 년 반 만에 건강을 놓쳤다. 


그리고 대상포진이 발병한 지 삼 개월 만에 나는 다시 대상포진 재발 때문에 휴가 중이다. 이번엔 각막에 대상포진이 와버려서 시력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닥치고 쉬어야 하는 상태이다. 가끔 남편이 나에게 하는 말이 있는데, 내 성격에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아마 벌써 병나서 죽어버렸을 것이라는 말. 묘하게 기분 나빠서 절대 그럴 일 없다고 큰소리쳤었지만 지금 와서 보니 그 말 참으로 일리 있다. 


앞 편에서도 계속 썼지만, 나는 대기업을 다니다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전업맘을 했고 그 사이 두 번째 사춘기가 와버려 공황장애와 후회라는 지옥 속에서 허우적 된 경험이 있다. 집에만 있는 무가치한 인간이 되어버린 기분 때문에 나를 그토록 괴롭혔는데 이렇게 한 번씩 크게 아프고 나면 깨달아지는 것이 있다. 아! 아프면 다 소용없구나.  


직장맘도 전업맘도 재취업맘도 모두 다 겪어보니 세상이 돌아가는 건 결국 등가교환의 법칙이라는 것이다. 집에 있던 나는 자유와 시간 건강을 갖었으나, 회사를 다니는 나는 자유와 건강을 돈과 맞바꿔버렸다. 물론 돈도 벌면서 건강도 한 축복받은 인간들도 있겠지. 하지만 일도 하며 건강도 챙기며 취미생활까지 모두 다 하는 엄마는 본 적 없다. 적어도 내 눈에는 말이다. 


그러므로 학교 댕길때  나랑 비슷했던 친구는 승진도하고 애도 공부 잘하고 주말엔 테니스에 골프까지 치러 다니는데 나만 초라해 보여 슬프고 우울한 독자들이 있다면  내말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세상에 그런 건 없어. 걔말야  곧 대상포진 걸릴꺼야. 


*앞편에서 썼던 '습니다' 체를 '이다' 체로 변경했습니다. 앞편들도 모두 교정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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