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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a Jun 21. 2020

태양의 시간에도 달. 너는 있었구나.

나에겐 너무 나 큰 태양인 두 딸들에게 조도를 좀 낮춰달라고 해야겠다

2020년대 마지막 일식.

아이들의 십 대에 함께 볼 수 있는 공짜 우주쇼 D-day 날이었다. 다음 우주쇼 일정은 10년 뒤에 펼쳐질 예정이라니까. 첫째 23살 둘째 20살이 다음 일정이라는 말씀. 아이들과 추억을 쌓을 수 있는 마지막 일식이다.


아이들과 손잡고 우주쇼를 감상해야지! 결심을 해놓고 또 깜빡 잊고 있었다.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

지인들의 톡에. 시계를 보니 4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5시가 절정이라고 했으니 늦지 않았다. 아빠와 수학 공부를 하고 있는 첫아이는 두고 둘째 아이를 다그친다.


"옷 입어 당장!!! 우리 셀로판지 사러 가야 해!!! 지금 당장!!!"

"???"

"2020년 마지막 우주쇼래!!"

"???"

"태양을 달이 가리는 걸 니 눈으로 볼 수 있다고!! 보려면 셀로판지가 필요하고!!"

"아~~"


10초 만에 옷을 입은 딸과 나는 자전거를 타고 출동한다. 

"5시가 최고로 멋지다니까. 빨리 우린 문구점으로 달려야 해!!"


허벅지가 터지도록 알파문구로 전력질주를 하여, 안으로 달려갔더니. 문구점 주인아저씨 책상 위엔 셀로판지가 그득~이다. 내 앞에서 뒤에도 모든 손님들이 셀로판지를 찾는다. 줄 서서 마스크를 사던 올봄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1500원짜리 셀로판지를 사며 주인에게 너스레를 떤다. 


" 셀로판지가 만원은 해야 사장님 오늘 돈 좀 버실 텐데 말이에요"

"아유~ 셀로판지를 만원에 팔면 큰일 나죠~~~"


문구점을 나서니, 방금 전 나온 모든 손님들이 하나같이 셀로판지를 들고 하늘을 보고 있다. 

어른도 아이도 모두 하늘을 본다. 사람들이 일제히 하늘을 보는 광경은. 블랙이글 쇼 이후 오랜만이다. 

모두 아이같이 환호성을 친다. 나도 보고 아이도 본다. 처음 보는 아저씨 아줌마와 물개 박수를 친다.

"봐.. 정말 달이 해를 가리고 있지?"


의기양양하게 집으로 돌아가 남편과 큰아이를 밖으로 불러낸다. 최특급 스케일의 2020년의 마지막 우주쇼를 온 가족이 1500원짜리 티켓을 내고 감상한다. 


"낮에도 달은 하늘에 있었구나.."


그럼. 언제고 우리 주변을 빙빙 돌고 있었겠지.. 

문득 갑자기 집 나간 내 '자아'가 보고 싶어 졌다. 애 키우느라 어디 붙어있는지도 모르는 내 자아도 햇볕이 워낙 독해서 보이지 않았을 뿐. 달처럼 내 주변을 빙빙 돌고 있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부터는 나에게 너무 나 큰 태양인 두 딸들에게 조도를 좀 낮춰달라고 해야 겠다. 그래야. 달처럼 싱그러운 내 자아도 가끔 보이곤 할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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