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의 해답이 떠오르지 않을 때 나는 아이에게 묻는다.
어젯밤 둘째 아이가 내 침대 속으로 쏙 들어온다.
"엄마가 너무 좋아~"
요망한 것. 둘째들은 분명히 DNA에 귀여움을 타고나는 게 분명하다.
"엄마가 왜 좋아?" 나는 질문한다.
"엄마는 착한 엄마니까 좋지요" 딸이 말한다.
"그럼 나쁜 엄마는 뭔데?" 내가 질문한다.
"그런 거 물어보지 마요 너무 무서워요" 겁 많은 딸이 대답한다.
분명히 동화나 넷플릭스에서 계모에 대한 오랜 스테레오 타입을 들은 게 분명하다.
"알았어. 그럼 좋은 엄마는 뭔데?" 나는 되묻는다.
" TV를 아주 조금만 보여주고. 아이가 사달라는 거 해달라는 거 다 해주지 않고.
사탕을 달라고 한다고 다 주지 않고.
또.. 아이가 배우고 싶은 게 있을 땐 정말 열심히 할 수 있지? 물어보고 배우게 도와주는 엄마요."
듣다 보니 내가 매일 하던 이야기다. 이래서 교육이 무섭다.
"그래? 근데 엄마는 이게 항상 고민이야.
아이가 열심히 하겠다고 약속해 놓고 힘들다고. 귀찮다고 놀고 싶다고 열심히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해?
둘째 아이는 조금 고민하더니 대답한다.
"이건 어때요? 그렇게 아이가 조금 힘들어할 땐 선물을 거는 거예요.
피아노를 예를 들어볼게요. 체르니 100번을 다 끝냈을 때 30번을 다 끝냈을 때. 아이가 갖고 싶었던 선물을 거는 거죠!"
응. 아주 자본주의 시장에서 가장 합리적인 교육방법을 아이는 솔루션으로 제시한다.
육아는 항상 고민의 연속이다.
육아에 대한 고민의 해답이, 책으로도 풀리지 않을 땐 나는 두 가지 방법을 쓴다.
생각보다 아이들은 현명한 대답을 도출한다.
아이들은, 어린것 같으나 어른이고
감성적인 것 같으나 이성적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보다 항상 나은 답을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