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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sa Sep 22. 2020

회사 관두고 애나 키우려고요!

episode 2. 전업맘에 대한 환상



남편이 캠핑카에 꽂혀있다.

이성적인 이과생답게 많은 사람들의 캠핑카 후기를 꼼꼼히 보고 있다.

우리가 유독 관심을 갖은 캠핑카 후기는. 캠핑카에 대한 맹목적 환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다.

일단 캠핑카에 꽂힌 사람들은 캠핑카를 구입한 후 우리에게 펼쳐질 아름다운 상상들이다.

주말이면 캠핑카 하나 끌고 여기저기를 누비는 꿈. 별하나에 사랑과 별하나에 추억... 낭만.

그러나 실제 사람들이 겪는 현실은 이상과 다르다고 한다.

캠핑카의 잔고장.

 좁은 야영장까지의 험난한 운전(카라반의 경우 레카차 수준으로 어렵다고!)

트럭보다 떨어지는 승차감.

엄청난 감가상각(사고파는 순간 일 년에 1천만 원은 손해이다!)

차량 유지비.

결국 많은 이들이 캠핑카를 구입하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느끼고 2년 안에 판다는 의견이었다.


나는 어쩐지 캠핑카의 현실과 이상이

마치 전업맘에 대한 현실과 이상과 꼭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전업맘으로 돌아설 때

나는 정말로 전업맘이 된다면 우리 아이들을 내 손으로 '영재'로 키워낼 줄 알았다.

사교육이 뭐가 필요할까 싶었다.

초등학교까지는 내가 다 커버 가능할 테고..

식탁엔 직접 만든 시골 밥상이 올라간다면 수입이 반으로 줄더라도 결코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계산이었다.


내가 회사에 가게 되며 생기는 그 모든 지출.

회사 근처에서의 비싼 집값.

아이들의 등교과 하교를 도와줄 도우미 선생님.

그리고 학원을 돌리며 지출해야 할 돈들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게다가 육아책들을 얼마나 나에게 잔소리를 해댔는지..

모든 아이들은 후천적으로 영재로 키울 수 있다는 둥

우리 때 유행하던 끔찍한 다독 신드롬과 학원은 다 필요 없다는 엄마표 영어의 광풍.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그 수많은 엄마 블로거들처럼 손수 쿠키를 구워주지도 간식을 만들어 주지도 못했다.

다독 열풍 속에서 아이들에게 수천 권의 책을 읽히지도 못했고,

홈스쿨링을 야무지게 하지도 못했다.


직접 조리한 닭고기보다 교촌치킨이 맛있었고,

내가 만든 떡볶이보다는 학교 앞 분식점 아줌마의 떡볶이를 아이들은 좋아했다.

아이들이 부족한 부분 그리고 뛰어난 부분은 사교육을 시켰으며,

상상 속의 엄마처럼 상냥하지도 않고, 유대인들처럼 토론하는 법을 가르쳐 주지 못했다.


전업맘의 환상은 캠핑카 같은 것이다.

캠핑카가 나를 환상의 야영지로 이끌어 주는 것이 아니다.

캠핑카를 갖으며 함께 따라오는 금전적 무게와 내가 직접 해야 하는 그 모든 고생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블로그 속의 요리하는 엄마는 원래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잠수네 영어를 몇 년간 한 엄마는 원래 아주 아주 빡센 사람이다.

수납정리의 왕인 그 엄마는 회사를 다녔어도 똑같을 사람이다.

그리고 영재로 크고 있는 친구네 아이는 원래 타고나길 똑똑한 아이다.


내가 전업맘이 되어 아이에게 무언가를 해 줄 수 있다는 것은 환상일 뿐이다.

마치 캠핑카를 사면 온 가족이 화목해질 것 만 같은 환상처럼 말이다.


결론적으로

내가 전업맘이 되어 아이 들과 함께 하며 아이들에게 줄 수 있었던 것은 한 가지뿐이었다.

'함께 하는 시간'

등굣길을 느리게 함께 걷고. 학교 앞 분식점에서 함께 떡볶이를 먹고.

처음 보는 나무의 이름을 찾아본다던가..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런 시간뿐이었다.


아이에게 지식을 주고 아이를 영재로 키우는 것은 전업맘이 되고 안되고 와는 전혀 상관없는 문제이다.



생각해보면 애초에 회사를 그만두면서 가장 좋았던 건 바로 아이와 함께하는 평범한 시간이었다.


첫애를 시어머니가 봐주셨던 4살 이전의 기억이 나에게는 없기 때문이다

매일 아침 눈뜨면 서울의 도심으로 출근하기 바빴고, 그 와중에 출근 전 운동을 했었다.

퇴근하고 오면 아이는 잠들어있었고, 주말엔 피곤함에 아이와 제대로 놀아주기 힘들었다.

그때 아이가 어떻게 컸었는지의 기억이 없다.(정말 없다.)

얼마나 말썽을 피웠는지. 어떤 말을 먼저 시작했는지. 하루 종일 무엇을 먹었는지는

시어머니가 남겨놓은 메모로 알고 있는 조각조각뿐이었다.


다시 말하자면...

엄마가 회사를 그만두며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은 것은

옆에 있어줌 그것뿐이다.


만약.

캠핑카 같은 환상을 가지고 있다면.

단단히 말해주고 싶다.

우리가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생각보다 많지 않다고.

만약 그런 환상 때문이라면. 절대 커리어를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다.

앞서 말했듯 커리어를 포기하며 얻게 되는 감가상각은 캠핑카에 비할 것이 아님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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