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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글 Oct 19. 2019

옷과 옷장 사이

이따금 옷에는 잊지 못할 기억이 아직 남아있다.

미래의 내가 되어, 오늘의 나로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인간이라면,

그 인간은 자신의 사소한 감정들을, 정말 말 그대로 사소한 감정이었다고 치부하고 만다.

마치 방충망을 비집고 들어온 벌레 여기듯.

'비집고'라는 단어가 얼마나 치열한 것인지 미처 알지 못하게 미래(future)가 출근한다.  


벌써 10월이다. 입추가 훨씬 지났지만, 실제 내가 가을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는 순간은 어제와 다른 기온차를 체감하는 순간이다. 10월엔 몇 개월간 나를 위해 몸 바쳤던 여름 옷들에 대한 심심한 이별을 고하는 것과 동시에, 그동안 나를 기다려준 가을 옷에게 반가운 인사를 하는 때이다. 그렇게 한번 옷장을 헤집어 놓고, 엄마의 잔소리를 듣게 되는 계절이기도 하다.  


올해도 어김없이, 가을 옷을 꺼내는데 예년과는 조금 다른 기분이 들었다. 어렴풋한 기억으로 나는 매년 가을 옷을 꺼낼 땐, 즐거웠던 것 같다. 마치 1년 간 아무도 모르게 모아놓은 저금통을 뜯을 때, 1년 간 무식하게 모아 온 적금통장을 확인할 때의 기분이랄까. 혹은 고달픈 하루를 버티고 있는 내게, 굳이 힘들다 말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오늘 힘들지? 내가 오늘은 당신을 위해 치맥을 쏘겠어!" 라고 연락해오는 애인의 말을 들었을 때처럼. 이맘 때 옷장을 연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누군가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있다는 일말의 희망. 혹은 내가 나의 상처 난 마음에게, 알게모르게 차곡차곡 쌓아 온 1년치 격려의 적립금.


그러나 올해는, 영 즐겁지가 않았다.


무척 바쁘게 살았나보다. 제 몸을 돌볼 겨를도 없이.

가을 옷이라봐야 작아진 셔츠와 바지, 니트가 전부였다.

일말의 기억이라면 그 옷을 입고 여기저기 깨지고,

정신빠진 사람마냥 일했던 그 흔적들이었다.

내가 나에게 쏟았던 무신경의 적립이   

흰 셔츠 카라 위에 누렇게 내려 앉아 있었다.


우린 때론 그 어떤 순간과 그 순간의 옅은 감정을

단지 나의 감정이기에 홀대한다.


그러나 이번 계절은 유독 그렇게 사는 것이 열심히 사는 것이라 단언하였던 나의 지난 1년의

시간에게 무어라 말할 수 없었다.


열심히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완벽해 지기 위해

무엇을 희생하고, 무엇을 취했던가.

혹 취할 것을 희생하고, 희생할 것을 취하지 않았던가.


옷장과 옷장 사이의 관계처럼

나는 미래의 나에게

무엇으로 채워넣어야 할까.

그리고 그래야 했을까.


그날 밤, 곧장 백화점을 다녀왔다.

어쩌면 가을 옷장을 여는 것은 올 가을을 준비하는 게 아니라

내년의 지금을 준비하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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