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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과 떨림 Sep 18. 2021

《인생은 권투를 닮았다》

핵펀치인데 물 맷집이라고?

삶은 고해다. 이것은 위대한 진리다. 다시 말하자면,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진리 중의 하나다.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 할 길>에 나오는 말이다. 그는 '삶은 고해'라는 사실을 깨닫고 받아들일 때,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다고 말한다. 정말 삶이 힘들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일수록, 인생에 고난이 닥쳤을 때 더 취약한 모습을 보이는 것 같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삶이 힘들고 고달프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역경이 찾아왔을 때 좀 더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나는 가끔 인생은 권투와 같다고 생각하곤 한다. 다른 운동은 몰라도, 권투는 맞을 각오부터 하고 배워야 하는 운동이다. 권투 선수치고 '나는 한 대도 안 맞고 이길 거야!'라고 하는 선수는 없다. 만약 그렇게 생각했다면 맞는 훈련은 건너뛰고, 오로지 상대를 때려눕히기 위 펀치 훈련만 했을 것이다. 언젠가 권투를 배운 친구에게, 펀치력 강화 훈련만 하는 게 아니라 맞아도 버틸 수 있는 맷집 훈련도 병행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무거운 고무공으로 복근을 반복해서 내려치는 것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다.     


권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상대를 때려눕히는 펀치력만 가지고는 불가능하다. 상대가 날리는 펀치를 맞고도 견딜 수 있는 맷집도 겸비해야 승리할 수 있다. 핵 주먹을 자랑하는 타이슨도 무수한 펀치를 맞고 견디는 맷집이 바탕이 되었기에, 그의 핵 펀치가 빛을 발할 수 있었다. 핵 주먹인데 물 맷집이라고 생각해 보라. 핵 펀치를 날려보기도 전에 나가떨어진다!    


상대 선수가 날리는 주먹이 사방에서 예고 없이 날아오는 것처럼, 우리의 인생도 늘 언제 어디에서 날아올지 모르는 펀치에 노출되어 있다. 그래서 갑자기 들이닥치는 고난과 역경을 이상하게 생각하기보다, 미리 맞을 각오를 하고 사는 게 좋다. 같은 펀치도 방심할 때 맞으면 충격이 큰 법이니 말이다. KO도 바로 그 지점에서 당한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면 으레 하는 착각이 하나 있다. 이제 고난 끝 형통 시작이라는 생각이다. '긍정의 힘, 잘 되는 나'도 그런 기대 심리에 부응하기 위해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런 오해는 우리를 헛된 희망으로 고문한 후에, 그동안 깊게 파인 실망의 구렁텅이로 밀어 넣는다. 또한 이렇게 극단적인 한 단면으로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의 형상이 심하게 일그러지는 왜곡 현상이 발생한다.    


나는 헌신하고 순종하면 꽃길을 걷는 것보다 가시밭길을 걷게 될 확률이 높다는 사실을, 목회자가 되기로 했을 때 조금 깨달을 수 있었다. 일반 대학을 졸업하고 목회자가 되기로 했을 때, 내 앞에 펼쳐진 환경은 시온의 대로를 시원하게 내달리는 것이 아니었다. 부모님의 반대를 시작으로, 전에 없던 풍파가 우리 집에 불어 닥쳤다. 일이 술술 풀리기보다 배배 꼬이기만 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얻은 값진 교훈이 하나 있다. 그리스도인이 되고 헌신하면 형통을 주시기도 하지만 그와 더불어 고난도 함께 주신다는 사실을 말이다. 다만 주실 때 형통과 고난을 '뒤범벅'으로 섞어서 주신다는 게 문제다. 이렇게 주시면 받는 우리 처지에서는 굉장히 당혹스럽고 난감하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언가를 주실 때, (친절하게) 보내 주시기보다는 (팽개쳐서) 내던져 주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는 것 같다. 이때 신앙적인 갈등도 최고로 증폭한다.     


불행은 인파 속에 정면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웃고 떠들고 있을 때 우리 등 뒤로 다가와서 칼을 꽂는다.  

   

영화감독 장항준이 TV 프로그램에 나와서, 불행이 어떻게 우리 인생에 다가오는지에 대해서 묘사한 말이다. 신앙을 가졌다고 해서 불행이 봐줄 거로 생각한다면 그건 순진한 생각이다. 불행은 우리에게도 똑같이 언제 어디에서 어떤 모양으로 튀어나와서 괴롭힐지 모른다.


그렇다면 우리와 세상 사람들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을까? 나는 그 차이가 믿음의 여정으로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운명으로 받아들이느냐에 있다고 생각한다. 믿음은 사방에서 펀치가 날아올 때, 체념이 아닌 감내하려는 태도로 나타난다. 이런 태도는 나를 붙들고 계시는 분을 나도 끝까지 붙들게 하고, 그래서 쓰러질 것 같면서도 계속 버 한다.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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