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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과 떨림 Jan 31. 2022

《네까짓 게 뭔데? 네 가치가 얼만데!》

네까짓 게 뭔데?

네 가치가 얼만데!


'네까짓 게 뭔데?' 이것처럼 한 존재를 지우개로 쉽게 지워버리는 말이 또 있을까? 한 사람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까지 전부 부정하고 깎아내리는 말을 들으면 영혼에 시퍼런 멍이 든다. 영혼에 타박상을 입으면 한동안 억울하고 분해서 잠도 오지 않는다. 다른 사람을 함부로 깎아내리는 말속에는 상대적 우월감이 가득하다. '나에 비하면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라는 우월감 말이다.


하지만 이런 우월감이 건강한 자존감으로 이어지는 일은 없다. 괜스레 자존심만 더 굳세질 뿐이다. 동물의 생명을 함부로 생각하는 사람치고 사람의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할 리 없다.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함부로 대하는 사람이 자기를 소중하게 대할 거라고는 상상하기 힘들다. 자기를 향해 욕구 불만이 큰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을 통해서 욕구를 해소하려고 한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부정하는 것으로 존재감을 확보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네까짓 게 뭔데?'라고 말하는 사람이 알고 보면 제일 불쌍한 사람이다. 자기의 가치는 부풀리고 다른 사람의 가치는 축소해야 속이 편한 사람일 테니까 말이다.


다행인 건지 아니면 감사한 건지, 여지껏 살면서 '네까짓 게 뭔데?'라는 말을 들어보지 못했다. 그런 비슷한 류의 말은 몇 번 들은 것 같기도 하다. 보통 이런 말은 나보다 압도적인 클래스나 레벨의 사람이 할 수 있는데, 살면서 그런 사람을 만나거나 상대해 본 적이 없었다. 주로 거기서 거긴 사람들과 지지고 볶으면서 일을 했을 뿐이다. 물론 그 과정에서 영혼의 밑바닥까지 탈탈 터는 멘탈 탈곡기 같은 사람들도 만났지만, 직접적으로 그 말만은 듣지 않았다.


세상에서는 실력에 따라 몸값이 매겨지고, 능력에 따라 연봉이 정해진다. 사람도 물건처럼 얼마에 거래되느냐가 곧 가치를 결정한지 오래 되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뿐인 아들의 핏값을 지불하시고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셨다. 그렇게 그리스도의 핏값이 우리의 몸값이 되었다. 우리의 가치도 질그릇이 아니라 그 안에 담긴 보배로우신 주님께 달렸다. 내가 나에게 혹은 다른 사람이 나에게 '네까짓 게 뭔데?'라고 말한다면, 그래서 자존감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친다면 이렇게 선포하면 어떨까?


'네 가치가 얼만데!'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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