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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과 떨림 Feb 22. 2022

《등짝 스매싱은 사랑이라》

"앗 따가워!"

어렸을 때 고집이 유난히 셌다. 엄마의 거듭된 경고를 무시하거나 하지 말란 것을 기어코 했다가 발각됐을 때, 내 등에는 손바닥 자국이 찍혔다. '등짝 스매싱'을 맞은 것이다. 그러고 보면 엄마의 말을 귓등으로 들었다가 위험천만한 상황에 놓일 뻔한 적이 꽤 있었던 것 같다. 그때마다 등에는 위험의 정도에 비례해서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찍히곤 했다. 덩달아 온몸으로 퍼진 충격파는 서운하다 못해 불편한 전율을 일으켰다. 내가 잘못한 것은 생각하지 않고 서운한 마음만 가득했다. 하지만 등에 난 손바닥 자국이 흐려질 때쯤, 아들이 어떻게 될까 싶은 마음에 가슴을 쓸어내렸을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인정하기 싫었지만, 등짝 스매싱은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데, 네가 엄마에게 얼마나 소중한 아들인데'라는 사실을 일깨워주었다.


등짝 스매싱은 아무나 함부로 날릴 수 있는 한 방은 아니다. 친구 사이라고 해서 함부로 날렸다간 우정에 금이 가는 건 시간문제다. 등짝 스매싱은 오직 부모와 자식이라는 특수 관계에서나 묵인되고 용인되는 따가운 한 방이다. 이것은 '사랑의 매'라는 이름으로 마구잡이로 두들겨 패는 폭력이나 학대와는 그 결이 다르다. 손바닥으로 등을 맞으면 정신이 번쩍 든다. 맞아본 사람은 알겠지만, 손바닥으로 등을 때리면 요란한 효과음과는 다르게 아프지는 않다. 대신 기분이 나쁠 뿐이다. 아무튼 대한민국 엄마들이 지지리 말을 듣지 않는 자식들에게 등짝 스매싱을 날리는 건, 최소의 충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기 위해서가 아닐까 싶다.


한때 하나님께서 내 삶을 사사건건 간섭하고 방해하는 것처럼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럴 때마다 자꾸 내 앞을 가로막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조금씩 그분을 향한 사랑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나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는 걸 알게 되었다. 세 아들을 키우는 아빠가 되고 보니, 그 심정을 조금 알게 된 점도 있다. 자녀가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을 때 혹은 위험천만한 상황에 놓였을 때, 부모는 수수방관할 수 없는 유일한 존재다. 내가 어떻게 되든 상관하지 않거나 뭘 하든 그냥 내버려 둔다면, 그건 특별한 사이가 아니라는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방치하지 않으신다. 사랑하시기 때문에 등짝 스매싱을 비롯한 징계를 하신다. 그분은 고대 그리스 로마의 신들처럼 재미 삼아 벌을 주시는 분도 아니고 분풀이를 일삼는 분도 아니다.


부모가 없이 고아로 자란 사람들에게 가장 큰 결핍은 무엇일까? 그 누구도 자기의 삶에 '이래라저래라'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 싶다. 뭘 하든 상관하지 않고 그냥 '내버려 두는 것'은 아무리 좋게 포장해도 사랑이 아니다. 두손 두발 다 들 때까지 갔다는 건 포기했다는 걸 의미한다. 성경은 그것을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하나로 표현한다. 그래서 '내버려 두는 것(유기)'은 하나님의 심판 중에서도 최고 수준의 형벌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신다. 사랑하기 때문에 간섭하시고 개입하신다. 이 땅에 선지자들을 보내고 또 보내신 것도 모자라, 결국에는 하나뿐인 외아들까지 보내주신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등짝 스매싱을 맞았다고 해서, 그것을 꼭 기분 나쁘게만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다윗이 맞은 등짝 스매싱을 보면 말이다. 한 번은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를 통해 다윗에게 등짝 스매싱을 날린 적이 있었다. 그때 그는 간음과 살인 교사를 숨기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그런 다윗의 등에  '네가 그 사람이라!'라는 말씀으로 손바닥을 선명하게 찍어 주셨다. 그때 집 나갔던 양심이 돌아왔고 깊이 잠들었던 믿음이 깨어났다. 만약 다윗에게 등짝 스매싱이 없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래도 명색이 왕인데 쪽팔리게 한 대 맞은 것을 기분 나쁘게 생각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오늘날 우리가 아는 그 다윗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를 봐주는 것에 있지 않다. 불순종을 보고도 모른 척 눈 감아 주는 것에 있지도 않다. 길이 참으시면서도 거역과 불순종을 용인하지 않는 것이 그분의 사랑이다. 하지만 요즘은 누가 잘못을 해도 그냥 모른 척한다. 꼰대로 불리기 싫어서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다. 이런 세상에 등짝 스매싱을 날려주는 사람이 곁에 한두 명 있다는 건 얼마나 감사한 일일까 하고 생각해 본다. 복 있는 사람은 등짝 스매싱을 날려주는 누군가가 있는 사람이다. 엄마의 마음과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이다. 등짝 스매싱을 날려도 괜찮은 관계라면 보통 특별한 사이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부위는 몰라도 적어도 등짝에 날리는 스매싱은 사랑이다.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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