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울림과 떨림 May 04. 2022

 《작은 그늘이라도 괜찮아》

1. 볼품없어도 괜찮아

지친 엘리야가 이 아래에서 회복을 경험했다는 이유로, 뜻하지 않게 유명해진 나무가 있다. 바로 로뎀나무이다. 이 덕분에 로뎀나무는 자기답지 않게 쉼과 회복이라는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사람들은 로뎀나무하면, 잎이 무성해서 넉넉한 그늘을 만들어주는 모습을 떠올린다. 그러나 로뎀나무는 잎이 무성한 나무와 꽤 거리가 멀다. 광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키가 작은 관목이기 때문이다. 보잘 것없는 떨기나무와 도긴개긴이다. 그래서 로뎀나무가 만드는 그늘이라고 해 봐야 겨우 한 사람에게 제공할 수 있을 정도에 불과하다. 삼천리 금수강산에 익숙한 우리의 눈으로 보면, 로뎀나무는 볼품이 없어도 너무 볼품이 없다. 하지만 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광야에서는 다르다. 오아시스를 만나는 것처럼, 작은 그늘이라도 만들어 주는 로뎀나무가 반갑고 고맙다. 더군다나 엘리야처럼 지쳐 쓰러지기 일보 직전의 사람에게는 그 작은 그늘이 산소 호흡기이자 회복실일 수도 있다. 어쩌다 가끔 만나는 드넓은 그늘보다 필요할 때 만나는 작은 그늘이 더 고마운 법이니까 말이다.

광야처럼 작고 적음이 위력을 발휘할 때가 있다. 군대로 치자면, 행군할 때가 그렇다. 군대에서 가장 힘든 두 가지 훈련이 있다. 유격과 행군이다. 둘 다 몸과 마음과 정신을 극한으로 몰고 가기 때문에 할 수만 있으면 피하고 싶은 고된 훈련이다. 특히 행군은 무거운 군장을 메고 수 시간을 계속 걸어야 하므로, 출발에 앞서 반드시 챙겨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수통에 물을 가득 채우는 일이다. 행군하다 보면, 한참을 더 가야 함에도 종종 수통에 물이 바닥나 고통을 호소하는 훈련병들이 있다. 조금씩 아껴 마신다고 마셨건만, 어느새 물이 바닥나 버린 것이다. 타는 듯한 목마름으로 괴로울 때, 누군가가 건네는 수통의 물 한 모금은 생명수와 같다. 비록 벌컥벌컥 들이켜는 시원한 냉수 한 그릇은 아닐지는 몰라도, 그 물 한 모금 덕분에 행군을 무사히 마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때 건네는 한 모금의 물은 단순히 양으로 환산할 수 없을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똑같이 심한 갈증을 느끼는 처지에서 내 몫을 양보한다는 건 쉬운 일도 아닐뿐더러 내게도 생명수처럼 소중하기 때문이다.

2. 엄두를 내도 괜찮아

주위를 둘러보면, 하나님께 쓰임 받고 싶어 하면서도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라고, 내 주제에 무슨'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 쓰임 받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생각하면서, 뭔가를 해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적어도 명문 대학을 나왔다거나 가진 재산이 많다거나 그것도 아니면 꽤 유명한 사람이라야 하나님께 크게 쓰임 받을 거로 굳게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런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제공하는 드넓은 그늘에 비하면 평범한 사람들이 제공하는 작은 그늘은 상대적으로 하찮게 느껴진다. 이런 생각에 사로잡히면, 좀처럼 엄두를 내지 못한다.

우리말 숙어 가운데 '엄두가 나다' 혹은 '엄두를 내지 못하다'는 말이 있다. 사전에 따르면, 엄두는 ‘무슨 일을 감히 시작할 마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엄두가 나다’라고 하면, 주변 상황이나 여건을 고려할 때 감히 해보려는 마음이 생긴다는 뜻이 된다. 이와는 반대로 ‘엄두를 내지 못하다’고 하면, 상황이나 여건이 좋지 않아 감히 어떤 일을 해보려는 마음을 갖지 못하다라는 뜻이 된다. 내 형편과 상황과 처지를 감안하면 엄두를 낼 일보다 엄두를 내지 못 할 일이 더 많다. 하지만 가진 것이 많다고 해서 엄두가 나는 것도 아니고, 더 넓은 그늘을 만드는 것도 아니다. 받은 은혜에 어떻게라도 반응하려는 사람이 그나마 엄두를 내서 작은 그늘을 만든다. 고작에 불과한 작은 그늘이지만, 누군가는 여기에서 쉼과 회복을 맛보며 다시 희망을 품을 것이다.

3. 작은 그늘이라도 괜찮아

그렇기에 우리가 할 일은 그저 내가 만들 수 있는 정도의 그늘을 제공하면 된다. 그래야 엄두를 낼 수 있다. 그다음은 하나님께서 '고작'일 수 있는 작고 적음으로 누군가를 살리기도 하실 것이며, 누군가를 회복시키기도 하실 것이다. 오병이어의 놀라운 기적이 한 아이의 도시락으로부터 비롯된 것처럼 말이다. 다행인 건, 그늘은 거창하지 않아도, 화려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크고 작음을 떠나서 그늘이라도 제공하려는 마음을 더 귀하게 보신다. 그렇다. 광야 같은 세상을 통과할 때 필요한 그늘은 끝없이 펼쳐지는 드넓은 그늘이 아니다. 광야에 그런 그늘은 존재하지도 않는다. 만약 있다면 그곳은 더 이상 광야가 아닐 것이다. 광야 같은 세상을 지나면서 진짜 필요한 건, 군데군데의 작은 그늘이다. 그 작음이 누군가에게는 생명이고 위로이고 격려일 테니까 말이다.

앞으로도 세상은 커다란 그늘을 만든 이들을 주목하고 기억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개인에게 오랫동안 고마운 존재로 기억되는 사람은 따로 있다. 힘들고 지쳐 쓰러지려고 할 때, 다가와 작은 그늘을 마련해 주고 물 한 모금 건네준 사람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사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사진: Unsplash>

작가의 이전글 《우리를 질리게 하는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