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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과 떨림 May 23. 2022

쉽게 까칠해지는 이유

출근과 세 아이 등교가 맞물리는 아침 시간은 그야말로 전쟁통이 따로 없다. 초등학교에 다니는 첫째와 둘째는 그나마 시간이 되면 집을 나서는데, 장난기 충만한 7살 막둥이는 도통 한 번에 말을 듣지 않는다. 출근하는 길에 유치원에 데리고 가려면 서둘러 양치와 세수를 시켜야 한다. 그런데 막둥이는 천진난만한 얼굴을 하고는 아침부터 숨바꼭질이다. 5번 정도 얘기해도 말을 듣지 않으면, 출근 시간의 임박과 맞물리면서 목소리가 커진다. 그러면 막둥이는 예쁜 목소리로 말하지 않으면 안 가겠다고 또 협박한다. 을질도 이런 을질이 없다. 막둥이는 모른다. 시간에 쫓기면 고상하게 반응할 수 없다는 것을. 또한 바쁨이 여유와 여백을 빼앗아 그곳에 짜증을 채운다는 사실을.


요즘 재미있게 읽고 있는 '태도의 말들'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친절은 마인드의 문제가 아니라 몸의 문제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버스 기사 허혁- 그의 말에 따르면, 버스 기사는 '오전에는 선진국 버스 기사였다가, 오후에는 개발도상국, 저녁에는 후진국 기사가 된다'고 한다. 일과 사람으로 시달리다 보면, 마인드보다 몸이 먼저 까칠하게 반응하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고개가 끄덕여졌다. 피로하고 피곤하면, 그때부터는 몸이 마음을 지배해서 질질 끌고 간다. 그래서 몸이 말을 듣지 않은 건, 마음이 말을 듣지 않은 것이나 다름 없다.


속도가 높을수록 시야는 좁아지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삶의 속도가 빠를수록 주변을 보는 시야도 좁아진다. 그러면 가까이 있는 형제자매나 동료가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돌아볼 겨를이 없다. 타인의 아픔에 무심하고 무감각한 일이 반복되다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잔인한 인간이 되는 건 한순간이다. 우리가 하는 대부분의 후회도 어쩌면 잠깐의 '겨를'도 내지 않은 데서 비롯되지 않을까 싶다.


한가하다고 해서 배려심이 많거나 좀 더 친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바쁘면 좀처럼 남을 배려하거나 친절하게 대하는 일이 쉽지는 않은 것 같다. 까칠함과 짜증은 누구에게나 잠복해 있어서, 바쁠 때 최고조에 이르러 갑자기 툭하고 튀어나온다. (이때 거슬리거나 잘못 걸리면 날벼락 맞을 수 있으므로, 몸을 사리는 게 좋다) 정신없이 바쁘면 나의 말과 행동이 뜻하지 않게 상처나 오해를 줄 수 있다는 걸 유념하려고 한다. 그래서 일부러라도 차 한 잔의 여유나 찬양 한 곡의 여유를 가지려고 짬을 내고자 한다. 마음에 숨통을 트여줘야, 날카롭게 곤두선 신경을 누그러뜨릴 수 있기에 말이다.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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