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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과 떨림 Aug 24. 2022

모른다고 해! 괜찮아!

직업마다 직업병이 있다. 교사는 가르치려고 하고, 목사는 설교하려고 하고, 장사꾼은 셈하려고 하고. 종종 목회자를 찾아와 궁금한 것을 질문하는 분들이 있다. 대답하기 쉬운 질문이라면 상관없지만, 까다로운 질문을 할 땐 난감하다. 목회자라고 성경의 난해한 부분이나 여전히 논란이 되는 부분을 다 아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일상에서 일어나는 설명할 수 없는 사건 사고도 마찬가지다. 목회자를 찾아오는 분들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궁금한 마음에 달려온다. 그런 까다로운 질문에 명쾌한 대답을 내놓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원인을 진단하고 문제를 해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잘 모르면서 마치 다 아는 것처럼 행세하기 쉽다. 왜 그러는 걸까? 행여 목회자로서 신뢰를 잃지는 않을까 하는 염려와 수준 떨어지는 목회자로 보일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잘 모르면서 아는 척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 하나 있다. 장황하게, 길게, 빙빙 돌려서 구구절절 말한다는 것이다. 어떤 질문에 간단명료하게 대답한다는 건, 개념을 확실하게 이해했다는 방증이다. 반면 장황하게 대답한다면, 그건 자신도 뭐가 뭔지 잘 모른다는 증거다. 잘 모르기 때문에, 이것저것 다 끌어와 설명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 듣는 사람은 안다. '이 사람도 잘 모르는구나!' 물론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지만 말이다.

다 안다는 태도가 지나치면, 버럭 화를 내기도 한다. 누군가 질문하면 '그것도 몰라?'라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핀잔을 주는 것이다. 그것도 아니면, '신앙 생활한 지가 언젠데, 직분을 받은 지가 언젠데 아직도 그걸 모르느냐?' 이런 말로 질문한 사람의 입에 재갈을 물린다. 다시는 질문하지 못하도록 쐐기를 박는 것이다. 이런 태도는 어디까지나, 자신의 무지를 감추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몰라도 아는 척하려면, 포장하고 둘러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럴수록 신뢰는 더 떨어질 뿐이다.

우리는 질문에 즉시 대답하지 못하면, 혹시 나를 얕보거나 우습게 보지는 않을까 하고 걱정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아는 척하는 사람보다, 솔직하고 정직한 사람을 더 좋아하는 건 인지상정이다. 질문에 보이는 반응도 그렇다. '그 문제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을 비난하면서 깔보는 사람이 있을까? 수없이 일대일 양육과 소그룹 성경 공부를 인도하면서, 배운 게 하나 있다. 까다로운 질문을 하면 아는 척하지 말고, 그냥 솔직하게 대답하는 게 더 낫다는 걸.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 여기서 그치면 안 된다. 이 말도 덧붙이면 좋다. '저도 그게 헷갈리고 궁금하네요. 괜찮으시면, 자료를 찾아보고 다음에 만날 때 말씀드려도 될까요?' 그리고 다시 만났을 때, 대답해 주면 된다. 이런 태도는 신뢰를 준다. 내 질문을 허투루 듣지 않고, 대답할 말까지 준비해 온 사람을 신뢰하는 건 당연하다.

나 또한 초신자 때, 질문이 많았다. 내 질문에 척척 대답해 준 분도 있었지만, '그건 저도 잘 모르겠네요!'라고 대답한 분도 있었다. 대답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얕보거나 깔본 적은 없었다. 오히려 솔직한 모습에 더 믿음이 갔다. (물론 다시 만날 땐, 질문에 대한 답변을 준비해 왔다) 내 질문을 흘려듣지 않고, 대답을 준비해 온 사람이 싫을 수 있을까? 내 질문을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건, 곧 나를 소중하게 생각한다는 걸 의미한다. 우리는 답을 척척 내놓는 사람보다, 정직한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경청하는 사람에게 마음을 준다.

아는 척하려다, 성경을 억지로 풀다 보면(벧후3:16) 삼천포로 빠진다. 아니, 이단으로 빠진다. 이단의 특징은 성경의 난해한 말씀을 '억지로' 푸는 데 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말이다. 얼핏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이는 영혼에 제초제를 뿌리는 꼴이다. 그럴 바에는,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말하는 게 더 낫다. '저도 잘 모르겠네요. 하지만 찾아보고 알려드릴게요.' 이렇게 반응했을 때, 내게 실망해서 떠난 사람은 없었다. 기꺼이, 더 가까이 다가온 사람은 많았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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