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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과 떨림 May 19. 2023

《요즘은 내가 덜 부끄러워서 다행이다》

나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1.

목회자의 길을 간다고 했을 때, 시작은 호기로웠다. 그러나 갈수록 덩그러니 남은 섬처럼 외로웠다. 나는 믿지 않는 부모의 반대 속에서, ‘어찌어찌하여’ 신학대학원에 들어간 신앙의 1대다. (‘어찌어찌’한 대목은 이전 책에서 간간이 소개한 바 있다) 동기 가운데 3분의 2 이상이, 목회자 아니면 교회 중직자 자녀였다. 부모에게 재정(돈)으로든 아니면 영적(기도)으로든 지원받은 걸 보면서, 한없이 부러웠다. 참고로,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야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다. 익숙하지 않은 것 천지라, 날마다 맨땅에 헤딩하는 심정이었다. 처음엔 장신대가 광나루에 있는 것도 몰랐다.


2.

아무튼 부러움이 계속되면서, 그러려니 하기보단 불합리한 것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내 실력이 남들보다 떨어지는 건, 죄다 든든한 후원과 배경이 없는 탓으로 돌렸다. 불만과 억울한 감정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녔다. 툭하면 이런 마음이 치고 올라왔다. “출발선이 다른데 어떻게 똑같은 경쟁을 하나? 나도 부모를 잘 만났으면, 나도 괜찮은 환경에서 목회자가 되었으면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실력 차이를 전부 나보다 더 좋은 여건과 환경에서 발생하는 격차라고 간주했다. ‘저 사람은 ~하니까, 이 사람은 ~이니까’ 그들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얼마나 치열하게 땀 흘렸는지는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아니, 보려고 하지 않았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자니, 한도 끝도 없었다. 그런데 내가 몰라서 그렇지, 재정이나 영적으로 후원받는 분들도 저마다 어려움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3.

이제 와 생각해 보면, 낯 뜨거운 자기 합리화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목회자의 길을 가면서, 이 정도도 각오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민망했다. 내가 헤쳐나가야 할 몫인데, 내가 씨름해야 할 일인데 응석만 부리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고 보면, 하나님께서 불러서 쓰신 사람들의 면면도 가지각색이었다. 사명도, 달려가야 할 길도, 처한 환경도, 사역하는 여건도 다 달랐다. 여기엔 귀족에서부터 뽕나무를 재배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출신 배경도 달랐다.


4.

이 말인즉슨, 사역하는 출발점이 똑같지 않고 제각각이었다는 뜻이다. 그들은 “하나님. 제게는 왜 이것밖에 안 주셨습니까? 우리 집안은 왜 이 모양입니까?”라고 투덜대지 않았다. 그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사명으로 살았고, 달려갈 길을 달렸고, 주어진 환경에서 사역했다. 나는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너는 왜 저 사람처럼 못 하느냐?”라고 책망하지 않으시는 이유라고 생각한다. 그런데도 지난날 핑계와 변명으로 나의 허접함과 불성실함에 면죄부를 주면서 살았다고 생각하니, 부끄럽고 창피하다. 같은 실수를 반복했던 것도, 성장이 더뎠던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었으리라.


5.

‘돈이 없어서 졌다. 과외를 못 해서 대학을 못 갔다. 몸이 아파서 졌다. 모두가 같은 환경일 수가 없고, 각자 가진 무기 가지고 싸우는 건데, 핑계 대기 시작하면 똑같은 상황에서 또 집니다.’ <스토브리그>에서 백승수 단장이 한 말이다. 그 역시 핑계 댈 게 많았다. 하지만 주어진 조건과 여건 속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걸 하고자 했다. 그는 그렇게 최고는 아닐지라도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나갈 줄 알았다.


6.

이 장면을 보면서, 나는 어떠한가 하고 돌아보았다. 설교 준비 부족을 이런저런 이유로 돌리고 있었고, 또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매번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놓고 있었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댄다고, 부족한 설교 실력이 느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더는 핑계와 변명으로 나를 망치고 싶지 않았다. 내게 없는 걸 부러워하다가 부러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핑계 댈 시간에 글쓰기를 하고 있다. 내게 글쓰기는 설교 준비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요즘은 내가 덜 부끄러워서 다행이다.

(사진: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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