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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울림과 떨림 Jun 26. 2023

《꿍꿍이와 됨됨이》

슬픔에 대처하는 자세

타인의 슬픔에 대처하는 자세를 보면 그의 성품을 알 수 있다. 당신의 슬픔에 대처하는 자세를 보면 그의 진심을 알 수 있다. 당신의 슬픔까지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의 진심을 믿지 마라. -달팽이 안에 달 / 김은주-


전화번호만 아니라 인간도 앞뒤가 똑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아무래도 그건 나부터 불가능해서 안 될 것 같다. 그렇다면 답은 하나다. 앞뒤의 간격을 좁혀나가는 수밖에. 우리는 앞뒤의 격차가 클 때 위선자라고 부르고, 작을 때 어른이라고 부른다. 사람됨의 최대 과제는 일평생 살면서 격차를 줄여나가는 일이 아닐까 싶다. 사랑과 우정 못지않게 질투와 배신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이런 살벌한 세상에서 누가 꿍꿍이를 가지고 접근하는지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면 쓸데없이 오해하는 일도, 시간을 낭비하는 일도, 감정을 소모하는 일도 반으로 확 줄 테니까 말이다. 우리는 진심을 모르기에, 은근슬쩍 떠보거나 간을 본다. 이게 사람을 피곤하게 만든다.


간혹 말이 돌고 돌아, 누군가 날 두고 한 얘기가 나에게까지 돌아올 때가 있다. 지구만 아니라, 말도 돌고 돈다. 평소 가까운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없는 자리에서 안 좋은 얘기를 하는 친구가 있었다. 오해의 씨를 뿌리고 다녔다고 생각하니 불쾌했다. 그것도 믿었던 친구에게 그런 일을 당했다고 생각하니 잠도 오지 않았다. 분하고 억울했지만, 그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그냥 알고 지내는 사이였는데, 주변에 나를 좋게 말해 준 사람도 있었다. 또 어떤 사람은 나에 대한 오해를 바로잡아 준 천사도 있었다. 이걸 본전이라고 생각하면서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르겠다.


자고로 '사랑, 가난, 감기'는 숨기려야 숨길 수 없다고 했다. 우리의 정체도 은연중 본모습을 드러낼 때가 있다. 내가 기쁠 때 혹은 슬플 때 보이는 반응을 통해서 말이다. 내게 기쁜 일이 생겼을 때, 함께 기뻐하면서 마음껏 축하해 주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보면, 기쁜 일이 생겼다는 사실보다 그가 내게 보인 리액션으로 인해 더 기뻤던 것 같다. 또한 내게 슬픈 일이 생겼을 때 비아냥대지 않고, 함께 슬퍼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 마음이 고맙게 느껴지면서 어둠을 뚫고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들어오는 것 같았다.


그렇다. 됨됨이는 타인의 희로애락에 대처하는 자세를 통해서 드러난다. 진심도 그러하다. 그중에서도 슬픔에 대처하는 자세를 보면 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하필 하고 많은 감정 중에서 슬픔일까? 기쁨에는 내게 득이 될 만한 게 많다고 생각하기에 그런 척이라 하는 사람들이 몰린다. "어쩌면 내게도 떨어질 콩고물이 있을지도 몰라!"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슬픔은 다르다. 슬픔이 생겼다는 건, 실패와 좌절과 낭패가 찾아왔다는 뜻이다. 도움을 받을 일보다 도움을 줘야 할 일이 생긴 것이다. 사람들은 촉이 발달해서 다른 사람의 기쁨에는 엮이고 싶어 하면서도, 슬픔에는 엮이려고 하지 않는다. 엮이면 골치 아프다는 걸 알기에 거리 두기를 하는 것이다. 도움은 슬픔을 당한 사람에게 더 필요한데 말이다. 주변에 꿍꿍이를 가진 사람보다 됨됨이를 갖춘 사람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끼리끼리 논다고 하던데, 그렇다면 나는 어느 쪽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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