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17일 금요일
오랜만에 금요일에 일이 일찍 끝났다. 아내도 낮에 시간이 비어서 둘이 데이트를 하기로 했다. 아이들이 각자 유치원과 학교에 가있는 동안 데이트를 할 수 있는 날은 흔치 않다. 날씨도 화창하고 색바람이 불었다. 집 근처말고 나들이 겸 버스타고 부산역 쪽으로 가서 점심을 먹자고 했다.
우리집에서 부산역까지 버스로 30분 정도 걸린다. 점심 먹고 카페에서 커피 한 잔 마시고 가면 아들의 하교 시간까지 여유있게 맞출 수 있었다. 마침 버스에 자리도 있어서 아내와 앉아서 갔다. 가는 동안 아내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아내와의 대화는 늘 즐겁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자 나의 가장 친한 친구가 아내다. 아내와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하면서 자연스럽게 버스 앞쪽을 봤다. 우리가 탄 자리는 버스 뒷문 쪽에서 두 줄 뒤였다. 나의 자리에서는 버스 기사님의 뒷자리가 보였지만, 아내의 위치에서는 사람들에게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버스 기사님 뒷자리에 어딘가 낯익은 옆모습이 보였다. 그 분을 보고 나는 속으로 '우리 장모님과 정말 닮으신 분이네' 생각했다. 그런데 그 분이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는데 아니나다를까 우리 장모님이셨다. 장모님은 나를 알아보지 못하셨는지 다시 고개를 돌리셨다. 곧바로 나는 아내에게 "여보 저기 앞에 어머님 계시는데" 라고 말했다. 아내는 이 사람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냐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앞쪽을 바라봤다. 하지만 사람들이 그새 많이 타서 볼 수 없었다. 아내는 휴대폰을 꺼내서 어머님께 전화를 걸었다. 어머님은 가방에 폰을 넣으셨는지 전화가 오는 걸 모르시는 것 같았다. 나는 아내에게 어머님은 서 계시고 그 앞에 아버님께서 앉아계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아내는 아버님께 전화를 걸었다. 아버님은 곧바로 받으셨다. 아내는 아버님께 우리가 탄 버스 번호를 이야기하며 여기에 무슨일로 탔냐고 장난스럽게 말했다. 아버님은 전화기를 든 채 고개를 두리번거리셨다. 그리고 우리를 발견하시고는 놀라시며 손을 흔드셨다. 아내는 아버님께 어디로 가냐고 물었고, 아버님께서는 국제시장 쪽에 간다고 하셨다. 우리는 계획을 바꿔 어머님과 아버님이 내리시는 곳에 같이 내리기로 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아버님께서 너희가 어떻게 이 시간에 여기 있냐고 물으셨다. 우리는 이러저러해서 둘이 밥먹으려고 버스타고 가는 길이었는데 우연히 어머님과 아버님을 봤다고 했다. 두 분은 크게 웃으시면서 진짜 반가운 우연이라고 하셨다. 아내는 아버님께 지금 배가 고프니 시장 구경은 나중에 하고 밥부터 먹자고 재촉했다. 아버님께서는 그럼 여기 유명한 갈비집이 있는데 거기로 가자고 하셨다. 오래된 집인데 언제 가더라도 늘 맛있다고 하셨다. 나와 아내의 원래 계획은 돼지국밥이었지만, 아버님의 말씀에 솔깃했다. 아버님은 30여년 전에 족발집과 닭꼬치 집을 하셨었다. 이후 택시기사님도 하셨기 때문에 음식에 관해서는 일가견이 있으셨다. 아버님께서 맛있다고 하는 곳은 늘 맛있었다. 나는 주저없이 아버님이 가자고 하는 식당으로 따라갔다.
간판의 네온사인이 벌써 오래된 느낌이었다. 아직 낮이었는데도 갈비를 구워드시는 손님들이 꽤 있었다. 이곳은 부산역에서도 가깝고 바로 옆에는 국제시장이 있기 때문에 관광객들이 많이 온다고 했다. 특히 양념갈비가 일품이어서 일본인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다고 했다. 우리가 식당에 들어선 지 10분 뒤에 곧바로 일본인 관광객 11명이 들어왔다.
우리는 양념갈비 4인분을 주문했다. 뼈가 붙어 있지 않은 고기에 양념이 되어 있었다. 숯불 위에 그물망처럼 생긴 석쇠를 올리고 직원분께서 직접 고기를 구워주셨다. 새 석쇠를 위에 올리고 기존 석쇠를 같이 뒤집으면서 고기를 옮겼다. 석쇠를 자주 바꿔가면서 고기를 구워주시는 그 기술이 예술이었다. 구워진 양념갈비는 야키니쿠 스타일이었다. 고기가 부드럽고 양념도 적당히 맛있게 배어있어서 왜 일본인들이 많이 오는지 알 것 같았다. 양념갈비는 돼지갈비이고 소금구이는 소갈비였다. 소갈비도 2인분 먹어보았다. 리코타 치즈처럼 입안에서 부드럽게 녹았다. 맛있게 먹고 식당을 나오면서 아버님께 감사드렸다. 아버님께서 가자고 하는 식당은 항상 다 맛있다고 말씀드렸더니, 기분좋게 웃으시며 너희가 맛있게 먹어서 기분좋다고 하셨다. 이 근처에 맛있는 국밥집도 있다고 하시며 다음에 같이 오자고 하셨다.
어머님 아버님과의 만남은 항상 즐겁다. 해주시는 말씀들에서 많은 것을 배운다. 무엇보다 두 분께서 좋아하시는 걸 나도 함께 할 때마다 어머님 아버님과 더욱 가까워지는 기분이다. 더 끈끈해진다. 두 분의 추억에 나도 함께 자리잡게 되어서 좋다. 어머님 아버님이 내 장모님 장인어른이셔서 정말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