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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충녕 Dec 14. 2023

아파트와 수직적 사고

고층 아파트가 정신에 끼치는 영향

  

 인간은 정신뿐만 아니라 몸을 통해 살아가는 존재다. 몸은 공간 안에 위치하면서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은 주거공간이다. 따라서 주거공간의 형태에 따라 인간의 삶은 아주 많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한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고층 건물에 사는 사람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한국 가구의 50% 이상이 아파트에 산다. 오피스텔까지 포함하면 고층 건물에 사는 사람들의 비율은 더 크다.


 내가 유학 생활을 했던 유럽에 비해 한국의 도시는 훨씬 수직적인 구조를 띠고 있다. 유럽은 대도시라고 해도 보통 고층 건물이 별로 없다. ‘아파트’라고 불리는 건물은 많지만, 대부분 3~8층 사이의 낮은 아파트들이다. 한국 기준에서는 빌라라고 불러야 할지도 모른다. 반면 한국의 아파트는 대부분 10층 이상의 고층 건물이다. 한국의 도시는 서울이나 부산 같은 대도시가 아니더라도 대부분 고층 아파트 위주로 구성돼 있다.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그려보면, 평평하고 납작하기보다는 군데군데 뾰족뾰족 솟아오른 부분이 많다.


 수직적 공간의 가장 큰 단점은 주변 자연환경과의 괴리를 낳는다는 것이다. 고층 아파트는 땅과의 거리가 멀 수밖에 없다. 땅은 지구상 생명체에게 대체 불가능한 자연으로서의 면모를 갖는다. 물이 스며들고, 나무와 풀이 자라고, 생명이 뛰놀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땅이다. 그런데 고층 아파트에 사는 인간은 땅과의 상호작용을 상실한다. 나뭇잎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도, 새가 푸드덕거리는 소리도 듣지 못한다. 일상이 자연으로부터 유리되고 인공적인 것들로 가득 채워진다. 고층 아파트에 살면서 자연과 상호작용하려면 따로 시간을 투자해 공원에 가거나 여행을 떠나야 한다. 그런데 그런 경험은 ‘예외적’ 사건으로서 의미를 가질 뿐이며, 결코 일상 속에 깊숙이 뿌리내리지 못한다.


 또한 수직적 공간은 특정 범위 안에 시설이 집중되도록 만든다. 고층 아파트 주변에는 반드시 상업시설, 의료시설, 교육시설이 밀집된 상가가 생긴다. 혹은 주상복합 아파트라면 아예 건물 안에 여러 시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애초에 수직적 공간은 좁은 땅에 많은 사람이 살기 위한 수단이다 보니, 그 주변 범위 안에 인간 생활에 필수적인 모든 것이 집중된다. 그러면서 공간의 양극화가 일어난다. 특정 범위의 공간은 밀도가 지나치게 높아지는 반면, 나머지 공간은 소외된다. 서울 같은 대도시야 건물이 하도 빽빽이 들어차 있어서 버려진 공간이 별로 없는 느낌이지만, 중소도시에는 애매하게 남는 땅이 참 많다. 사람이 아파트 주변에만 모이니, 나머지 땅은 관리가 안 된 채 매력 없는 공간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흔하다.


 수평적 공간 구조의 도시에서는 많은 게 다르다. 자연과 인간 사이의 상호작용이 훨씬 더 활발하며, 공간의 밀도가 비교적 고르게 분포돼 있다. 카페 하나가 툭 있고, 걷다 보면 식당이 하나 나오고, 그 옆에 미용실이 있고, 또 조금 걷다 보면 병원이 나오는 식이다. 생활을 위해 효율적으로 조직된 ‘공장’에 사는 느낌이 아니라, 환경을 영위하며 사는 느낌이 든다. 물론 수평적 공간에는 수직적 공간 특유의 밀집성으로부터 나오는 높은 생산성과 편리성이 없다. 따라서 생산성과 편리성을 최고의 가치로 추구해 왔던 한국 도시에서는 수평적 공간이 발전할 수 없었다.


 철학에서 수직성에 대한 선호는 아주 흔히 발견되는 현상이다. 서양철학의 거대한 조상 중 한 명인 플라톤은 육체의 한계에 묶인 어두운 차원과 진리가 환히 드러나는 천상의 차원을 구별했다. 플라톤의 사상을 이어받은 플로티누스는 아예 이 두 차원의 높낮이 구별을 명확하게 이론화시켰다. 그는 가장 높은 곳에 진리의 세계를, 그보다 낮은 곳에 정신의 내면세계를, 그것보다 더 낮은 곳에 육체와 감각의 세계를 위치시키면서, 모든 존재를 수직적으로 구조화시켰다. 이러한 수직성의 아이디어는 기독교 문화와 결합해, 높은 이상세계와 낮은 지상세계 사이의 구별을 고착화시켰다. 현대의 철학자 니체는 이러한 서양 전통 철학의 수직적인 서열화를 아주 격렬히 비판했다. 근데 모순적이게도 니체 역시 나름의 수직성을 수호했다. 그는 정신을 저열하게 만드는 비천한 중력을 극복하고 높은 산 위로 올라가는 초인의 이미지를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제시했다. 이전의 전통 철학이 인간의 낮음과 신의 높음을 구별했다면, 니체는 저열한 인간과 고상한 인간을 구별했다. 이처럼 수직적 사고는 침투력이 강하다. 비판적 사고에 비교적 능한 철학자들마저도 무비판적으로 수직적 사고를 받아들일 때가 많다.


 수직적 사고가 꼭 나쁜 건 아니다. 좋음과 나쁨, 혹은 옳음과 그름을 수직적으로 나눈 후 한 방향을 추구하는 움직임은 지금까지 인류의 발전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수직적 사고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제대로 볼 수 있는 것들도 정말 많다. 타인과의 공존, 다른 생명체와의 상호적 관계, 주변 환경과의 일체감 등은 수평적 사고를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는 고유의 현상이다.


 거주공간은 인간의 사고방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따라서 고층 아파트 위주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인간이 수평적 사고를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한국의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다른 문화권에 비해 극도로 수직적인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지할 필요가 있다. 그렇게 자신이 살아가는 공간의 특성을 이해해야만 자신도 모르게 공간의 영향을 받아 수직적 사고에 매몰되는 일을 조금이나마 경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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