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절 한강 ④]
강은 흐르지 않는다

스타벅스 서울웨이브아트센터점

by 배은빈

만약 누군가 나에게 인생책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꼽겠다. 삶이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시간’을 살아내는 것인데, 그렇다면 시간의 본질이나 형식을 아는 것이 중요할 수 있다. 물론 시간은 우리에게 아주 친숙한 존재이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출근준비를 하고 지하철에 몸을 싣고 9시에 출근해서 12시에는 점심을 먹고 다시 오후 6시까지 업무를 하다 퇴근을 해서 잠깐의 여유시간을 가진 후 잠자리에 들어 또다른 내일을 준비하는 일상. 시간이란 항상 우리의 일상 뒤에 흐르고 있는 것이며 새삼 시간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이 오히려 어색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시간과는 조금 다른, 아인슈타인이 이야기한 우주의 시간이 존재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나에게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는 이러한 우주의 시간을 물리학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 책이다(물론 책의 모든 내용을 완벽하게 소화한 것은 아니다. 물리학은 정말이지 쉬운 학문이 아니다. 하지만 물리학자들조차도 양자역학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는 말도 있지 않은가. 너무 욕심부릴 필요는 없다.).

물리학적으로 시간은 균일하게 흐르지 않는다. 모든 장소의 시간은 다른 리듬과 속도를 갖는다. 예를 들어 평지에서의 시간보다 산 위에서의 시간이 조금 더 빨리 흐른다. 실제 물리학적으로 측정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도 일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놀라울 수 있지만 시간과 관련한 더욱 충격적인 사실이 있다. 바로 과거와 현재, 미래에는 어떠한 본질적인 차이도 없다는 것이다. 과거와 미래의 차이는 물리학적인 본질과 관련이 있다기보다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우리가 ‘과거’라고 느끼는 시간은 우리가 이 시간을 ‘희미하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세부적인 사항들을 무시하고 이 시간을 특정한 기준과 시각으로 특수하고 특별하게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과거는 닫혀 있고 미래는 열려 있으며 과거에서 미래로 시간이 흐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이는 차가운 곳에서 뜨거운 곳으로는 흐를 수 없는 ‘열’의 개념과 관련이 있다. 열은 항상 뜨거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만 흐르며, 뜨거워진다는 것은 (뜨거워지기 이전의 기준에서 보면) 분자들의 배열이 무질서해진다는 것이다. 더 자세한 내용이 궁금하다면 책을 직접 읽어보시길 바란다. 카를로 로벨리가 최대한 쉽고 친절하게 설명해 놓았다.).


반포대교와 한남대교의 거의 중간 지점에 서울웨이브아트센터라는 곳이 있다. 이 건물 안에 한강을 조망하면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있다. 4월의 어느 흐린 봄날,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들고 이곳을 찾았다. 카페에 들어서 일단 한강을 정면으로 마주할 수 있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한 잔 주문하였다. 나는 카페인에 굉장히 민감하기 때문에 디카페인으로 주문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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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흐린 봄날, 스타벅스 서울웨이브아트센터점을 찾았다.


아메리카노를 몇 모금 마셨다. 그리고 창밖으로 한강을 바라보았다. 강이 흐르고 있었다. 아니, 강이 정말 흐르고 있는 것이 맞을까? 강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랬더니 강이 흐른다기보다 물결의 움직임의 집합 같은 느낌이 들었다. 잔물결이 수면의 이곳저곳에서 어른거렸다. 아마 내가 좀 더 미시적으로 관찰할 수 있다면 강은 그저 물분자들이 요동치는 곳에 지나지 않을 것이었다. 상류의 한강과 하류의 한강이 본질적으로는 다른 곳이 아닌 것이다. 시간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과거는 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희미한 시각에서 비롯된다. 그렇다고 이것이 나쁜 것이라는 뜻은 아니다. 우리가 과거의 모든 일을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다 기억한다면 삶이 어떻게 되겠는가. 하지만 그래도 나는 조금은 덜 희미하게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과거를 너무 단정 짓지 말고 미래가 과거와는 다르기를 원한다면 조금 더 세밀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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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서 바라본 한강. 미래가 과거와는 다르기를 원한다면 조금 더 세밀하게 바라보는 시각이 필요하다.


오랜만에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를 펼쳐 보았다. 손끝에 닿는 종이의 촉감이 포근하다. ‘우리가 지금 하는 말도 시간이 자신의 전리품으로 이미 가져갔으며, 되돌릴 수 없다.’(p.7, 송가) 책을 보다 커피를 한 모금 마셨더니 따뜻한 커피가 어느새 식어있었다. 시간이 자신의 전리품으로 가져간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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