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업무 도중 잠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때 어떤 마음이었나요? 아마 시원하게 뚫린 풍경을 즐기기보다는, 누가 볼까 봐 황급히 눈동자를 굴리며 다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을지도 모릅니다.
"농땡이 피우는 것처럼 보이면 어떡하지?"
우리는 '쉬는 것'에 대해 묘한 죄책감을 느낍니다. 1분 1초를 아껴 무언가를 생산해 내야 한다는 강박이 잠시의 멍함조차 용납하지 않으니까요. 화장실에 갈 때조차 스마트폰을 들고 가 뉴스라도 봐야 마음이 편해지는 게 현대인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상사가 지나가다가 창밖을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면, 그는 나를 게으른 직원이라고 생각할까요? 아니면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중이구나'라고 생각할까요? 슬프게도 전자일 확률이 높다는 불안감이 우리의 고개를 떨구게 만듭니다. 그거 아시나요?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은 버려지는 시간이 아닙니다. 우리의 뇌가 간절히 원하고 있는 초고효율 충전의 시간이라는 것을요.
창문(Window)의 어원을 아시나요? 고대 노르드어 'Vindauga'에서 유래했는데, 이는 '바람(Wind)의 눈(Eye)'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집이 바깥세상을 향해 뜨고 있는 눈이자, 바람이 통하는 길이라는 뜻이죠.
창문은 살아있는 액자입니다. 우리가 갇혀 있는 사무실이나 방 안은 정지된 공간입니다. 책상도, 모니터도, 서류 뭉치도 늘 그 자리에 있죠. 하지만 창문 밖은 다릅니다. 구름은 흘러가고, 나뭇잎은 흔들리고, 사람들은 걸어갑니다. 창문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상의 풍경을 네모난 프레임 안에 담아 보여줍니다.
답답한 실내 공기에 갇혀 질식할 것 같을 때, 창밖을 보는 행위는 보기가 아니라 환기입니다. 나의 시선을 저 멀리 던져둠으로써 꽉 막힌 머릿속에 바람구멍을 내는 것이죠.
컴퓨터가 버벅거릴 때 재부팅을 합니다. 스마트폰이 느려지면 실행 중인 앱들을 모두 종료하죠. 그런데 왜 가장 복잡한 뇌는 재부팅해 주지 않나요? 종일 쏟아지는 정보, 업무 지시, 카카오톡 알림... 뇌는 과부하 상태입니다. 이럴 때 창밖을 보며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는 시간은 뇌의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켜는 리셋 버튼과 같습니다.
뇌과학적으로도 우리가 멍 때릴 때, 뇌는 쉬는 것이 아니라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라는 부위를 활발하게 가동한다고 합니다. 이때 뇌는 불필요한 정보를 삭제하고, 엉킨 기억을 정리하며,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연결합니다.
멍하니 창밖을 보고 있는 그 순간은 겉보기엔 정지해 있는 것 같지만 뇌 안에서는 청소와 정리 정돈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멍 때리는 자신을 자책하지 마세요. '농땡이'를 피우는 게 아니라, 더 잘 달리기 위해 '정비' 중이니까요.
창밖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해야 하냐고요? 아무것도 생각하지 마세요. 관찰 모드만 켜세요.
저 멀리 걸어가는 행인을 보세요. 그 사람은 무슨 일로 저렇게 급히 걷고 있을까요? 도로 위 꽉 막힌 차들을 보세요. 그 안에 탄 사람들은 무슨 음악을 듣고 있을까요? 바람에 흔들리는 가로수를 보세요. 바람이 어느 방향으로 불고 있나요?
치열한 현실에서 한 발자국 물러나 유리창 너머의 세상을 영화 보듯이 관찰하는 겁니다. 시선을 외부로 돌리면 신기하게도 나를 짓누르던 고민의 무게가 조금 가벼워집니다.
'다들 저마다의 속도로 살아가고 있구나.'
이런 거리 두기가 주는 위로가 있습니다. 창문은 나와 세상 사이에 안전한 거리를 만들어주는 보호막이자, 나를 객관화시켜주는 렌즈 역할을 합니다.
가부좌를 틀고 자세를 잡고 눈을 감는 것만이 명상은 아닙니다. 창문 명상은 직장인들에게 가장 유용한 명상법이 아닐까 합니다.
타이머는 5분: 너무 길면 눈치 보이니까요. 딱 5분만 투자하세요.
시선은 멀리: 바로 앞 건물이 아니라, 최대한 멀리 있는 하늘이나 산, 혹은 도로의 끝을 바라보세요.
판단 중지: "저 건물은 낡았네", "미세먼지가 심하네" 같은 판단을 하지 마세요. 그냥 "건물이 있구나", "하늘이 뿌옇구나" 하고 있는 그대로를 보세요.
호흡과 함께: 창밖 풍경을 들이마신다는 느낌으로 깊게 숨을 들이쉬고, 내 안에 고인 탁한 공기를 창밖으로 내보낸다는 느낌으로 천천히 내뱉으세요.
5분의 의식이 끝나고 다시 모니터 앞으로 돌아왔을 때, 눈은 조금 더 맑아져 있을 것이고, 어깨의 긴장은 조금 풀려 있을 겁니다.
프랑스의 시인 폴 발레리는 말했습니다.
"바람이 분다. 살아야겠다."
아마 창밖을 보며 바람에 흔들리는 세상을 보았을 겁니다. 그 풍경 속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겠지요. 우리에게도 그런 순간이 필요합니다. 효율성이라는 잣대로 모든 시간을 난도질하지 마세요. 가끔은 아무 목적 없이, 아무런 생산성 없이 창밖의 구름을 쫓는 낭비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런 낭비는 영혼을 살찌우는 풍요로운 거름이 될 테니까요.
요즘 일이 안 풀리시나요? 머리가 지끈거리나요? 그렇다면 지금 당장 고개를 들어 창문을 바라보세요. 그곳에 당신을 위한 바람이 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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