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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인의 대화가 내 마음에 꽂힐 때

by 아마토르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고 사는 우리들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카페에 갈 때 무엇을 가장 먼저 하시나요? 아마 십중팔구 가방에서 이어폰을 꺼내 귀에 꽂으실 겁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버스에 타자마자 '노이즈 캔슬링' 기능을 켜고, 세상의 소리를 완벽하게 차단한 채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재생합니다.

우리는 타인의 소리를 '소음'이라고 규정하는 데 익숙합니다. 지하철 옆자리의 수다 소리, 카페 뒷자리의 큰 웃음소리, 길거리를 지나가는 사람들의 통화 내용... 모든 것이 내 휴식을 방해하는 불청객처럼 느껴지죠. 그래서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투명한 벽을 세웁니다. "방해하지 마시오"라는 팻말을 이마에 붙인 채로요.

이해합니다. 너무나 많은 정보와 소음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고요함은 생존 필수품이니까요.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습니다. 차단한 수많은 소리 속에, 어쩌면 지금 나에게 꼭 필요한 '우주의 메시지'가 숨어 있었다면요? 너무 완벽하게 귀를 막고 사는 바람에, 우연이 건네는 위로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닐까요?


우연히, 보호막이 해제된 순간

어느 주말 오후였습니다. 혼자 카페에서 작업을 하려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습관처럼 헤드폰을 쓰려는 찰나, 배터리가 방전된 것을 알았습니다. '아, 망했다.' 주말의 카페는 시장통처럼 시끄러웠고, 짜증 섞인 한숨을 내쉬며 어쩔 수 없이 맨 귀로 공간에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말소리가 섞여 들어왔습니다. 집중은커녕 정신이 사나워지려던 그때, 옆자리에서 들려오는 어떤 대화가 제 귀에 꽂혔습니다. 중년의 여성과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 마주 보고 있었습니다. 모녀 지간 같았습니다. 취업 준비생으로 보이는 딸이 풀이 죽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엄마, 나 이번에도 떨어지면 어떡하지?"

저도 모르게 키보드 두드리던 손을 멈췄습니다. 저 역시 당시 준비하던 일이 잘 풀리지 않아 겉으로는 태연한 척했지만 속으론 곪아가고 있었거든요. '또 타이밍을 못 맞추면 어쩌지' 하는 불안감이 저를 잠식하고 있었죠. 그때, 엄마로 보이는 분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얘, 꽃도 피는 시기가 다 달라. 봄에 피는 꽃이 있고 가을에 피는 꽃이 있잖아. 넌 그냥 네 계절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야. 늦는 게 아니라 준비하는 거라고."

익히 알고 있는 말이었지만 불안에 잠식당한 저는 미처 꺼내볼 생각조차 못 했습니다. 그 말은 딸에게 해주는 말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우연히 그 자리에 있던 저에게 해주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아, 나도 내 계절을 기다리는 중이구나.'

이름 모를 타인의 사적인 대화 한 조각. 진심 어린 한마디가 제 불안을 단번에 잠재워 주었습니다. 만약 헤드폰을 쓰고 있었다면, 저는 여전히 불안 속에 갇혀 있었겠지요.


타인은 지옥이 아니라 '메신저'일지도 모른다

철학자 사르트르는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말했지만, 요즘 저는 "타인은 메신저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난 사람들과 SNS에서 굿모닝 인사를 나누는 사람들을 통해 점점 더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가 혼자만의 생각에 갇혀 끙끙 앓고 있을 때, 세상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힌트를 던져주기도 합니다. 그것은 종종 낯선 타인의 입을 통해 전달됩니다.

지하철에서 친구와 통화하며 "야, 그냥 저질러!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단 낫지!"라고 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망설이던 나의 등을 떠밀어 주기도 하고요. 버스 정류장에서 아이를 달래며 "괜찮아, 일어나면 되잖아"라고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가 실패로 의기소침해진 나를 일으켜 세우기도 합니다.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저의 고민이 여러분의 고민이고, 여러분의 깨달음이 저의 해결책이 될 수 있습니다. 타인의 대화가 내 마음에 꽂히는 순간은, 우리가 서로 다른 삶을 살고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같은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는 공명의 순간입니다.


'오디오 수집가' 되어보기

여러분께 '오디오 수집가'가 되어보기를 권합니다. 일주일에 하루, 혹은 하루에 딱 30분만이라도 이어폰을 빼고 세상의 소리에 귀를 열어두는 겁니다. 훔쳐 듣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배경음악(BGM)을 듣는다는 가벼운 마음으로요.

카페에서: 책을 읽거나 멍하니 있으면서 들려오는 주변의 대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세요. 불평하는 소리, 깔깔거리는 웃음소리, 진지한 고민 상담... 생생한 삶의 소리들이 의외로 백색 소음처럼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 때가 있습니다. "아, 다들 저렇게 치열하게, 또 즐겁게 사는구나" 하는 위로를 얻기도 하죠.

대중교통에서: 사람들의 표정과 목소리 톤을 관찰해 보세요. 피곤에 찌든 목소리에서도 가장의 무게가 느껴지고, 들뜬 목소리에서 설렘이 전염됩니다. 물론 요즘은 버스나 지하철에서 크게 말하는 사람이 적긴 하지만요.

마음에 꽂힌 한 문장 기록하기: 그러다 우연히 당신의 마음에 콕 박히는 문장이 있다면 놓치지 말고 메모장에 기록하세요. 그 문장은 지금 나의 무의식이 가장 듣고 싶어 했던 말일 확률이 높습니다.


우연을 가장한 필연적 위로

듣기 싫은 소음이나 거북한 대화도 있을 겁니다. 그럴 땐 다시 조용히 이어폰을 꽂으셔도 좋습니다. 하지만 너무 오랫동안 귀를 닫고 살지는 마세요.

마음이 닫혀 있을 땐 아무리 좋은 말도 들리지 않지만, 마음이 간절할 땐 스쳐 지나가는 바람 소리에서도 답을 얻는 법입니다.

오늘 우연히 들은 타인의 말 한마디가 사실은 나를 위해 준비된 우주의 선물이었다면?

"괜찮아, 잘하고 있어." "좀 쉬어도 돼." "사랑해."

이런 말들이 꼭 사랑하는 사람의 입에서만 나와야 하는 건 아닙니다. 때로는 전혀 모르는 낯선 이의 목소리를 빌려 삶은 우리를 위로하고 싶어 하니까요.

오늘 퇴근길이나 내일 점심시간에는 잠시 세상의 볼륨을 높여보세요. 어쩌면 그토록 찾아 헤매던 답이 바로 옆 테이블의 소리 사이에서 들려올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귀는, 그리고 당신의 마음은 오늘 어떤 이야기를 수집하고 싶은가요?




이미지: Unsplash, ©wackomac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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