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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안 Feb 27. 2022

결국 이렇게 포기해야 하나

호주 워킹홀리데이 이야기 에피소드 #2

"아들아, 미안하지만...

지금 집안 사정이 힘들단다.

미안하다.."


미국 대학원 합격 통지서를

식탁에 올려놓은 순간

어두운 부모님의 표정에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빗나가기를 바랐던 예상을

이렇게 바로 현실로 마주하니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강릉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그동안 고생했던 대학생활의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모든 대학 소셜 활동을 포기하고 학점을 선택한 아웃 사이더

공학도 모르고, 프로그래밍도 모르고, 영어도 몰라서

강의실에서도, 도서관에서도, 기숙사에서도 언제나

책만 붙잡고 오기와 끈기로만 버텼던 대학 생활


어느 순간부터 밤샘 코딩 과제와 공부가 당연해졌고,

어느 순간부터 청바지를 입고 잠드는 것이 편해졌고,

어느 순간부터 방학은 영어 학원에서 보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렇게 대학교 3년을 버티고, 졸업을 1년 앞둔 4학년이 되었다.

설날에는 영어 공부를 하고, 영어 시험을 치르고,

추석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미국 대학원 원서비를 벌고,

크리스마스에는 미국 대학원 지원을 하고 또 영어 공부를 이어갔다.

 

결국 대학교 4년 동안의 결과는

성적표 한 장과 수석 졸업이라는 타이틀 하나로

퉁치고 끝났다. 그 이상의 무언가는 없었다.


대학생활 4년 치의 종이 한 장


공허함이 파도처럼 밀려왔지만, 나는

미국 대학원 진학의 다음 단계가 있었고,

이를 달성했기 때문에 앞으로를 기대했다.


하지만, 그다음 단계가 무너지면서

대학생활의 공허함과 다음 단계의 상실감은

수 십배, 수 천배가 되어 나를 짓눌러 버렸다.


그 순간이 무거웠다.

그 순간이 너무 답답했다.

슬펐다. 그래서 목 놓아 울었다.


수능에도 실패하고,

재수에도 실패하고,

결국 지방대에 입학한 아들의 기를 살려주려고

그저 힘을 실어주려고 한 말이었을 텐데..


1%도 안 되는 그 확률에 

나는 4년 동안 목숨을 걸었고,

결국 했냈는데.. 준비가 안 되어있다니..

처음에는 부모님 원망도 했었다.


하지만 부질없었다.

내가 선택한 길이였고,

그 결과 또한 내가 받아들여야만 했다.

더욱이, 나는 더 이상 어린애가 아니었다.



평생을 수도권 지역에서 가족과 함께 살다가

20대가 되어 강릉에서 혼자 대학생활을 하면서

외롭고 힘든 적도 많았다. 하지만 동시에 

정신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독립적으로 변했다.


열심히 공부해서 전액 장학금을 받았던 이유도

잠자는 시간도 부족했지만 과외, 번역, 조교, 카페, 식당 등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푼 돈을 벌었던 이유도 스스로 해내고 싶었다.


그동안의 부모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나름 조금씩 조금씩 꿈틀거렸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어렵고, 힘들었지만,

조금씩 적응이 되고, 계좌에 쌓이는 금액을 보면서 

나름의 성취감도 느꼈다.


하지만, 부모님을 이해하기에는 내가

그 당시 너무 어렸다. 그저 

"다음은 무엇일까?"

"결국 이렇게 포기해야 하나?"

라는 생각만으로 나름 돌파구를 찾으려고 했다.


장학금이란 장학금은 모두 지원했지만,

돌아오는 결과는 모두 불합격이었다.

돈이 많은 친척도 친구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 옵션이 바닥나버렸다.


"입학을 연기하고, 1년 동안 일을 해서 돈을 벌까?"

"그럼, 무슨 일을 해서 돈을 벌지?"

"무슨 일을 해야 단 기간에 돈을 많이 벌 수 있을까?"


그날 이후,

머릿속에는 온통 대학원 학비 마련에 대한 생각만 들었다.

물론 1년 동안 일을 하면서 대학원 학비를 준비하고 

다음 해에 조금은 여유롭게 대학원에 갈 수 있다는 결정이

가장 바람직했지만, 이상하게 가슴이 움직이지 않았다.


플랜 B 없이 언제나 플랜 A에만 올인하는 성격 때문에

이러한 예상치 못 한 시나리오에 대해서는 참.. 

대응하기가 쉽지 않았다. 다시 처음부터 생각해야 했다.


오랜만에 지도 교수님을 찾아뵈었다. 

대학교 1학년 신입생 때부터 미국 대학원 유학을

가겠다고 어떤 것부터 해야 하는지 당돌하게 물어보면

언제나 미소 지으시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시는 교수님.


교수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서 기분이 나아졌다.

하지만, 유학 비용은 내가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부분이었다.

풀리지 않는 고민을 안고 공대 구름다리에 멍 하게 서있었다.


"크리스~!"


저 멀리서 미국 대학원 입학을 함께 준비했던 동기가 불렀다.




호주 워킹홀리데이 이야기는 시리즈 이야기로,

다음 에피소드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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