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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안 Nov 04. 2021

Alone, but congrats for me!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들

어렸을 때는 친하지도 않은 친구들까지 모두 불러 모아 어머니께서 커다란 생일잔치상을 차려 주셨다. 소고기 미역국, 김밥 탑, 잡채, 통닭, 탕수육, 그리고 커다란 케이크 까지. 며칠 동안을 계속 먹고, 또 먹어야 조금씩 사라졌다. 그리고 친구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았던 생일 선물, 연필과 공책. 


시간이 흘러 입대를 했다. 군대에서는 생활관 후임과 선임 모두 함께 PX 털이를 하면서 다양한 냉동식품, 라면, 그리고 초코파이 생일 케이크로 생일을 축하했다. 사회에서와는 조금 다른 모습의 생일 파티였지만, 그간 동고동락하면서 지내 온 전우들과의 생일 파티는 PX에서 파는 슈넬 냉동 치킨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전역을 하고 다시 대학교에 복학했다. 바리바리 짐을 싸서 학교 내에 있는 기숙사에서 홀로 지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지만, 나의 생일날은 언제나 대학교 기말고사 시즌과 겹쳤다. 대학교 3학년 2학기. 역시나 생일날을 중심으로 이곳저곳에서 다양한 전공과목과 교양 과목들의 기말고사 일정이 잡혔다. 실제로 생일 당일 날에는 아침, 오후, 그리고 저녁까지 시험 3개를 모두 마치고서야 홀로 기숙사에서 케이크를 먹을 수 있었다.


제일 좋아하는 초콜릿 케이크


20살 이후부터는 한국에 있어도 가족들과 떨어져서 지냈기 때문에 혼자 생일을 보내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익숙해졌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이곳은 한국과 계절이 정반대라서, 처음으로 여름 날씨에 생일을 맞이할 수 있었다. 당시 호주인 룸메이트 커플과 함께 지내고 있었지만, 굳이 생일이라고 같이 축하하자고 말하기가 좀 그랬다. 친하지도 않았지만, 이상하게 이번 생일은 혼자 보내 보고 싶었다. 


생일 당일 날, 집 근처에 있는 바닷가를 향해 조깅을 했다. 파란 바닷물을 보는 순간,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바닷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렇게 처음으로 여름날 바다에서 나 혼자 생일을 보내고 있었다.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사실 편안했다. 물놀이를 마치고, 전날에 사놓은 스파게티와 호주산 스테이크를 요리했다. 보통 사람들에게 요리해주는 것을 좋아하지만, 이번 생일에는 나를 위해서 요리를 해보았다.


달콤한 초콜릿 케이크도, 신나는 음악도, 많은 선물도 없었지만, 이렇게 생일날 혼자 하고 싶은 것을 하고, 먹고 싶은 것을 먹으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생일날의 주인공은 언제나 나라고 생각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고 진정으로 감사하다고 말했다. 주위가 고요하니까 소중한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유로운 바다.. 그립다..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서 이번에는 대학원을 향해 미국행 비자를 받았다. 플로리다에 도착한 순간, 피부가 아플 정도로 뜨겁고, 기분이 나쁠 정도로 습했다. 하지만, 이는 곧 건물마다 빵빵한 에어컨 바람으로 금방 잊혀졌다. 대학원이지만 역시나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있었기 때문에 나의 생일날은 또다시 기말고사와 겹쳤다. 


대학교 때보다는 학문을 조금은 여유롭고 깊이 공부하겠지..라는 상상은 순식간에 산산이 깨졌다. 운이 좋게 첫 학기부터 연구실에 조인할 수 있었지만, 수업과 연구, 그리고 수많은 과제들을 소화해 내는 것이 너무 버거웠다. 매일을 "집, 학교, 연구실, 집"을 반복하는 나름 심플한 미니멀 라이프였지만, 사실 그 속에서 하루도 두 다리를 펴고 편하게 자 본 기억이 없다.


첫가을 학기가 시작하고 생일이 가까워지면서 역시나 기말고사도 함께 가까워졌다. 연구와 수업을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다른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았다. 당장 실험 결과와 논문, 그리고 시험공부에만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렇게 열심히 했을까?라는 생각도 종종해 보지만, 그때 당시에는 이렇게 해야 하는 줄 알았다. 이렇게 열심히 해야 조금 더 빠르게 조금 더 크게 성공할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 생일은 챙기지 못했다.


생일날도 찾아온 대학원 도서관


나이가 들면서 친한 친구들이 점점 사라진다. 주위에 친구들이 사라지니 생일은 자연스럽게 직장 동료, 지인, 또는 지인의 지인과 함께 보내게 된다. 싫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친한 친구들과 함께 웃고 떠들던 어린 날의 생일날이 종종은 그립다. 


30살이 지나고 생일이라는 것이 내게 더 이상 그렇게 큰 의미로 느껴지지는 않는다. 오히려 나 보다는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이 진정 내 생일날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이 든다. 11월 4일 오늘도 어머니께서는 아들을 위해 소고기 미역국을 끓이고 계신다. 생일날이라도 부모님께 효도를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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