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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계획 여행자의 로마

코치의 일주일

by Dawn

무계획 여행자의 로마


아무 정보도 계획도 없던 나는 먼저 로마에 와있던 엠마의 도움으로 같은 숙소를 예약할 수 있었다. 바티칸 인근에 위치한 수도원 숙소는 조용한 동네에 위치했고, 바티칸 앞에 위치해 신부님들도 꽤나 많이 계셨던 맛집에서 파스타와 스프릿츠로 저녁을 먹었다.



시작되는 불운


다음 날 오전에는 엠마가 정식으로 내 가이드가 되었다. 트레비 분수와 스페인 광장, 시스티나 성당 정도를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러나 못 간다고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던 나는 엠마의 일정에 합류하기로 한 것이다. 우리는 바티칸을 가로질러 성천사성을 지나 시내로 걸어갔다. 내년에 희년을 맞아 로마의 곳곳은 개보수 공사가 한창이었다. 우리는 맛있는 커피를 찾아 유명하다는 카페에 가서 에스프레소를 한 잔 마셨다. 그리고 판테온을 지나 또 다른 유명한 카페를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마침 친구에게 전화가 와서 카페 외부에서 영상통화를 하고, 엠마는 안에서 커피를 사서 나오는 길이었다. 갑자기 머리에 무언가 떨어졌다.


“악!”


엠마는 내 소리를 듣고 놀라서 달려왔고, 다행히 소매치기가 아니라 정수리에 비둘기 오줌이 떨어진 거라고 나를 위로했다. 통화를 하고 있던 친구도 자기 나라에서는 이걸 행운으로 본다고, 여행 잘하라고 인사를 건넸다. 옆에 있던 엠마가 가지고 있던 물티슈로 닦아줬지만, 어쩐지 나는 이때부터 정신이 혼미해지고야 말았다.


트레비 분수와 스페인 광장에 가고, 젤라또를 먹으며 시내 구경을 했다. 꽤나 많이 걸어 출출해진 우리는 맥도날드에서 점심을 먹었고, 엠마는 예약해 둔 가이드투어 일정이 되어 먼저 떠났다. 나는 천천히 점심을 먹고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다. 숙소에서 씻고, 밀린 빨래도 맡기고, 기차표도 예약하고 나서 다시 시내로 나오려던 계획이었다. 하지만 숙소를 향해 걷기 시작한 지 십여분은 되었을까, 갑자기 가방이 가벼워졌고, 가방 안을 보니 어느새 현금과 여권이 든 지갑이 사라져 있었다.



소매치기를 당하다


이탈리아 베니스 공항에 내려 알래를 만난 이후로, 아니 그 이전부터 나는 소매치기에 대해 숱하게 이야기를 들었다. 스웨덴에 살지만 로마에서 공부한 적이 있던 야나는 나에게 한국에서 처럼 하면 큰일 난다고, 이탈리아에 가면 소매치기를 조심하라고 경고했다. 알래는 ‘pickpocket’을 검색해 영상을 보여주며 조심해야 한다고 나를 교육시켰고, 베니스에 갈 때는 아예 내 가방을 자기 배낭에 넣고 잠근 후 앞으로 메고 다녔다.


베니스와 파도바 피렌체를 지나 로마에 왔을 때 나는 소매치기에 대한 더 많은 소리를 들었다. 인스타에 올라온 이탈리아 사진에 좋아요를 누르던 한 친구는 소매치기 조심하라고 메시지를 보내왔고, 엠마와 함께 길을 걸으며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수차례 나눴다.


그러나 가방이 가벼워진 그 순간 직감했다.


‘아, 소매치기를 당했구나.’


가슴이 철렁했다. 그래도 카드가 든 지갑과 휴대폰은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하지만 여권을 잃어버리다니. 출국이 바로 다음 날로 예정되어 있는데 큰일이었다.


정신이 혼미해져 바로 엠마에게 전화해 상황을 알리고, 얼마 남지 않은 배터리를 충전하러 맥도날드에 다시 들어가 충전을 하며 영사콜센터와 주이탈리아대사관에 전화를 했다. 경찰서에 가서 신고서를 쓰고, 서류를 받아 대사관으로 갔다.


당시 단 1유로도 없던 나에게 남아있는 휴대폰과 구글맵은 얼마나 소중한지. 시내에서 멀리 떨어진 대사관을 향해 여름 날씨 같던 로마를 걷고 또 걸었다.


대사관에서 빌려주신 돈으로 포토부스에 가서 새로운 여권을 만들기 위한 사진을 찍고, 은행 ATM에서 카드로 현금을 인출했다. 그렇게 몇 시간 뒤에 나는 ‘긴급여권’이라는 것을 받아 들었다. 해가 지고 있었다.


반나절을 여권을 새로 만드는데 썼던 나는 그래도 로마의 마지막 밤을 기념하기 위해 가이드 투어가 끝난 엠마와 맛있는 저녁을 먹으러 갔다. 이탈리아에서는 엠마 덕에 항상 맛있는 식사를 했다. 그리고 숙소를 향해 걸으며 맛있는 젤라또를 먹으며 로마의 마지막 밤을 기억했다.






생일날, 로마에서 피사로, 그리고 스톡홀름으로


다음 날은 내 생일이었다. 생일 전날의 여파로 기분은 매우 가라앉았지만 전날 맛있는 티라미수를 사다 숙소 냉장고에 넣어 둔 엠마 덕에 생일축하를 받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아침부터 움직이면 관광지 한 곳은 가볼 수 있었겠지만 에너지가 없는 나는 밀라노로 가는 엠마와 헤어져 피사로 가는 기차를 탔다.


피사로 가는 기차는 해안가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했다. 시간은 좀 더 걸렸지만 창가 너머로 보이는 끝없는 지중해의 풍경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다.


하지만 이날도 피사 공항에 도착해 보니 한 가지 사고가 있었다. 바로 항공사의 약관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것. 당연히 공항에서 체크인을 하려고 했던 나는 두 시간 전까지 온라인으로 체크인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이다. 두 시간에서 십분 정도 지나있던 시간이라 나는 비행기표의 절반이 되는 금액을 추가 요금으로 내고 비행기에 탈 수 있었다.


그렇게 자정 가까운 시간이 되어 스톡홀름에 돌아온 나는 온 에너지가 다 빠져버렸다. 친구에게 맡겼던 캐리어에서 컵라면 하나를 꺼내 늦은 저녁을 먹으며, 홀로 생일을 축하했다.



고요하던 스톡홀름의 일상


그렇게 스톡홀름에 돌아온 나는 친구가 이사를 떠나고 나간 기본 가구만 있는 집을 빌려서 지내게 되었다. 층고가 높은 텅 빈 아파트에서 꽤나 고요한 날들을 보냈다. 가끔은 그 고요함이 싫어 음악을 켜두었다. 스톡홀름에 돌아와서도 돈과 관련해 예기치 못한 일이 또 생겼는데 이번 여행은 어째서인지 예상치 못한 사건과 지출이 너무 많아 마음을 가라앉게 했다.


그렇게 스톡홀름에 다시 돌아온 나는 침전하고 있었다. 대부분 텅 빈 아파트에 하루 종일 홀로 있으며 근처 공원을 두어 시간 산책하는 게 다였다. 어느 날은 달렸고, 어느 날은 오래 걸었다. 집을 떠나온 이후 처음으로 요리를 해서 밥을 챙겨 먹었다. 하루는 저녁에 친구를 만나러 나갔는데 ‘너 괜찮니? 정말 괜찮은 거 맞니?’라고 몇 번을 물어주었다. 하루 종일 집안에 있었다는 나에게, 미술관을 가거나 어디든 가라고, 이후에도 문자와 전화로 안부를 건네주었다.


그때의 나에게 위로가 되는 것은 자연이었다. 드넓은 호수와 울창한 숲을 음미하고, 뒷마당에서 가끔 마주하는 청설모를 관찰하고, 산책하다가 발견하는 버섯을 바라보고, 고요한 호수에서 유일하게 들려오는 오리 떼의 소리에 가만히 귀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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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10월 마지막 주를 회고하며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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