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치의 일주일
스웨덴에서 보내던 마지막 주에는 하루에 한 사람을 깊게 만나는 시간을 가졌다. 누군가와는 두 번째 만남이었고, 또 누군가와는 첫 만남이었지만 한 사람을 깊게 만나는 경험은 참 좋았다.
멋진 여성 리더 일로나
다른 친구의 소개로 IDG 행사에 온 일로나를 처음 만나게 되었는데 내가 스톡홀름에서 오래 지낸다고 하니 다시 만날 약속을 잡았다. 일로나는 고급스러운 스웨덴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을 제안했는데, 나는 일로나가 제일 좋아하는 식당을 가고 싶다고 했고, 덕분에 오랜만에 아주 맛있는 일본 라멘을 먹게 되었다. 국제기구에서 시니어 직급으로 일하는 일로나를 통해 여성 리더로서 고민하고 있는 지점과 리더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고, 나는 첫 만남에서는 보지 못했던 Bossy Lady 같은 그녀의 모습에 반하고 말았다. 또 외국인으로 일하고 생활하며 지내고 있는 스웨덴의 다양한 모습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이미 쌀쌀해진 스톡홀름의 날씨에도 우리는 저녁을 먹고 공원을, 거리를 한참 걸었다.
스텔라와 어머니를 만나러 리딩외로
스텔라의 집에 또 초대를 받게 되었다. 스텔라는 곧 어머니와 길게 중국 여행을 떠날 예정이라 만날 수 있을지 일정을 확정하기가 어려웠는데, 내 생일을 축하하고 싶다고 나를 초대한 것이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갈아타고 스텔라가 살고 있는 리딩외 섬으로 향했다. 어머니가 끓인 버섯수프와 중국 이웃이 가져다줬다는 볶음면을 나눠 먹으며 우리는 즐겁게 이야기를 나눴다. 재미있게도 이 날 자리에 없던 피터 이야기를 한참 하다가 결국 피터에게 영상 통화를 걸어 또 한참 대화를 했다. 내가 이탈리아에서 소매치기를 당한 이야기를 했는데 진중하고 호기심이 많은 피터는 ‘어디를 걷고 있었는지, 가방은 어떤 걸 메고 있었는지, 가방 안에는 뭐가 들었는지’ 너무 구체적인 질문을 쏟아내서 웃음이 나게 만들었다. 스톡홀름에 돌아와 조금 가라앉은 날들을 보내고 있던 나에게 스텔라의 초대는 편하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다정한 시간이었다.
요나스를 만나러 두 번째 박스홀름
IDG 서밋이 시작되기 전 스텔라의 추천으로 스톡홀름에서 한 시간 정도 배를 타고 가는 박스홀름(Vaxholm) 섬에 간 적이 있다. 두 번째로 같은 섬을 찾게 된 이유는 IDG 서밋에서 인연이 된 요나스의 초대 덕분이다. 만날 약속을 하며 어디에서 볼까 장소를 정하다가 요나스가 살고 있는 섬에 초대받았고, 그곳이 바로 이미 방문한 적 있던 박스홀름 섬이었던 것이다. 그 많고 많은 섬 중에 박스홀름에 또 가게 되다니 무슨 인연이었을까.
요나스가 알려준 시간에 맞춰 배를 탔다. 시간에 맞춰 배를 탔다고만 메시지를 전했는데 보트가 선착장에 가까워지며 나를 기다리고 있는 요나스의 모습이 보였다. 어디에서 만나자고 딱히 이야기를 나누지도 않은 이런 아날로그적인 만남이 꽤나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곳에 오래 산 요나스의 가이드로 섬을 오래 산책했다. 처음 방문했을 때는 그저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던 자연의 아름다움을 더 깊이 느꼈다. 아마 해가 짧아진 스웨덴의 겨울을 보내다 보니 햇살 한 줌이 참 귀하게 여겨지기도 했고, 고요한 날을 보내며 자연에 더 가까이 갔는지도 모르겠다. 어디에서 밥을 먹을지 고민하다가 지난번 갔던 선착장 앞 레스토랑이 아닌 숲 속이지만 창가 너머로는 바다가 보이는 식당에서 점심을 먹게 되었다.
“나보다 한참이나 어린 네가, 어떻게 내 말을 이렇게 이해할 수 있니.”라는 요나스의 말.
짧은 시간이지만 연결되는 대화를 나눴다. 요나스의 친절함과 환대가 참 고마웠다. 다음에 오면 4시간이 걸리는 숲길을 산책하자고,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날을 기약하며 요나스는 나를 선착장 앞에 내려주었다. 스톡홀름으로 돌아오는 길, 석양이 지는 바다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세 번째로 박스홀름에 가는 날이 오게 될까?
새로 만난 친구 미엣
미엣도 일 때문에 스웨덴에 와서 살고 있었다. 마침 중간에 나와 미엣을 알고 있던 한 친구가 미엣이 한국에서 공부한 경험이 있으니 만나보면 좋을 것 같다고 소개를 해줬다. 나는 미엣의 직장 근처로 점심시간에 찾아가 같이 점심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처음 만났지만 꽤 다정한 그녀 덕분에 즐겁게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내가 조금 더 스웨덴에 머물렀더라면 아마 한 번 더 만났을 테지만 떠날 일정이 다가와 만나지는 못했다. 짧은 점심시간의 만남이었지만 다정하게 시간을 내어준 그녀 덕분에 기분 좋은 만남을 하고 돌아왔다.
피터와 함께 한 대화의 시간
스텔라네 집에서 피터와 영상통화를 한 후로, 내가 떠나기 전 밥 한 끼를 같이 하자고 약속을 하게 되었다. 우리는 아시안 뷔페에서 점심을 함께 먹기로 했는데 장소를 선정할 때부터 얼마나 세심하게 신경을 쓰던지 피터의 배려가 참 고마웠다. 진중한 피터는 말하는 것을 참 좋아하는데 사실 듣기도 정말 잘하는 친구다. 내가 무언가를 설명했는데 이해가 안 된다고, 다시 설명해 달라고 말하는 피터. 그러면 나는 또 다른 영어 단어를 조합해 설명을 이어가야 해서 시간이 걸리는데 그것 또한 차분하게 이해하고 싶다는 얼굴로 기다리는 피터의 마음이 고맙다. 그렇게 이어가던 대화는 식당의 브레이크 시간이 되어 자리를 떠나야 해서 다음을 기약했다.
IDG 앰버서더가 되다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과 마주하며 하루를 보내던 날들의 끝에, 나는 IDG 앰버서더 프로그램에 참가하기 위해 에크셰레트 섬으로 갔다. 예상보다 스웨덴 체류가 길어진 것은 IDG 앰버서더에 선정되어 이 프로그램에 참여해야 했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작은 보트로 갈아탄 다음, 드디어 우리가 머물게 될 섬에 도착했다. The Elders라는 그룹의 멤버 분들과 이미 섬에 와서 프로그램을 준비하고 있던 진행팀이 우리를 반겨주었다. 이곳에 머물면서 우리는 IDG에 대해 더 깊은 탐구를 하고, 실제 변화를 만들어낼 도구와 전략을 함께 고민하고 만들었으며,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생각을 나누고 교류했다. 그 과정안에서 나 자신과 타인과 또 생태계와의 관계에 대해 더 진지하게 성찰할 수 있었다. 그 흐름은 발리에서의 경험과도 이어지는 것이었다.
개인적인 성찰 중 하나는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더 잘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무언가 집중이 잘 안 되어 생산적이지 않거나, 어떤 부분에서 이해가 잘 안 되거나 다른 입장이 생긴다거나, 혹은 즉흥적으로 무대에 서서 무엇을 전해야 하는 순간 앞에서도, 예전 같으면 잘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을 법한데 지금의 나는 그저 흐름에 맡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연민과 사랑이 존재했다. 나의 사우나 마스터인 크리스툰과 깊게 포옹하며 연결감을 느꼈다. 그렇게 사람들과 연결되고 있다는 것, 하루하루 차곡히 쌓인 긴 여정 끝에 이곳에 다다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돌아보니 소중한 순간과 인연들로 꽉 채워진 일주일이다. 한 사람, 한 사람과 깊게 마주했던 수많은 대화, 함께 걷기, 자연과 함께한 순간들이 깊게 남아있다.
*이 글은 11월 둘째 주를 회고하며 쓴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