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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wn Apr 24. 2023

상대의 무심한 말이 가시와 같아.

아주 사적인 편지

다은의 글 



친구에게 그런 말을 들었다니 마음이 많이 아팠을 것 같아. 어렵게 꺼낸 얘기였을 텐데 상대의 무심한 말이 가시와 같지. 그다음부턴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안전하다고 생각되지 않을 거고. 


나도 그런 심정을 알아. 몇 년 전 앞이 보이지 않는 인생의 길고 긴 터널을 지나고 있을 때, 나는 수많은 말에 마음의 문을 하나 둘 닫았던 적이 있어. 너는 이렇구나라는 판단의 언어, 내가 아는 누구는 이렇게 하던데 너는 왜 그렇게 못하느냐는 비교의 말, 네가 나에게 그 말을 해주지 않아 서운하다는 자기중심적인 말, 너만 그런 거 아니고 다들 그렇다는 당연시하는 언어가 송곳처럼 나의 마음을 찔렀어. 그럴수록 나는 입을 닫았고, 마음의 문을 닫았지. 아마 너무도 부서질 것 같은 상황이라, 작은 말 한마디에도 상대에 대한 실망이 걷잡을 수 없이 커졌던 것 같아. 나는 스스로 문을 잠그고 점점 더 깊숙이 들어갔어.


그렇게 문을 잠그던 때는 나답지 않은 행동들도 했어. 그들의 어떤 말에 불편함이 일었고, 그 다음번에 오는 안부문자에 답을 하지 않았거든. 평소에도 자주 연락하는 사이는 아니어서 그랬는지 그렇게 연락이 끊겼고, 인연이 정리되었지. 


나중에 알고 보니 이걸 수동 공격(Passive Aggression)이라고 부르더라. 나는 기분이 상하고 마음이 다쳤으면서도 상대에게 기분 나쁘다는 얘기를 하지 못한 거야. 그 대신 연락을 받지 않는 식으로 수동적으로 대처한 거지. 상대는 내가 왜 연락을 안 받는지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을 거야. 그런데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해. 그들의 입장을 이해할 만한 여유도, 그렇다고 화를 내거나 싸울만한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았거든.


그러던 중에 나는 직장에 며칠간 휴가를 내고 도망을 갔어. 비행기를 타고 네가 사는 곳으로. 아무것도 정하지 않고, 비행기 표만 끊어 너에게 갔지. 도착시간만 공유하고 아무것도 묻지 않았고, 따로 계획도 세우지 않았어. 아마 그때의 나는 무척이나 지쳐있었고, 슬픔이 나의 우주를 지배하고 있었을 거야. 너에게도 그전에 나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하지 않았었는데 너는 캐묻지도, 나를 비난하지도, 서운해하지도 않았어. 대신 태풍이 와서 비바람이 치던 날 밤에 남편과 어린아이를 데리고 한 시간이 넘는 거리를 달려와 공항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지. 


나는 그렇게 너의 일상에 잠시 들어갔어. 너는 내가 며칠 쓰게 될 아이의 방 문 앞에 나를 환영하는 문구를 적어 붙여놓았지. 네가 팔라펠로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오랜만에 보는 너의 남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어. 너는 칭얼거리는 아이를 데리고도 먼 길을 운전하며 나를 좋은 곳에 데려다줬고, 저녁에는 너의 친구 생일 파티에 따라가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틈에서 섞여 있으며, 한편으로는 생경했고, 한편으로는 따뜻함을 느꼈어. 


그러다 돌아오기 전날, 같이 식당에 자리를 하고 앉았어. 주문한 생선요리가 차갑게 식어가는 동안 나는 울며 그간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지. 너는 아무 말 없이 이야기를 들으며 같이 울어줬어. 판단의 말도, 조언이나 충고의 말도 없었어. 그렇게 나는 어디에서도 꺼내지 못했던 말을 꺼내며, 꽁꽁 닫고 있었던 문을 그날 살짝 열었던 것 같아. 


너는 돌아오는 날에도 공항까지 나를 배웅해 주며, 도착했을 때처럼 그곳에 있어줬어. 출국장으로 들어가는 나를 바라보며, 더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가라고 내 삶을 응원해 줬지. 온 가족이 주말을 나와 함께해 주고, 일을 휴가 내고, 아이는 어린이집을 빠지면서 나를 맞아주었어. 방 하나를 내주고, 밥을 사주고, 좋은 곳에 데려다주었는데, 그러면서도 연신 어린아이 때문에 더 많이 구경시켜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했어. 아마 나는 너의 무한한 환대 덕에 다시 일상을 살아낼 힘을 얻어 돌아왔던 것 같아.   


너의 ‘위로란 뭘까’라는 물음에 나도 너무 옛날이야기가 길어졌네. 그런데 정말 그 시간은 잊지 못할 거야. 네가 온마음을 다해 나를 위로해 준 시간이니까. 그러고 보면 참 신기해. 사람들은 어딘가에서는 상처를 입고, 또 어딘가에서는 치유를 하니까. 그리고 참 감사해. 우리가 아무 조건 없이 서로에게 마음을 쓰고, 또 마음을 기댈 수 있어서. 


돌아오는 날 내 배낭끈 한쪽이 찢어졌던 거 기억나? 워낙 신세 지기 싫어하는 나라서, ‘가방끈 하나 정도야’라고 생각해서 나는 괜찮다고 말했어. 그런데 너는 '네가 고집 센 건 알겠는데 이럴 땐 좀 받아'라고 하면서 옷핀으로 떨어진 가방끈을 연결해 줬어. 호의를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은 내가 너의 호의를 받았던 그날처럼, 세상의 위로를 받으려면 내 마음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을 기억할게.


너에게 위로가 필요한 어느 날에 내가 그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아니, 네가 했던 말처럼, 그 사람이 꼭 내가 되지 않더라도 네 주변의 사람들과 온 사물이 너를 위로해 주기를 기다리고 있을 거야.


네가 언제나 평안하기를. 


슈크란*  



다은


*'슈크란’은 아랍어로 ‘고맙습니다’는 뜻입니다.



사진: Unsplash의 Syuhei Ino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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