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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wn Apr 21. 2023

나한테 위로는 ‘당신의 슬픔이 들린다’라는 의미야.

아주 사적인 편지

마르와의 글 



위로란 뭘까.


꽃샘추위. 이런 말을 한국어를 배우면서 처음 들었어. 이집트에서는 사계절을 보는 게 드문 일이라 사계절이 뚜렷한 한국에서 6년 동안 살았던 기억이 참 깊고 오래 남는 것 같아.


여기서 한창 봄이었던 날씨는 어느새 눈이 다시 내리기 시작했어. 이게 바로 인생한테 배우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어. 기뻤다 슬퍼지고, 슬펐다 다시 기뻐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니까. 그래야만 두 느낌의 차이점과 가치를 깨닫게 되는 것 같아. 둘 중에 어느 한편으로만 기울여 사는 마음은 없지. 그러면 살맛이 안 나니까. 단 거 먹다 짠 거 먹고 싶어지는 것처럼.


나도 변덕스러운 날씨를 받아주는 것처럼 변덕스러운 내 마음을 받아주기로 했어. 한때 마음과 대립 관계로 지냈을 땐 나만 계속 지곤 했어. 그런데 배운 게 있다면 이제 마음의 흐름이 가는 대로 나도 따라가야 된다는 거야. 어릴 때는 마음 표현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것도 있고, 느낌을 말로 표현하고 타인 앞에서 솔직히 털어놓은 적이 없었어. 그보단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흠으로 보는 사람들도 종종 있었으니까. 우리 세대는 다행히도 정신적, 심리적 연구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고, 사회적으로도 정신적이나 심리적으로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 아닌 중요한 일로 인식되고 있어. 그것만으로도 난 딱 맞는 시기에 태어났다는 생각이 들어.


주말을 무거운 마음으로 보냈다니 미안하다. 살다 보니까 슬픔에서 배우는 것이 기쁨에서 배운 것보단 훨씬 더 많더라. 나에게는 슬픔이 인생의 최고 선생이라고 봐. 그러다 보니까 슬픔을 낙관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어. 나 자신한테 “나는 지금 정서적인 경험을 겪고 있으니 인내심의 줄을 꽉 잡으면서 마음속의 거센 파도를 거치면서 항해하자.”라고 말해. 인생의 선생 앞에서 제자가 조용히 듣고, 그 말을 명심해야 되니까.


아쉽게도 그럴 때면 아는 사람을 한 명이라도 찾게 되는 법이잖아. ‘괜찮다, 마음껏 울어도 돼, 내가 들어줄 테니까 마음을 털어놔 봐, 이것도 지날 테니까 걱정 마.’라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 딱 한 명이라도 있으면 충분하잖아. 겸손한 우리에게는 아쉽게도 그런 사람이 없지.


요즘 나도 그렇다. 실은 곰곰이 고민했을 때, 나는 회복된 것이 아니라 다만 시간이 지났을 뿐이었라는 사실을 깨달았어. 더욱더 슬픈 게 있다면, 외출했을 때 늘 즐겨 먹던 라테가 다 팔렸다는 것과 같은 아주 사소한 일로 주저앉아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눈이 빠지도록 펑펑 눈물이 쏟아질 때야. 비참해. 그런 일이 있은 뒤에 친구한테 얘길 한 적 있는데, 친구가 “너 그렇게 약했니?”라고 물었어. 글쎄, 약하다는 말이 그렇게 아플 줄 몰랐지. 그런데 그 친구는 몰랐나 봐. 마음이 돌같이 딱딱하다가도 어느 날 갑자기 부서져 버리게 될 때가 있다는 걸. 다이아몬드가 지속적인 압박 밑에서만 창조된다 하더라도 결국 적당한 압박이 아닐 때는 다이아몬드도 깨지고 말지. 


아이고, 미안해. 또 이랬네. 위로의 말을 하려다 또 내 개인적인 말을 하고 말았어. 습관이 돼서 고치기가 어렵더라. 내 탓이야. 근데 솔직히 말하자면, 내 위로는 상대방의 문제를 외면하려는 의도가 있어서는 아니고, 나도 같은 자리에 있었으니 네 마음을 잘 안다는 말을 전하고 싶은 마음에서 나왔어. 사람은 다른 사람의 거울이잖아. 운이 좋은 사람들만 거울을 만나게 되는 것 같아. 인복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그런가 하면, 그렇지 못하는 사람들은 깨진 거울을 만나지. 깨진 거울에서는 내가 아닌, 나와 전혀 상관없는 왜곡된 존재를 마주 보게 된다. 그런 거울은 마음의 실제적인 이미지를 절대 보여주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해. 사람의 잠재의식도 같은 속임수를 즐겨 놓지. 그럴수록 우리에게 참다운 거울이 필요하겠지. 


나한테 위로란 말은 ‘당신의 슬픔이 들린다’라는 의미야. 이런 형태는 잘 들리는 귀가 아니라, 배려심이 있는 마음이 필요하지. 그렇게 생각하면 위로는 꼭 사람이어야만 된다는 말은 참 이기적인 거야. 내 옷자락에 몸을 문지르는 고양이, 무더운 여름에 지나가는 산들바람, 이마에 맞은 빗방울, 창문에 서 있는 새처럼, 그들도 그들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위로를 해 주고 있어. 그리고 세상이 위로를 건넬 때, 우리가 그 위로를 받아줄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겠지. 두 마음 사이에서 말을 전달하는 게 위로야.


잠긴 문이 있으면 열려 있는 문을 찾아봐. 산들바람이 잘 들어오는 문.
네 마음의 준비가 되면 세상의 온 사물이 보내는 위로가 들릴 거야.
 
마르와



사진: Unsplash의Ismail Elaziz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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