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awn Apr 18. 2023

너의 다정한 말들이 나를 비추는 거울 같아.

아주 사적인 편지

다은의 글



나는 깊은 좌절과 슬픔이 가득했던 주말을 보냈어. 건드리면 눈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순간들이었어. 코로나 이후 삼 년 만에 한국을 방문한 친구를 만나 맛있는 태국 음식으로 점심을 먹고, 네팔커피를 파는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사고, 친구가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숙소로 지내는 이태원 골목 안의 어느 옥탑방에 가서 새로운 풍경과 마주했어. 다정하고 좋은 시간들이었어. 다른 날에는 장을 보고, 요리를 하고, 밥을 잘 챙겨 먹고, 해야 하는 일을 처리했지. 그렇게 일상을 잘 살다가도 밤에는 깊은 슬픔이 덮쳤던 그런 주말이었어. 


내가 나에게 꽤 인색했구나 싶은 마음이 들어 월요일에 출근해서는 사무실에서 도시락을 챙겨 먹고 점심산책을 나섰어. 커피 한잔의 작은 위로를 나에게 선물로 주려 했거든. 카페에서 커피를 받아 들고 자리에 앉아 너의 편지를 읽었는데, 두어 문장을 읽었을까, 눈물이 날 것 같아 나는 카페를 나왔어. 그리고 한 손에는 커피를, 한 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길을 걸으며 너의 편지를 읽었지. 이상하게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 월요일 점심시간 길을 걸으며 우는 사람이라니, 왠지 사연이 많아 보이지 않아? 


너의 말은 늘 따뜻하고 다정해. 같은 상황에서 수많은 말을 듣는데 너의 말은 늘 마음을 녹여. 퇴사를 하고 작년에 수많은 실험들을 해가면서 나는 나에게 해방이나 자유를 선물했던 것 같아. 오랫동안 맞지 않다고 느꼈던 직장을 내 발로 나왔고, 배우고 싶었지만 부담이 되었던 프로그램을 내 돈으로 나에게 선물했고, 배워보고 싶은 것, 해보고 싶은 것, 도전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해볼 수 있게 허용했으니까. 아니, 어쩌면 자유라고 말하지만, 그건 완전하지 않았을지도 몰라. 내 안에서 어떤 검열의 목소리가 있었거든. 이것 대신에 이걸 선택한 거니 잘해야 한다거나, 무언가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거나, 나의 어떤 가능성을 증명해야 한다는 그런 압박이 무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어서 괴로웠던 것 같아.


누구는 나에게 그런 말을 했어. “너는 참 열심히 하는데 잘 풀리지 않아 안타깝다.”라고. 그런데 너는 같은 상황에서 나에게 이렇게 말했지. “네가 열심히 하고 있으니 곧 좋은 결과가 올 거야.” 그렇게 늘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주고 따뜻하게 말해주는 네가 참 고맙고, 또 한편으로는 감탄하게 돼. 


나는 다정하게 말하는 거에 서투른 것 같아. 늘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세심하게 살피는 편이지만 그에 비해 말은 많이 하지 않는 편이니까. 예전에 직장 상사는 이런 나에게 ‘친절하지 않다’고 하더라. 나는 의아했어. 항상 예의를 갖춰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대하는데 친절하지 않다는 게 무슨 말일까? 이런 말이 덧붙여졌어. 오지랖이 없다고. 어느 정도의 호들갑, 그런 게 부족하다고. 감정을 담뿍 담은 말, 어느 정도의 거리를 좁혀 훅 하고 들어가는 제스처, 아마 그런 것들이 부족하다는 말이겠지. 그런데 그걸 다 뚫고,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내 마음을 바라봐 주는 네가 항상 고마워. 


네가 나에게 해주는 말을 들으며 나는 한편으로는 네가 너무 멋지다고 감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 나는 누군가에게 그렇게 따뜻하고 다정하게 말해주는 사람이었을까. 마치 너의 다정한 말들이 나를 비추는 거울 같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너에게 묻는다>, 안도현



마치 이 시처럼, 

너의 말들이 나의 마음을 녹이고, 

다시 나도 다른 이에게 그럴 수 있게 물어주는 것 같아 고마워. 


내가 너에게 봄 같은 사람이듯, 너도 나에게 그런 사람이야. 



다은


사진: Unsplash의Anders Jildén


이전 02화 나는 봄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