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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wn May 06. 2023

가방을 준비하는 것보다 내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어.

아주 사적인 편지

마르와의 글 



안녕? 편지를 쓰는 게 오랜만이네. 잘 지냈어? 편지 많이 기다렸지?


난 이집트 갈 준비를 하느라 정신없이 바빴어. 실은 여행 준비보다 더 힘든 게 있었지. 가져갈 가방을 준비하는 것보다는 내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어. 이게 그렇게 무겁고 힘겨운 준비인지 몰랐어. 생각보다 시간과 노력이 더 필요하더라고.


5 년 만에 가는 거라서 왠지 두렵고 마음이 무겁더라. 뭐가 문제인지 알아? 아빠를 만나면 ‘넌 괜찮아’라고 할까 봐 제일 걱정이야. 눈물이 흐를 것만 같아. 나는 아빠에게 ‘응, 괜찮지.’하고 대답할 거야. 근데 마음속 대답은 다르지. ‘아니, 괜찮지가 않아. 힘들어 죽겠어. 쉬고 싶고, 누가 애들 좀 보는 동안 외출하고 싶어. 난 전혀 괜찮지가 않고 마음껏 소리 지르고 싶어.’ 이렇게 대답할 거야. 


누구한테 내가 힘들다고 하면 이런 말이 돌아와. ‘우리 다 그래, 힘든 게 너뿐이야? 자꾸 아프단 소리 하지 마.’ 이런 식의 대답을 들은 적 있어. 상대방이 이렇게 노골적으로 말한 건 아니었지만 그 말의 의도가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느껴진달까. 이건 마치 딸이 놀다가 다리를 다치면 나에게 위로 말을 듣기 위해 엄마를 찾는데, 내가 위로의 말 대신 ‘조심했어야지! 앞에 안 보고 뭐 했어!’ 이런 식으로 대답하는 것과 같은 거야. 생각만 해도 마음이 짠하다.


그래, 그들이 원하는 답을 해줄게. ‘난 괜찮다. 마음이 찢어질 정도로 괜찮다. 육아하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 24시간 동안 깨어있을 정도로 열심히 살고 있지만 난 괜찮다. 스트레스 때문에 마음이 가끔 아프지만, 괜찮다. 하루에 몸이 힘들다는 말 한마디도 못 하고 잘 때도 있지만 괜찮다.’ 이제야 상대방이 이런 답을 좋아하겠네. 


그리고 나에게 이런 말이 돌아와. 

‘네가 선택한 길이니 당연히 받아들여야지.’  

‘네가 벌인 일의 책임은 네가 져야지.’

'난 너보다 힘든 생활을 살고 있어.’


사실 나는 이런 말을 들을까 봐 걱정돼. 그래서 준비를 많이 하고 있었어. 도착하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의 말이 저절로 나오지 않도록 정신을 바짝 차리며 연습하고 있어.


근데 그보다 슬픈 게 뭔지 알아? 이러면서 우리가 그 사람들을 가족, 친구, 남편이라고 생각하잖아. 내 불만을 듣고 싶지 않다면 그런 관계가 다 무슨 소용이 있겠어? 내가 그들이 나빠서 그렇다든가, 그들을 나무랄 마음이 있어서 그런 말을 했다고 오해하지 마. 다만 나는 속마음을 편하게 나누고 싶은 것뿐이야. 


누군가 앞에서 마음껏 울고 내 무거운 짐을 10분이라도 내려놓고 싶을 뿐이지 누구한테 도움을 요청하고 싶은 건 아니야. 다만 속이 후련할 때까지, 듣는 사람이 아무 편견이나 선입견 없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기를, ‘넌 진짜 잘하고 있어.’라는 간단하면서도 힘이 되는 말을 한 번이라도 듣고 싶은 것뿐이야.     


내가 일상에서 전혀 들을 수 없는 말을 이제 이 글을 통해 모든 사람에게 하게 됐네. 타인이 내게 될 수 없는 존재가 되기를 기대하는 대신 내가 나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준 것 같다. 



사진: Unsplash의 Carli J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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