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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dovico Aug 15. 2024

오래된 미래, 광장

① 왜 광장이 필요할까?

20대 후반,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몇 년이나 쭉 고민 해오던 나는 드디어 최종 시점에 이르렀다. 스스로 더 이상 도망치지 않기 위하여 결정의 시일을 4월 30일로 정해두었다. 매 순간, 매 시간을 어떤 선택이 더 나은 것일까하며 생각에 빠져 끙끙댔다. 부모님과 한 집에서 살던 때라 대략 내 상태를 알고 있던 아버지께서 내가 안쓰러웠던지 집 근처 삼겹살집에서 저녁을 먹자고 하셨다. 노릇노릇 구워지는 고기와 김치를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는 어려운 고민에 결정을 해봤어요? 어떻게하면 후회없는 선택을 할 수 있어요?” 그러자 아버지는 삼겹살과 김치를 몇 번 뒤집으시더니 말씀하셨다. “정호야, 너 담배 피워봤냐? 아버지가 담배를 끊었던건 기억나?”, “네 기억은 나는데, 저는 담배를 피워본 적은 없어요”, “그러면 설명하기 어려운데, 담배를 끊는 것 같은거야. 피우지 않겠다고 결정을 했지? 그럼 그 다음은 마음 먹고 그냥 끊는거야. 그게 전부야.” 아버지는 본인이 도움을 크게 못주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나에게는 아버지의 이야기가 선택과 결정, 수용과 살아감에 큰 힘이 되었다.

어떤 선택이나 결정이든 머리로 시작했더라도 몸으로 끝내는 것이다. 행동했다면 후회하지 말고 바뀐 삶을 그저 살아가는 것이다. 내가 성인이 되어 아버지에게 배운 가장 큰 가르침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삼겹살 집에서의 부자의 대화가 상당히 마음에 드셨었나보다. 아버지의 아버지, 나의 할아버지는 자신의 첫째 아들이자 장남인 나의 아버지와의 대화를 주로 집에서 하셨는데, 대화의 방식이라하는 것이 대체로 박정희 시대 때 만들어졌으나 지금은 여의도공원이 된 과거의 5.16 광장과도 같이 권력자의 수직적이고 일방적인 의견 전달에 치중해 있었다. 그런데 삼겹살이라는 음식도 맛있고 아들과의 수평적인 관계에서 이뤄지는 대화의 경험이 너무 좋으셨던 아버지는 이 경험을 쭉 이어가고 싶어하셨다.

그 날 이후, 나와 아버지는 이 삼겹살집에서 만남을 가졌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광장이자 공론의 장이 되었다. 지금까지 약 10년 가까이 우리 집안일을 비롯하여 개인적으로 중요한 일부터 사소한 일상의 공유까지, 아버지와 둘만의 대화를 이 삼겹살집에서 나누었다. 특히 정치에 관해서는 대체로 생각이 일치하기 때문에 대화가 일치하는 경험을 많이 가질 수 있었다.

아버지와 나의 공론장이었던 삼겹살집(자료 : 네이버 맵)




몇 사람만 모여서 어떤 주제를 이야기하고 공통된 의견이 도출되는 것을 두고 공론(公論, public opinion)이라고한다. 이 단어가 일상에서 쉽게 사용하거나 익숙한 단어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론을 만들었던 경험을 하고 있다. 광장이라는 것이 공간적인 개념을 지니면서도 공론의 장으로서의 의미로 알려진 것도 서구사회, 특히 유럽에서는 광장에서 사람들이 만나서 이야기하고 공통된 의견을 도출했던 경험이 모두에게 있기 때문이었다.

현대에서 공론장이라는 용어가 유명해진 것은 아마도 ‘하버마스(Juergen Habermas)’라는 학자의 ‘공론장 형성과 그 변동’이라는 책의 역할이 컸다. 또 우리 한국사람에게는 익숙한 조선시대의 이야기에서 공론정치라는 용어로도 접해봤으며, 최근 몇년 간은 me-too와 같이 대중적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특정 사실을 공개적으로 알리거나 폭로하여 이슈화하는 것을 두고 공론화라는 단어가 익숙해졌던 것 같다. 또 늘 언제나 우리곁에 있는 언론이, 그 역할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책무가 사회를 구성하는 다양한 구성원 간 갈등을 해소하고 의견을 모으는 공론장을 적극적으로 조성하고 구성한다는 것에 있어서 공론장을 이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보다 더 먼 과거부터 생각해보면 광장과 공론장이라는 것은  현대에 와서 다뤄지고 정의내려지기 전부터 우리 인간들이 집단으로 함께 살아가며 경험해오던 오래된 소통의 방식이자 인류의 존재형태였다.

인류(호모 사피엔스)의 지구상 출현을 통상적으로 30만년 전으로 바라보는데, 기존의 다른 동물과는 다르게 복잡한 언어와 문자를 발명해냈다는게 인상적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르게 언어와 문자를 지금과 같이 복잡한 형태로 구현해낸 것은 서로 대화하고 싶었던 깊은 갈망이었다고 생각한다. 즉 집단이 소통하고 싶은 큰 욕구, 공동체가 하나의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바램이 공론장과 같은 소통의 방식들을 발전시켜온 것이다.


어린 시절, 우리 가족에게 외식 메뉴 선정은 늘 이슈였다. 내가 기억하는 그 날도 기념일에 맞춰 함께 저녁메뉴를 정하고자 회의를 개최했다. 갈비를 좋아하는 나와 회를 먹고 싶어하는 부모님과 누나들.. 막내이자 고집불통이었던 나의 고집에 맞춰 갈비를 먹고는 했지만, 그 날은 다수결 투표와 어머니의 결과 선포에 따라 횟집으로 향했다. 정작 맛있고 귀한 광어회를 먹지 않고, 스끼다시라고 부르는 밑반찬으로 배를 채우던 그 날의 저녁이 떠오른다. 아주 사소한 공론장이었지만 내게는 가족들과 토론하고 결정된 결과에 따랐던 기억이, 그래도 반찬을 맛있게 먹었던 순간이 아주 생생하게 남아있고, 내 뜻과 다르더라도 함께 논의해서 정한 것은 따라야한 다는 교훈도 얻었다.

식사 메뉴를 고민할 것만 같은 호모 사피엔스 가족(자료 : iStock)

집단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서로가 다른 욕구를 조율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소통의 공간이 필요하다. 초기 인류는 문자가 없었어도 원시적인 언어 수단이나 비언어적인 모종의 의사소통 수단을 포함해서 적극적으로 소통을 해왔다. 인간의 언어가 소통에 용이해서 더 많은 인간이 함께 군집을 이뤄 살았던지, 인간의 생존에 공동체를 이루는게 용이해서 함께 살다보니 소통 언어를 급진적으로 발전시켰던 것인지는 댤걀과 닭의 순서와 같은 논쟁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집단으로서 함께 살며 생존해왔고 공동체를 이루고 살면서 서로 간에 소통을 해왔다.어쩌면.. 초기 인류의 첫 공론장도 식사 메뉴 선정이었을지도 모른다. “오늘은 열매로 떼우자!”,  “아니야 조금 배가 고프고 시간이  걸려도 사냥하자고!”




우리의 아주 먼 최초의 조상들 때부터 각자가 서로 다른 면이 많지만 꼭 함께 살아가야하는 사회적 동물이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끊임없이 소통하고 맞춰가야했다. 서로가 다른 지체이면서도 하나의 몸처럼 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계속 소통하는 방법 밖에 없다. 즉 인류는 오래전 부터 다양한 공론장을 운영하고, 공론화를 거치며 공론을 만들어왔다. 그것은 집단, 군집, 공동체의 숙명과 같았다.

고대 그리스 문학 중에서 가장 오래된 서사시인 호메로스의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 이후 10년간 모험을 거쳐 고향이 돌아오는 오디세우스를 다루는데, 중요한 스토리 전환 등이 있을 때 신들이 모여 회의를 하는 장면이 나온다. ‘여러 신들의 회의, 아테네가 텔레마코스에게 출발할 것을 권하다’라는 제목으로 시작하는 국내 출판본(동서문화사)을 보면, 주인공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포세이돈의 아들 폴리페모스(퀴클롭스라고 부르는 눈이 하나뿐인 거신)의 눈을 멀게한 오디세우스에 대한 포세이돈의 분노였다.

오디세우스가 고국 이타카 섬으로 돌아가지 못한채로 세월이 오래 흘렀고, 다른 신들은 그런 오디세우스를 불쌍하게 여겼지만 포세이돈만은 노여움을 풀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포세이돈이 인간 세계 맨 끝에 살고 있는 나라에서 여는 제사에 참석하러 떠난다. 이 때를 노리고 다른 신들이 모인다.

라파엘로<신들의 회의>를 통해 올림푸스 신들의 공론장을 생각해볼 수 있다. 다만 이 그림에는 포세이돈이 자리한다. 어디에 위치하고 있을까?

‘포세이돈이 잔치 자리에 앉아서 즐거워하는 동안, 다른 신들은 올림포스에 있는 제우스 대신의 궁전에 모여 있었다. 인간들과 신들의 어버이 신인 제우스가 맨 먼저 말을 꺼내었다.(중략) 어떻든 간에 자, 이제 여기서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어, 어떻게든 그가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좋은 방법을 세워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그러면 아무리 포세이돈인들 노여움을 그만 거두게 되리라. 모든 불사의 신들에게 반대하면서까지 혼자서 맞서 싸운다는 것은 도저히 불가능할 것이니 말이야


책에서는 신들 중 제우스와 아테네가 주로 이야기를 나누지만, 포세이돈을 제외한 모든 신들이 궁전에 모여서 저마다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떠오른다. 오디세우스의 귀환이라는 주제가 있고 궁전이란 공간이 있다. 신들마다 개성이 뚜렷하다. 그들이 저마다 이야기를 하며 소란스러운 모습을 상상해본다. 점차 의견이 모아지고 제우스는 결정 사항을 공표한다.

저자인 호메로스는 초월적인 존재인 신들의 모습에서 당시의 사람들이 어떤 장소에서 토론하는 방식을 그대로 투영했을 것이다. 더불어 이야기의 중요한 첫부분에 신들의 회의를 배치한 것은, 결국 독자들에게 오디세우스가 고향에 돌아와야한다는 당위성을 공론화한 것이었다. 그 덕분에 이 이야기를 읽는 사람은 누구든지 오디세우스가 고향에 가야하는 것에 동의하고 공감하며 긴 이야기를 읽게된다. 글로 기록되어있는 가장 오래된 기록물 중 하나인 ‘오디세이’에서 신들이 회의를 한다는 것이 우연은 아니다. 이미 그 시대의 인류에게 공론이 이루어지는 광장은 익숙한 형태였다.

인류의 중요 문헌 중 빠질 수 없는 성경에서도 공론장으로 해석할 수 있는 장면이 여러번 등장한다. 특히 신약성경에서는 당시 사람들이 모여있는 장소인 혼인잔치, 산, 성전, 길거리 등 다양한 대중과 대화를 시도하고 어떤 질문을 던진다. 사람들은 질문에 답을 하기도 하고 다시금 질문을 던지기도 하면서 종교적인 주제를 토론한다. 예수의 메시지가 어떻게 선포되고 토론되고 다뤄졌는지를 볼 수 있다.

헝가리 화가 카로이 페레치(1896)가 재해석한 산상수훈




이 외에도 오래된 인류의 기록에서 공론장이 운영되어 왔던 사례는 차고 넘친다. 그렇다면 공론장을 운영하는 이런 방식은 인간만의 전유물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군집을 이루는 생물종에게서는 더러 일종의 공론을 도출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아프리카 들개라고 불리는 리카온(Lycaon)은 재채기를 통해 사냥 여부를 맞춰가기도 하고, 미어캣, 개코원숭이, 바위개미 등 집단으로 서식하는 동물종은 소통을 통해 하나의 결과를 수렴해간다. 인간도 생물종 중 하나일뿐인 것을 생각해보면, 집단소통의 방식은 군집을 이루는 모든 생물체가 공동적으로 가질 수 있는 일종의 존재형태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다만 집단에서 소통하여 결과를 만들어내는 방식은 동일하지만, 민주적 공론장으로 거듭나는데 필요한 조건들은 오직 지구상에서 인간만이 만들어냈다.


우리 인간이 시도하는 공론장은 완성형이 아니다. 계속 만들어지는 과정에 있다. 최재천 교수는 기존의 토론이란 용어가 가진 한계를 넘어, 여럿이 특정 문제에 관해 깊이 생각하고 충분히 의논하는 과정이란 의미로 ‘숙론’이란 개념을 새롭게 제시했는데, 이처럼 공론장도 더 다양한 장소와 대상의 참여를 포함하여 새로운 시도들이 많아 질 것으로 기대한다. 미래에는 공론장에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권한을 줄 것이며, 서로 평등한 태도와 마음으로 대하며 성숙하게 숙론하지 않을까?


 기술이 더 발전할 미래에는 전혀 다른 세상이 펼쳐지며 광장의 지평도 확 달라 질 수 있다. 2021년 외교부는 '먼 미래에 화성 이주가 본격화되면 화성에 어떤 세계가 들어설 것인가'이라는 SF적인 연구를 발주한다. 서울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작가 배명훈은 연구 끝에 '화성의 행성정치: 인류정착 시기 화성 거버넌스 시스템의 형성에 관한 장기 우주전략 연구'라는 보고서를 완성하고, 이어서 화성 이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화성과 나'(래빗홀)라는 연작소설을 낸다.

우주 펼쳐져 있는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토론하려면 어떤 장이 있어야할까? 당장 소설 ‘화성과 나’에서의 화성 문명은 국가가 없는 행성 정부라는 제도를 택하는데, 지구 문명과의 견해차, 희소한 자원, 파벌 간 갈등 등 정착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들을 겪는다. 문제해결을 위해서는 분명히 소통이 필요하다. 그런데 지구와 화성은 가장 가까울 때는 5460만 ㎞, 가장 멀 때는 4억 1000만 ㎞ 떨어져 있어 현재 기술로는 화성으로 편도 이동에만 약 7개월이 소요되고, 통신으로도 아무리 줄여도 송수신에 6분 이상은 걸린다고하니 광장의 형태가 지금과는 파격적으로 다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더 먼 미래에 굉장히 먼 행성과도 교류가 가능해진다면, 외계인과도 관계가 만들어진다면, 호모 사피엔스 종족 혹은 외계인이 함께 군집되어 있는 행성이 생긴다면 모두를 위한 소통을 어떻게 해나갈 것인가? 광장을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이런 이슈가 지금은 SF적 상상이지만,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닥칠 수도 있고,  우리에게는 오래전부터 반복되어오던 것이기도 했다. 광장은 이미 오래된 미래이다.

온 우주가 배경인 스타워즈의 '제다이 고등 평의회' 옅은 푸른색은 홀로그램으로 참여하는 모습이다. 미래의 광장은 이 와 유사하지 않을까?(자료 : 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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