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라는 말에는 설레임도 있지만, 처음 겪어보기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도 담기기 나름이다. 파란 하늘, 간간히 떠있는 구름들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던 2023년 10월의 어느 날의 '첫 만남'을 잊지 못 할 것 같다. 정확히 오후 1시에 고대하고 기다리던 우리 딸이 무사히 태어났다. 세상에 나온 딸은 정말 작고 아기자기해서 손을 대기가 무서울 정도였다. 울기라도하면 그 소리가 너무도 크게 들려서 어쩔 줄 몰랐다. 그랬던 나와 아내는 시간이 흐르면서 아기를 돌보는 솜씨가 늘며 키울만 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 아기가 처음으로 크게 아팠다. 유행 전염병인 수족구였다. 새벽에 갑자기 열이 나고 울기 시작했다. 밤새 39도가 넘는 열에 시름하는 아이를 보며 우리 부부도 시름도 깊어갔다. 특히 약을 제대로 먹이지 못해서 두번이나 토하게했는데 정말 미안했다. 이런 시행착오는 앞으로도 또 있겠다는 자각이 들었다. 아기를 잘 키우는데는 여러 고난의 시간이 필요한 것 같다.
이 어려움을 잘 겪어가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 대화했다. 특히 수족구에 걸렸을 때, 각종 정보를 알아보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서로가 힘들어서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하면서도, 다시금 아기를 위해서 정신을 차리며 해결책을 찾아갔다. 긴박할수록 광장에서의 토론은 숨가쁘게 진행된다. 다행히 우리 집의 광장은 서로에게 열려있고, 의견을 경청하고, 결과를 수렴하여, 합의해가는 과정을 무사히 거칠 수 있었다.
'아이고~ 힘들다'는 말이 나오기도 했지만, 어른들은 말을 하거나 글을 사용할 수 있어서 직접 만나거나 메신저로 대화를 이어가며 문제를 해결해가지만, 말을 못하는 아기들은 얼마나 힘들까 싶었다.
어른인 우리가 사람이라면 당연히 한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아기에게는 모두 첫 경험이었다. 눈을 뜨고 것도 여러 번 연습을 거친 뒤에야 익숙해졌고 엄마 젖을 먹는 것도 처음에는 시행착오를 거쳤다. 요즘에는 혼자 일어서는 연습을 하는데, 그 전에 뒤집고, 기고, 앉는 신체 발달도 처음 할 때는 늘 좌충우돌을 겪곤 했다. 어쩌면 양육자의 가장 큰 역할은 셀 수 없이 많은 처음을 겪는 아기가 그 시도들을 잘해낼 수 있도록 함께 있어주고 말을 할 수 있게되면 대화하며 응원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겠구나 싶었다. 집이 광장으로서 편안한 공간이 아니라면, 아이는 안그래도 힘든 처음을 더 어렵게 겪어가지 않을까?
어느덧 돌이 되어가는 딸, 나는 딸바보다.. 어른이라고 처음을 쉽게 헤쳐나가는 건 아니다. 모든 사회인에게 또 하나의 잊지 못하는 처음은 사회에 본격적으로 나왔던 시기일 것이다. 첫 조직에서 배운 일의 여러 방법들과 첫 사수를 따라다니며 배운 방식들은 평생 펼쳐질 사회생활의 반석이 되므로 중요한데, 이 때 많이 실수하고 혼나는 좌충우돌을 겪을 것이다. 특히 사회에서의 첫 광장을 어떻게 경험하느냐는 그 사람으로 하여금 앞으로의 여러 의사소통의 공간과 방식에 큰 영향을 미친다. 광장에서의 소통 방식을 제대로 배우지 않거나 못하면, 언젠가는 문제를 일으킨다. 일의 대부분은 소통에서 이뤄지는데, 이런 점에 역량이 부족하면 정치력이나 꼼수만 발휘하게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사회에서의 내 첫 광장은 희망제작소라는 비영리 민간싱크탱크에서 인턴으로 경험했다. 2006년도에 만들어졌던 이 연구소는 독재정권에 대한 민주화에 포커싱에 맞춰졌던 시민사회운동에 새로운 흐름으로서 시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실사구시 정책들을 지향했다. 과거에 없던 첫 시도로서의 조직이라 그래서였을까? 개성넘치는 사람들이 많았다.
옆 부서, 한 선배의 자리에 있던 티셔츠.. 멋진 분이었다..(자료 : 직접촬영) 첫 사수였던 분은 인간적으로도 일적으로도 배울점이 많은 사람이었다. 일은 일대로 꼼꼼하게 알려주면서도, 후배를 인간적으로 대하는 태도도 훌륭했다. 일을 하는 중에도 종목을 가리지 않은 독서와 틀에 충실하면서도 잠깐 틈날때마다 일상을 즐기는 자유로운 모습들이 참 인상적이었는데, 여성 그리스인 조르바가 있다면 비슷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했었다. 사계절 늘 비니만 쓰고 다니던 분도 계셨고(인턴들은 늘 그분의 비니 속 머리모양을 상상했다..), 젊은 세대임에도 개량한복을 좋아하고 풍물패에서 활동했던 선배도 있었다. 한 부서에서는 펭귄 인형을 빈 자리에 앉히고 펭수라는 이름을 주어 얼굴 마담 부서원으로 일을 시키기도 했다. 여러모로 처음 겪는 다양한 사람이 많았던 조직이였다.
이러한 다양성에 기반해서였던 것 같다. 연구소에는 희망모울이라고 부르는 공간에서의 독특한 광장 문화가 있었다. 조직에 다양한 문화를 비롯하여 사업방향과 조직 내 여러 문제해결도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었다. 인턴을 제외하고도 약 50~60명이 상근했던 규모에서 전체 회의를 정기적이자 상시적으로 운영했다. 리더그룹을 제외한 모든 구성원이 월 1회 의무적으로 단체 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정보를 공개 받고 토론으로 여러 안건을 논의하면서 조직문화를 민주적으로 만들어가는 ‘연구원 회의체’가 있었다. 급한 업무로 참여가 어려운 연구원은 다른 구성원에게 위임을 하기도 했다. 본 회의체에서는 1년 단위로 채용 및 HRD 위원회에 참여하는 평연구원을 선출하기도 했고, 긴급한 조직 이슈가 발생했을 때 회의체가 소집되어 운영되기도 했다. 리더그룹이 참여할 때도 있었고 전반적으로 단체 전반의 공론장으로서의 역할을 했다.
당시 연구소에 꼽는 조직의 주요 가치가 ‘시민참여’였는데, 지금은 사회혁신, 로컬커뮤니티, 사회적경제, 시니어사회공헌(지금의 50+), 지속가능발전, 공공리더, 공동체 재난대응 등의 분야가 많이 확산되었다지만 당시에는 쉬이 찾아볼 수 없는 의제들을 다루는 부서가 다양하게 있었다. 이 다양한 의제를 다루는 부서들을 묶는 핵심가치 중 하나가 바로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 공론장(광장) 운영이었다.
내가 시민들과 함께하는 첫 광장은 ‘좋은 서울만들기 대학생 공공서비스디자인캠프’ 라는 사업에서 최종발표의 현장 지원이었다. 서울시가 제공하는 공공서비스를 새롭게 디자인하는 사업으로, 그룹을 이룬 대학생들이 3개월 간 자신들의 공공서비스 개선 아이디어를 숙성시키고 발전시키는 공론장 사업이었다. 서울시의 정책에 행정이나 민간 전문가만 권한을 갖는 것이 아니라 대학생들이 영향력을 미칠 수 있구나하는 점에서 생각의 전환을 주었던 경험이었다.
웹포스터(자료 : 희망제작소 홈페이지) 최종 발표된 사업은 ▲마을청년회 : 마을공동체 활성화 방안 ▲레인보우 : 청년 구직 문제 해결 ▲ 1박2일 : 청년 주거 문제 해결 ▲Co-톡 : 마을공동체 활성화 방안 ▲청사초롱 : 청년 복지증진 방안 ▲안도 : 안전한 도시 만들기 ▲서울을 구하라 : 에너지 절약 도시 만들기로 총 7개였다. 금상은 Co-톡팀이 만든 서비스인 ‘바로바로 통하는 터치 바통터치’ 가 받았는데, 마을 공동체를 활성화하기 위해서 자신이 사용하지 않지만 유용한 물건과 마을 사람들의 재능을 서로 교환하고 구매 할 수 있는 장터를 여는 서비스였다. 사람들에게 참여의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경매의 요소도 도입하고 커뮤니티 파티 등에 대한 기획도 함께 제안했다.
서울의 시민, 특히 대학생들이 중심으로 참여했던 이 사업의 과정 자체가 ‘어떻게하면 서울시 공공서비스를 새롭게 디자인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공론화이자 학생들이 논의했던 모든 장소가 공론장이였다. 흔히 공론장이라 하면 단발성을 염두에 두고 생각하게 되는데, 처음 접했던 공론장이 이처럼 긴 기간동안, 당시의 사회에서 새롭게 시도하던 사회혁신방법이었다는 점은 나에게 공론장에 대한 인식을 자유롭게 했다.
이 이후로 몇 곳의 조직을 경험했지만 지금의 연구소까지 쭉 이어온 경험은 '광장'이었다. 기획, 운영, 진행, 스탭참여 등으로 참여했던 공론장의 횟수를 어림잡아보면 약 200회는 되는 것 같다. 1,000명 단위의 대규모 공론장도 있었고, 나를 포함해 5명뿐이었던 광장도 있었다.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며 확고하게 자리 잡힌 것은, 시민들이 광장에 참여하도록 촉진하는 것은 곧 ‘좋은 서울(지역) 만들기’이자 '내가 머무는 곳을 더 좋게 만드는 길'이라는 생각이었다.
누구나 어느 공간에 머물고, 속해있는 조직이 있고, 맺는 관계가 있다. 그 모든 곳에서 '훌륭한 광장의 경험'이 있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와 일상의 영역 안에서 소외되는 사람이 없이 함께하는 것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계속, 더 많이, 자주 강조해도 탈나지 않는다. 구성원들이 주도하고, 참여하고, 소통하는 방법에 대해서 광장이 우리의 일상에 습관처럼 이어지도록 하고, 특히 미래세대가 첫 광장을 민주적으로 잘 경험했으면 좋겠다. 그래야 세살 버릇이 여든가듯이 평생을 두고 시민으로서의 권리인 참여에 근거하여 광장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경험이 더 많아질 때, 우리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의 민주적인 가치도 자연스럽게 자리잡을 것이다. 결국 살기 좋은 곳에는 광장이 있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