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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dovico Aug 17. 2024

존재하는 모든 광장에는 이유가 있다

② 광장 이해하기

우리 삼남매의 어머니인 오 여사께서는 아이들을 향한 사랑이 넘치는 사람이었다. 크면서 여러 갈등을 엄마와 겪어왔지만 그럼에도 우리의 관계가 여전히 좋을 수 있는 건, 엄마에게 받았던 많은 사랑을 내 무의식이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좋은 엄마이고 이만하면 충분한 엄마지만 민주적으로 자녀를 양육했던 엄마는 아니었다. 특히 의사소통의 방식에 있어서 엄마의 비민주적인 ‘일방성’은 자율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내 욕구를 매번 무너뜨리는 폭탄이었다.

모든 생명체는 주어진 환경에 적응을 한다. 나는 진화론으로 불리는 이 진리를 ‘존재하는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다’는 말로 자주 되새긴다. 우리 엄마의 소통 방식은 특히, 나를 대하는 방식은 왜 저렇게 된 것일까? 엄마의 어떤 마음(밀실)이 늘 자기중심적으로 의사소통 하게 만든걸까? 

엄마와 나의 광장은 위기에 처해있었다.

피부색이 다른 건 저마다 당시 환경에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자료 : 뉴스페퍼민트)


사춘기가 오기 전, 나와 엄마의 관계에서 엄마는 나의 소통 채널이었다. 나는 내향 of 내향로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너무나도 신경쓰며 소극적인데다 당연한 권리가 있는 때도 나서지 못하고는 했다. 그때마다 엄마가 개입하는 소통의 방식은 나에게 딱 필요한 것이었고, 이를 통해 나는 필요한 것들을 잘 얻을 수는 있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결코 좋은 의사소통의 방식은 아니었다.

또 엄마의 강한 리더십을 필요로했던 여러 사건들 덕분에 우리집에서 엄마는 통제와 일방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의사소통의 가치임을 몸으로 습득해버린 것 같다.  

커뮤니케이션 유형, 우리 집은 1번 수레바퀴형이었다. (자료 : 위키백과)

의사소통 유형에는 원형, 사슬형, 수레바퀴형, Y형, 완전연결형이 있다. 우리집은 수레바퀴형이었는데, 엄마를 중심으로 가족 간 소통이 이뤄지는 방식이었다. 유형에 더 좋고 나쁘다고 할 수 있는건 없겠고 상황에 따라 적절한 유형이 있겠지만, 민주적인 광장에서는 ‘완전연결형’을 통해 소수의 공식적인 리더나 구조가 없이도 소통이 잘 이루어지도록 해야한다.


광장을 이야기할 때, 잘 기능했던 부러운 광장을 두고 흔히 유럽 사례를 가져온다. 왜냐하면 민주적인 광장의 시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이 기원전 8세기 경의 고대 그리스이기 때문이다. 당시 그리스는 폴리스라는 도시국가 형태로 존재지만, 지리적인 개념 외에도 여러 사람들이 함께 행위하고 말함으로써 발생하는 조직체라는 소통의 정체성이 담긴 도시이기도 했다. 소통이 이루어지던 광장을 두고 ‘아고라’라고 불렀다. ‘함께 모이다’라는 뜻에서 유래해 ‘광장’이라는 의미는 갖는 아고라는 ‘열린 회의의 장소’였다.

아고라는 도시의 운동, 예술, 영혼, 정치적 삶의 중심지이자, 국방의 의무를 위해 모이고 왕이나 의회의 발언이 있던 통치의 장소, 상인들이 상품을 팔기 위해 노점이나 상점 등을 운영하는 시장이었다. 폴리스에서 집단의 소통에 관한 중요한 공간이자 과정을 관리하는 곳이 아고라였던 것이다. 세계 4대 현인으로 늘 등장하는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은 곳도 아고라에 있던 재판장이었다.

소크라테스의 재판 상상도(자료 : https://m.blog.naver.com/bluett2/221904194189)

아고라는 당시 다른 국가형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민주적인 가치를 지닌 공론장이었지만 현대의 민주적 공론장과는 거리가 있었다. 우선 의제에 따라서 참여의 제한이 명확했다.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을 때는 ‘30 세 이상인 남성’ 중 추첨으로 선발된 대표들만이 광장에서 표결권을 가진채 논의할 수 있었다. 물론 방청도 가능했고 외국인들도 참여할 수 있어서 일정 부분 열려있긴 했다만, 가장 근본적으로는 성별과 나이에 엄격히 제한받는 폐쇄적인 구조였다. 편향된 참여는 진실을 왜곡해서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소크라테스가 재판을 받아 사형판결로 죽게된 것에는 이런 폐쇄성과 편향성이 악역향을 줬을 것으로 추측해본다.


또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하는 민주주의의 방향과는 다르게 아고라에서는 사실이라고 제시되던 정보값들이 선동에 의해 거짓된 경우가 잦았던 것 같다. 소크라테스의 재판도 비합리적인 정보에 기반하여 이루어진 공론장 운영의 대표적 실패 사례였다.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행정이나 기업 현장에서 정보의 폐쇄성이나 거짓 정보로 인한 문제를 막기 위해 정보 투명성을 강조한다. 어떤 논쟁의 현장이 있다면 증거가 없는 주장은 요즘 말로 ‘뇌피셜’이라 힘을 가질 수 없다.

알권리에 대한 이슈는 시대의 변화에도 계속 이어진다. (자료 : 세계일보; 로리더)

그런데 소크라테스가 고발당한 세가지 죄명인, 나라가 인정하는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새로운 신을 믿었다는 것, 젊은이들을 타락시켰다는 것은 뇌피셜 그 자체였다. 소크라테스는 이 재판에 문제점을 알았다. 그래서 결과를 부정하고 친구들의 도움으로 해외로 도주하여 생명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결과를 받아들여 독이 든 잔을 들이킨다.


하지만 이 시대에 이뤄진 광장에서의 비민주적인 문제점들, 예컨대 제한된 참여자에게 집중된 권한, 잘못된 정보에 기반한 논쟁을 비민주적인이라고 무조건 비판하기는 어렵다. 시대의 한계가 있다. 이 시기에 잘못된 사례와 기억이 있었기에, 오늘날 민주적 공론장은 이 때의 공과에 따른 영향을 받고 있다. 적어도 오늘날의 민주적 공론장에서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의 참여(주권), 올바른 정보에 기반한 논쟁, 나의 다른 의견을 받아들이는 시민의 모습을  끊임없이 생각해볼 수 있게 되었다. 즉 우리의 민주적인 광장에 이유가 되어준 것이다.  




우리나라는 동아시아의 인접한 국가에 비해 민주주의 광장에 열려있고 시민의 힘에 의한 공론장 경험이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과거로부터 이어온 광장의 경험 덕분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이미 조선시대부터 공론정치라는 것을 추구했다. 국가가 어떤 정책을 계획하고 추진하려할 때, 왕과 주요 대신뿐만 아니라 언관기관(감시와 비판을 하는 기관)인 홍문관, 사관원, 사헌부 외에 조선 내 여러 계층(성균관 유생, 사부학당 학생, 지방의 학자들)의 의견(상소나 구언 등)을 들어서 정책에 참고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경연 등의 소통 공간을 운영하며 국가의 주요 정책을 논의했다.


물론 본질적으로는 힘이 아닌 덕에 의해 지배하는 왕도정치 사상(성리학)에 기반하고 왕을 비롯하여 대신들만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지배 엘리트에 의한 광장이었지만 이 역시도 시대적 한계를 고려해봤을 때, 또 당시의 시대배경에서 다른 국가에 비해 조선의 공론정치는 현대의 민주주의 공론장에서도 본받을 요소가 분명히 있다.

<회강반차도(會講班次圖)>조선시대 왕세자와 그의 스승을 비롯한 관원이 모여 경사(經史)를 강론하는 장면이다.(자료: 서울대학교 규장각; 역사로 보는 민주주의)

특히 세종이라 불리우는 ‘이도李祹’는 경연을 가장 많이, 잘 활용하던 왕이었다. 그 과정에서 대신들에게 의견을 적극적으로 묻고 실제 국가정책에 관한 의사결정에도 반영했다. 왕이 된 세종이 처음으로 한 말이 “내가 인물을 잘 알지 못하니, 좌의정·우의정 과 이조·병조의 당상관과 함께 의논하여 벼슬을 내리고자 한다.”였다. 즉 ‘의논하자’였던 것을 보면 열린 사고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다른 관점도 있다. 아버지로부터 제한된 권력을 이어받은 세종은 나이가 어렸고 경험이 부족해서 대신들의 의견을 많이 듣겠다고 해석하기도 하지만 부족함을 경청으로 해결하겠다는 태도는 여전히 훌륭하다.


또 세종은 재위 12년이 되었을 때, 세금 개혁의 과정에서 “전국의 전·현직 관리는 물론이고 세민(細民·가난하고 비천한 백성)들에게까지 모두 가부를 물어 그 결과를 아뢰도록 하라.” 는 명을 내린다. 대신들에 의해 ‘전답 1결 당 조 10두 징수’를 골자로 한 공법(세금) 방안이 제출되자, ‘전국적인 여론조사’를 지시한 것이다. 조사 결과로는 총 17만2806명 가운데 찬성 9만8657명, 반대는 7만4149명이 집계되었다. 조선의 공론정치가 엘리트 공론장이었음에도 더 많은 민의를 들으려는 민주적 공론장의 시도를 일찍부터 해온 것이다. 당시에는 디지털 도구도 없었을텐데, 이렇게 시간을 들여 의견을 수렴한 것 자체가 대단하지 않은가?



지금 당신이 살아가고 경험하는 집단에서의 광장은 어떨까? 가까운가 멀리있는가? 열려있는가 닫혀있는가? 소통이 잘되는가 막혀있는가? 참여가 쉬운가 어려운가? 

평등한 관계, 합리적인 과정, 함께 내리는 결정을 두루 지닌 광장은 찾아보기 힘들다. 특히 이러한 민주적인 방식으로 운영하는 광장은 속도도 늦고 비용도 많이 들어 비생산적이라는 관념을 준다.
만약 효율을 중시하는 집단에서 운영하는 광장이라면 일부 사람들에게만 열려있고 민주적인 과정이 이뤄지지 않은 곳이 될 여지가 크다. 또 정말 관련한 이해관계자의 목소리를 듣기보다 형식적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더 많을 것 같다.

당신의 광장이 어떤 형태든 포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체로 현재의 불통과 비합리적인 방식으로 작동하는 광장을 두고 비난과 안타까움을 지니며 기대를 내려놓는다. 하지만 그것은 장기적으로 당신의 행복한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공론장에서의 불합리한 방식에 대해서 지나치게 실망하고 손을 놓기보다는 그 이유를 찾아내고 조금씩이라도 개선해가면 어떨까?


나는 엄마와의 소통에 있어서, 엄마가 왜 그렇게 존재하는지 이유를 많이 알게됐다. 그 이후에야 엄마를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엄마의 비민주적인 소통방식을 허용하는 것은 아니다. 대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이야기하게 됐다. 때론 갈등도 계속 이어진다.
우리가 사회의 문제와 갈등을 서로 다른 사람들과 대화와 소통으로 풀어간다는 것이 정착될 때 우리 사회는 역동성을 표출하고 다루고 조율하며 기능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 시작점에는 ‘광장이 가진 모습에 대한 이유’를 알아내는 태도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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