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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dovico Aug 18. 2024

선동은 쉽지만 진실은 어렵다

② 광장 이해하기

코로나19가 창궐했던 2020년 결혼을 했다. 당시의 모든 신혼부부가 그랬듯이 신혼여행을 떠나지 못하고 예약했던 비행기표를 취소했다. 몇 년 뒤, 쉼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던 나와 아내는 기분 전환을 위해 제주도로 여행을 떠났다. 그 좋다는 제주도의 4월, 콧바람에 신나기도 전에 우리는 코로나에 걸려서 일주일 내내 크게 앓아 누워 콧물만 흘렸다. 

서울로 오기 전에 겨우 회복은 되었지만 너무 억울했다. 지친 몸을 겨우 추스려 향한 제주공항에서 김포행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부산행 비행기를 탑승하려는 사람들의 부산한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눈이 트이는 것처럼 시야가 넓어지면서 여러 모습이 오감으로 들어왔다. 비행기가 곧 떠나는 것을 알리며 아직 탑승하지 않은 김모씨를 찾는 콧소리가 절반인 방송소리, 커피 한잔 손에 들고 그 향을 느끼며 여유롭게 스마트폰을 하는 사람, 커다란 통창 너머 푸른 하늘로 날아오르는 비행기, 내 손에 들린 한 권의 책과 아직 읽지 않은 중간 이후의 페이지들. 그러면서 억울함이 그동안 잊혀졌던 신혼여행이라는 미달성 퀘스트를 일깨워 몸 안에서 뜨겁게 타올랐다. 

일단 서울로 향하지만, 곧 유럽으로 떠나고 말테다(자료 : 제주일보)

아내와 나는 신속하게 주변환경을 정리하고 2개월 뒤인 6월 27일 로마행 비행기를 탔다. 우리는 2개월동안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도시들을 버스와 기차로 이동하고 여행했다. 또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걸으며 자유롭고 단순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여행의 말미인 8월 24일, 37살 생일을 하루 남긴 나는 아내와 프랑스 파리에 있었다. 그 날은 오전 내내 루브르 박물관을 관람하고 나와서 오후에는 파리에 살고 있는 사촌동생을 만나기로 했다. 약속시간을 기다리며 센강이 옆에 흐르는 뛸르히 가든(Jardin des Tuileries)이라는 공원에서 아내와 여유롭게 빵을 먹고 있었다. 


뛸르히 가든의 평화로운 모습. 자유롭게 옮길 수 있는 의자가 공원 전체에 놓여져 있는게 매력적이다 (자료 : dauytrip)

바로 그 때, 지금 생각해봐도 너무나 비현실적인 현실을 목도했다. 공원 정반대에서 수백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뛰어오고 있었다. 브래드 피트 주연의 월드워Z라는 영화에서 사람 혹은 좀비들이 미친듯이 뛰어오는 듯한 모양새였다. 저마다 멋진 옷차림의 파리지앵&파리지엔들이 괴성을 지르며 저마다 달리고 있었다. 2~3초 정도 상황파악을 하던 나는, 한 백인남성이 우리를 쳐다보며 외치는 소리를 듣고 정신을 차렸다. “런RUN!! 런RUN!!!!!!!!!!!”. 

나는 ‘테러’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아내에게 ‘뛰어!’라고 외쳤다. 우리의 뛰는 모습을 본 또 다른 여행객들도 자리에서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만나는 한국인들에게 어서 도망치라고 하며 함께 달렸다. 무사히 도망친 우리는 골목길에서 숨을 고르며 동생에게 전화를 했다. 
수원교구 소속 카톨릭 사제인 동생은 박사학위를 위해 파리에서 유학 중이었다. 설명했더니 바로 TV나 SNS와 같은 프랑스 언론을 통해 상황을 파악해주었다. 틀림없이 대형 테러가 발생한 것이라 생각한 우리의 예상과는 다른 동생의 한 마디. “형~ 아무일 없는데?”

단체 달리기를 '강도'로 오해한 브라질 식당손님 '대탈출' 모습.. 우리가 이랬어요..ㅜ(자료 : 머니투데이)

지금은 웃으며 얘기하지만, 당시 달리던 순간에는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컸다. 아내는 다시는 낭만의 도시인 파리에 오고 싶지 않다고까지 말을 했다. 이 생각은 여전히 유효해서 파리 올림픽을 보면서도 아내는 파리를 공포의 도시로 기억되고 있다. 

도대체 이 상황이 무엇이었을까? 나는 말로만 듣던 3의 법칙이 원인이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3의 법칙은 ‘세 사람이 모이면 집단이 형성되어 그 집단의 주장에 힘이 실리는 현상’을 뜻한다. 우리나라 한 방송사에서 제작한 다큐멘터리에서 실험을 했다. 횡단보도를 건너던 수십의 인파 중, 1~2명까지는 하늘을 올려보아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지만, 3명이 하늘을 올려다보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걷다가 멈춰서 처음 하늘을 쳐다보면 3명의 시선을 따라서 함께 하늘을 올려보았다. 
그 날 공원에서 벌어진 이 소동의 첫 시작은 누군가의 장난이었을수도 있고, 누군가의 착각이었을수도 있다. 다만 3명 이상의 사람이 소리를 지르고 달리는 순간, 공원에 있던 대중이 모두 아비규환의 공포에 빠진 것이었다. 의도하지 않았을거라 믿지만, 선동이 이처럼 쉽다.



모든 집단에서 다수의 의견은 더 큰 힘을 얻는다. 우리가 겪은 사건은 긴급한 상황에서 다수의 대중이 대피하는 상황의 이야기를 믿은 것이다. 이러한 다수의 의견을 여론이라 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여론을 중요한 지표로 삼아 조직의 방향성 등을 정할 때 사용하고는 한다. 그런데 이 여론이라는 것이 사실과는 별개일 때가 있다. 많은 사람의 지지를 얻는다고 무조건적으로 진실은 아니다. 하지만 진실의 유무와는 별개로 여론은 사회에서 큰 영향력을 갖기 때문에 권력자들은 여론의 향방을 살피고 군중심리를 통제하고 관리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여론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아무리 진실이 아니라더라도, 3명 이상 그것에 의견을 더한다면, 진실로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광장에서는 ‘프로파간다’라고 불리우는 선전이 있는지 잘 살펴봐야한다. 광장에서 논의하는 주제에 있어서 누군가가 일정한 의도를 갖고 여론을 조작하여 사람들의 판단이나 행동을 특정의 방향으로 이끌어 가는 경우가 역사 안에서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는 2차 세계 대전의 전범국가인 나치독일과 당시 정부에서 초대 국민계몽선전장관 및 제2대 총리를 지낸 선동가파울 요제프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가 있다. 히틀러의 오른팔이었던 괴벨스는 “선동은 문장 한 줄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십 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면 이미 사람들은 선동당해 있다라는 대중선동의 명언을 남겼다. 
공자는 논어 안연편에서 백성의 신뢰가 없으면 나라가 설 수 없다.”라고 말하며, 백성의 신뢰를 얻기 위한 덕치(德治)와 인(仁)에 대한 가르침을 전한다. 특히 정치와 도덕의 이상적인 모습을 설명하고 지도자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는지에 대한 공자의 생각이 잘 드러나 있다. 그렇지만 전쟁이 만연했던 시대에 덕치와 인을 이루려는 지도자가 쉽게 있기는 어려웠다. 오히려 민심이라고 하는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해 대중을 기만하여 여론을 가져왔다.

중국의 2세기 말~3세기 말의 후한 말기 때가 배경인 삼국지에서 조조는 한 전투에 나선다. 30만 군사의 군량을 확보하기 어려워지자 군량 담당자 왕후에게 군량을 조금씩만 나누어주라고 명한다. 왕후는 병사들의 원망을 우려했지만 조조의 명대로 시행했고, 역시나 병사들의 불만이 커지며 조조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조조는 왕후를 불러내 그의 목을 자른 뒤에 병사들에게 그가 식량을 훔쳐서 군법대로 처형했다고 공표했다. 이에 병사들은 원망을 왕후에게 돌리게 되며 식량으로 인한 불만이 진정된다. 그리고는 사흘안에 성을 깨뜨리지 못하면 모조리 목을 치겠다는 조조의 선포에 힘을 얻어 전투하여 승리한다.
같은 시대에 다른 유형의 리더도 존재한다. 바로 유비다. 조조의 남진에 대피한 뒤 대항하여 다른 지역으로 향하는 유비에게 10만이나되는 백성들이 합류한다. 당장 군사행동을 하는 것이 더 중요했고, 여론이야 그 뒤에 만들어도 충분했을 것이다. 또 그것이 유비군에게는 더 유리했음에도 백성들을 팽개치지 않고 함께한다. 이 과정에서 위급한 유비는 가족들과 헤어져버린다. 그러자 조운이 혈혈단신으로 조조군을 격파하고 위기에 처한 유비의 가족들을 구출하기도 하고, 장비는 불과 20여기의 기병과 장판교에서 조조군과 대치하며 삼국지의 명장면을 만든다. 부하들이 이렇게 행했던 것은 유비가 끝까지 자신의 필요에 따라 백성들을 기망하지 않고 백성을 대한 덕분에 생긴 민심의 지지와 여기에 감회된 신하들의 동기부여 덕분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리더는 대중을 기만하여 여론을 조작하는 쉬운 방법을 선택할 것이다. 또 국가 등 집단을 통솔하는 리더들은 전쟁이나 재난 등의 상황에서 대내외적으로 어지러운 정세를 돌파하기 위한 전략으로 외부의 적을 만든다. 내부를 결집을 높이는 이 전략은 집단의 공동된 적을 만들기 위해서 다양한 선동을 한다. 조선인을 학살했던 관동대학살은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들이 폭동을 조장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풀었다.'라는 유언비어가 일반 대중은 물론 일부 언론을 통해 확산했고 조선인을 외부의 적으로 규정하여 학살하자는 여론이 형성된다. 이에 조선인을 비롯하여 사투리가 심한 일본인까지 닥치는대로 학살 당한다.

대중을 기만하는 선전전략은 현대의 디지털 공론장에서는 더 큰 효과를 발휘하기도 한다. 진실과 허구를 구분하기 힘들게하고, 거짓을 사실처럼 호도하여 권력자의 입맛대로 여론을 끌어가는 것이다. 

영화 <댓글부대> 포스터

영화 댓글부대에서는 손석구가 연기한 기자가 대기업 소속의 댓글부대의 조작으로 억울한 누명을 쓴다. 실제로는 2~3명에 불과한 댓글부대원들이 다수의 계정을 활용해서 여론을 조작한다. 소설 원작의 영화이기는 하지만 이야기의 토대를 이루는 대표적인 사건들은 현실에서 있던 일들을 엮은 것이다. 비교적 최근에는 댓글로 한 회사의 평판을 부정적으로 형성한 사건이 있었다.

MBC PD 수첩 기업살인과 댓글부대 편

PD수첩 ‘기업살인과 댓글부대 편’에서는 영유아 매트를 생산하며 업계 1위를 하던 크림하우스 프렌즈란 업체가 경쟁업체의 허위댓글로 큰 피해를 입은 사건이 있었다. 영유아 매트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교류할 수 있는 맘카페와 온라인 쇼핑몰 등 디지털 광장에서 A업체는 크림하우스 프렌즈의 제품에 조직적으로 악의적 댓글을 달았다. 또 친환경 인증 취소 민원을 제기하는데, 사실 큰 위해성이 없음에도 논란이 된 상황에 영향을 받은 한 기관에서 친환경 인증을 취소한다. 황당한 것은 인증을 취소한 해당 기관에서도 위해성은 없다고 말한다. 결국 크림하우스 프렌즈는 큰 타격을 입었고 공장이 멈췄다. 그런데도 A 업체 대표와 직원 1명은 각각 징역 1년 6개월과 1년만을 선고받았을 뿐이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여론을 검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광장이 ‘~하더라’라는 거짓 정보에 휘둘릴 수 있는 취약한 지점을 지녔지만 동시에 이를 보완할 수 있는 곳도 광장이다. 여론과 공론이 구별되는 지점은, ‘능동적인 토의와 논쟁을 거친 공동 의견’의 유무에 있다.
광장에서 도출된 공론이나 여론조사에서 조사된 여론은 둘 다 현실에서 발생한 어떤 주제에 대해 사람들이 갖는 생각, 의견, 경향 등을 나타낸다. 의견대립이나 갈등이 첨예하기도 하고, 새로운 대안이나 해결책이 제시되기도 한다. 
여론은 주로 언론, 소셜 미디어, 설문 조사 등을 통해 신속하게 형성되며 즉각적인 반응과 감정이 반영되기 쉽지만, 공론은 여러 이해관계자와 전문가들의 학습, 숙의 등 공론화를 통해 형성되며 다양한 관점과 깊이 있는 논의가 반영된다. 이러한 사실관계에 대한 판별은 사람들이 무분별한 여론에 휩싸이지 않고, 사안에 대해 바른 식견을 갖게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안에 대한 변별력이 모였을 때의 여론을 두고 공론이라고 칭할 수 있다. 일반 대중여론은 그에 비해서는 다소 감정적인, 품평적인 측면이 더 크다고 본다. 

그래서 공론장 운영에 있어서 사실관계에 대한 판별을 돕는 학습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 과정이 없다면 진실과는 관계없이, 대중의 정서에 의해 거짓에 기반한 우리의 의견이 형성될 수 있다. 우리는 늘 기억해야 한다. 선동은 쉽지만 진실은 어렵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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