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udovico Aug 19. 2024

광장의 공부는 끝이 없다

② 광장 이해하기

병원을 다닌 지 3개월쯤 되었는데도 차도가 없자 답답해하는 나에게 의사가 말했다. “환자분이 열심히 재활을 안해서 그런거죠.”

“저는 말씀하신대로 했는데, 전혀 효과가 없는건 문제가 있는거 아닌가요?” 최대한 예의를 갖춰 말했지만, 진료실에서 나온 뒤에도 계속 화가나는건 어쩔 수 없었다. 결국 지금보다 더 ‘열심히’, ‘제대로’ 재활을 하고 2개월 뒤, 약 20만원에 달하는 초음파를 다시 찍어보기로 했다.

작년부터 근골격계쪽에 문제가 생겼는데, 바쁘다보니 잘 알아보지 않고 집 근처에 있는 큰 대학병원에 찾아가 진료를 보고 재활 치료를 꾸준히 받았다. 한 번에 낫는게 아니라지만, 전혀 차도가 없는 상황에서 담당의사가 내게만 책임을 돌리듯 말한 것이다.

지금도 열받아요. 제 책임이라고요?

화는 우리에게 에너지다. 열이 받자 활활타오르는 분노로 인터넷을 뒤져서 관련한 질환의 전문의를 찾았다. 결국 다섯군데의 병원을 다니면서 의사들이 어떻게 진료하는지, 재활치료사는 어떻게 접근하는지를 비교 경험할 수 있었다. 동시에 질환 정보도 찾고 치료법도 학습하며 알게된 것은, 좀 엉뚱하지만 의사도 ‘공부를 계속하는 사람’과 ‘공부를 멈춘 사람’이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처음에 만났던 의사는 과거의 죽은 지식으로 진단을 하고 처방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의대를 다니거나 병원에서 전문의 과정에서 배웠던 지식이나 경험에 기반하고 있지 않을까 싶다. 결국에는 내가 원하는 '허준'과 같은 의사를 찾을 수 있었다. 그 분의 진단과 재활로 증상이 크게 호전되었고, 자세한 설명을 듣고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의사 선생님은 말해주었다. “환자분이 가진 질환으로 행동에 제약이 나타났는데요. 이 질환 자체는 직접 치료가 안되요. 대신 재활로 행동의 제약이 적어지도록 계속 애를 쓰셔야합니다.”
재활을 열심히하면 질환이 사라진다던데요...?”

“그건 아니구요. 질환 자체는 생겨날 때부터 언제 없어질 지 정해졌다고 보시면되요. 환자분 노력에 크게 달려있지 않아요. 물론 재활을 열심히 하셔야 활동범위가 넓어져서 일상생활에 큰 문제가 없을거에요”  
결론적으로는 재활을 해야하는 것에 변함이 없었지만 병에 대한 이해와 접근이 완전 달랐고 치료 과정에서 환자가 안심하고 또 힘을 얻어 계속 치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용기를 준 의사가 누구였는지는 명확했다. 게다가 재활 자체도 행동의 제약을 좁히기 위해 접근하다보니 단순 재활을 해오던 것을 넘어서 자세나 몸의 균형점 등을 고려하게 됐고, 질환도 크게 나아졌다.

고마워요 선생님, 당신은 제게 허준이에요 ㅠㅠ

물론 이해한다.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새로운 지식도 끊임없이 생성되므로 아무리 전문의라도 자신의 분야를 모두 알기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참된 의사라면 직접 연구하지 못하더라도 최신 연구 논문 등을 통해 계속 정보를 습득하는 과정을 거치는게 직업의 윤리 아닐까? 그런데 나의 첫 의사는 질병의 원인과 증상 그리고 여러 가지 변수를 잘 알지 못하니 현실에 적절한 진단을 내리지 못했고 그게 너무 큰 답답함의 지점이었다.

지금도 처음에 만난 의사를 생각하면 ‘공부만 하더니 저렇게 됐어!’라는 화가 나다가, 마지막에 만난 의사를 생각하면 ‘힘든 공부를 놓지 않고 하시니 저렇게 명의가 되었지’라는 존경이 올라온다.  


우리나라는 공부의 나라이다. 다만 경쟁구조 안에서 성적지향적, 결과중심적인 공부를 하며, 사회에서 권력을 가진 자리를 향해 나아가기 위해, 개인의 입신양면을 위한 공부를 주로한다. 그렇게 이뤄낸 성취로 권한을 가진 자리에 나아간다. 누구나 성장과정에서 경험해야 할 공적이고 사회적인 가치는 '공부로 성공한 다음에’ 해야하는 것으로 이야기한다. 그래서 공부로 성공한 사람에게서 주로 권위적이고 수직적인 경험을 하게되는게 아닐까?


그런데 광장에서의 공부 목적은 개인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행복해야 한다는 인식에 기반한다. 또 공동체의 여러 위기를 함께 극복하는 공적 지향성을 추구한다. 그러다보니 광장에서의 공부 는 세상과의 소통과정이기도 하다.
모든 영역에서도 마찬가지겠지만 겸손함도 필요하다. 자신이 통달했던 분야라도 계속 바뀌는 세상의 변화에 빗대어 어떤 정보값이 있는지를 확인하며 변화를 이어가야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겪어야한다. 이미 공부로 성공한 사람들은 상위에 존재하기 때문에, 대체로 자신의 방식을 다시 점검하고 수평적인 구조로 함께해야하는 광장의 방식이 힘들 수 밖에 없다.

대표적인 광장인 정치에서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은 공부를 통해 성공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대의민주주의에서 나를 대신해서 광장에 참여하는 정치인이 나보다 못난 사람이라면 아무도 표를 주지 않을테니, 어찌보면 당연한 것일수도 있겠다.

광장과 정치(자료 : 한국경제)

비교적 최근에 아주 높은 자리까지 오르고, 연로하여 은퇴를 앞둔 두 정치인이 있다. 그런데 곧 정치인생을 정리해야하는 두 명의 사람에 대해 세간의 평가는 상당히 다르다. A 정치인은 여전히 대중과 소통한다고 평가하고, B 정치인은 도무지 생각을 이해하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젊은 시절에는 두 사람 다 좋은 평가를 받았는데, 은퇴시기에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다.

왜그럴까? 공부의 차이 아닐까? A 정치인은 대중이 관심 있어하는 관련 현안을 학습하고 기사 댓글까지 꼼꼼하게 읽으며 여론을 살피지만, B 정치인은 주로 정치인이나 공직자들 등 인의 장막에 쌓여있고 대중을 알려는 노력을 크게 기울이지 않는다고 한다. B 정치인의 고루한 생각은 과거의 정보에만 얽혀 있는 것이고, A 정치인의 사리에 밝은 생각은 현재의 정보에 깨어있는 것이다.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자리에서 어떤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다보면, 자신이 틀리거나 잘못알고 있는 것에 대해 두려움이 크다. 물론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광장에서는 틀리다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 조차도 하나의 배움이기 때문이다.




“탄소중립 기본계획을 만드는 과정을 보고 함께 참여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여러가지를 배우고,  토론하며 개인적으로도 성장하는 시간이기도 했네요. 하나뿐인 지구를 위해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모였다는 것에 큰 의미를 두며 지쳐갔던 활동에 에너지를 받아 조금은 희망을 느끼고 재충전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최근에 운영을 마쳤던 한 지방자치단체에서 기후도민회의라는 시민회의에 참여했던 청년위원이 나누어준 이야기다.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도민들이 직접 점검하고 토론하여 실질적인 정책을 도출하는 공론장이었는데, 가장 많이 나누어준 소감이 ‘배운 것이 많았다’였다.

공론장의 논의주제와 내용을 학습하고 있는 시민위원들(자료 : 직접촬영)

공론장에 참여만 하더라도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다. 대체로 공론장에서 만난 사람들은 각자가 경험한 해당 현안에 관한 살아있는 경험을 나누어준다. 조직이나 지역 등이 처한 현안에 대해 서로 몰랐던 이슈나 해결방법,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자원들, 현안을 대하는 태도 등을 이야기하는데, 이런 경험은 쉽게 배울 수 없는 살아있는 것들이다.

또 공론장은 서로 다양한 사람들이 공통된 현안을 논의하기 때문에, 문제에 대한 정확한 진단, 사실관계 확인, 현재의 문제해결 방향, 관련 사례 등을 총체적으로 습득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이에 기반하여 논의하다보면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는 것이다.

많은 행정리더가 시민참여 공론장을 장려하고 있고, 회사 등에서도 실무자나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듣는 장을 마련하는게 어찌보면 시대의 당연한 장면이 되고 있다. 동시에 이를 가로막고 광장의 공론이 전문가 위주로 이뤄지는데 가장 크게 제시하는 이유가 참여자들의 비전문성이다.
하지만 비전문가더라도 각자가 경험한 이야기에서 어느 전문가도 찾아내기 힘든 이슈나 대안을 도출할 수 있다. 또 더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집단은 더 옳은 판단을 하게 돕고, 오류나 편견을 바로잡는 계기를 가질 수 있다. 사회전체 방향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배움을 통해 식견을 높인다면 나은 사회가 되지 않겠는가?


우리 사회는 자연스러운 광장이 상당 부분 사라져있다. 그래서 행정이나 기업조직 등에서 자원을 투자해서 만들어내는 광장이 더 많다. 그런데 이러한 광장들의 개최를 반대하는 가장 큰 요소가 ‘성공’에 대한 바램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 조차도 늘 성공을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광장에서의 공론이 더 많은 시도와 실패가 함께 있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그 자체가 중요한 학습이 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에서는 회사를 떠나는 직원을 대상으로 ‘부검 메일’을 작성하게한다고 한다. 퇴사하는 입장에서 그런 번거로움을 거쳐야하나 싶기도 하지만, 직원의 76%는 이 제도에 긍정적이라고 한다. 퇴사하는 직원이 초안을 작성하면 상사와 인사담당자가 논의해 부검 메일을 완성하는 구조다. 그리고 메일에는 퇴사자가 작성한 ‘왜 떠나는지, 회사에서 배운게 무엇인지, 회사에게 아쉬운 점은 무엇인지 등’이  필수적으로 담긴다고 한다. 넷플릭스는 이처럼 긍정, 부정을 포함하는 모든 경험을 알아내어 그것을 조직운영에 주요한 학습원리로 삼고 있다.  

4L 회고 방법론이라는 것도 있다. 나는 부족했던 것 자리에 안좋았던 것을 직접 묻곤한다. (자료 : boaramix)


이처럼 우리도 광장에서의 공론의 장을 계속 운영하기 위해서는 실패의 경험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그 경험을 축적하여 조직이나 지역사회 등에서 중요한 연료로 사용할 수 있다. 우리의 시도 자체는 성공이든 실패든 결과를 만들어낸다. 그 내용에 너무 흔들리지말고 점검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해 성찰해보자. 광장의 공부는 끝이 없다.


이전 05화 선동은 쉽지만 진실은 어렵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