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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udovico Sep 08. 2024

우리집에도 광장이 필요해(1)

③광장 채우기

다른 사람들은 삶을 풍요롭게 하는 작품들, 소설이나 영화 그리고 드라마를 볼 때 뭘 기준으로 삼는지 궁금하다. 나는 서사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결말까지 쭉 나아가는 데 전체 이야기가 주는 매력이 없으면 아무리 유명한 인사들이 만들어낸 작품이라도 크게 재미를 느끼지 못한다. 동시에 캐릭터에 영향도 많이 받는다. 등장인물의 매력이 그 작품을 보도록 선택하는데 많은 힘을 갖는다는 뜻이다. 특히나 주인공에게 고난을 주, 험로를 걷게 하며, 이를 헤쳐가는데 계속 긴장감을 주는 악역의 존재가 매력적일 때, 정말 화를 내기도 하고, 조마조마 혹은 답답해하면서 작품에 몰입할 수 있어서 좋다. 

내 뇌리에 너무나 강렬한 악역으로 남은 두 역할이 있다. 재밌게도 이 악역을 맡은 배우는 연기자 김영철 씨인데, 바로 드라마 태조 왕건에서 궁예와 영화 달콤한 인생에서 조직 보스 강사장이다.

두 사람이 악역의 최고점에 올랐을 때 모습을 아주 간략히 살펴보면, 왕건에서 궁예는 '저자의 머릿속에는 마군이가 가득하다. 그 마군이를 때려죽여라.'라는, 타인의 머릿속을 알 수 있다는 관심법으로 신하들을 때려죽였고, 달콤한 인생에서 강사장은 자신을 믿고 따르는 김선우(이병헌)를 죽이려다 실패하고, '왜 그랬냐고' 묻는 선우에'넌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어'고 말한다. 사소하면서도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자신에게 헌신하고, 능력 있던 부하를 내친 것이다.

궁예와 강사장의 극 중 모습. 궁예의 경우는 영화 홍보를 위한 짤 이미지다. (자료 : 익스트림 무비와 달콤한 인생)

악역들의 매력은 처음부터 이런 나쁜 놈들이지 않았던 게 포인트 같다. 궁예는 미륵이라는 구원자로서 민중에게 나타났지만 권력을 가지며 점차 변해갔고, 강사장도 선우가 저렇게까지 따랐던 것을 보면, 저 자리에 오르기까지 능력과 인간적인 매력이 있었겠지만, 결국 애인의 사랑을 뺏길 것 같다는 낮은 자존감이 그를 치사하고 못나게 바꾼다.

악역들의 또하나의 매력은, 어쩌면 우리가 발을 한 번 잘못 디뎠다면, 우리도 저렇게 될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마음이 들기 때문인 것 같다. 각각의 작품에서 두 사람의 가장 큰 문제를 생각해 봤는데, 주변의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있어서, 내면에 진실과 실제 표현 방식의 일치성이 떨어진다게 가장 큰 이슈 같았다.

궁예와 강사장은 권력자였지만, 어떤 좌절과 실망감에 빠진 나약한 순간을 갖게 된다. 그때, 그것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소통했다면 될 문제였겠지만, 그들은 높은 자리에 올라와 있었기에,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신이 틀렸을 것이라는 가능성의 괴로움을 외면하고, 폭력이라는 단순하지만 파괴적인 방법으로 아픈 감정을 소통한다.


심리치료에서 특히 가족치료의 선구자라고 불리는 '버지니아 사티어(Virginia Satir)'는 개인의 성장에 있어, 의사소통의 방식이 자존감에 큰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내면에 충분한 힘이 있는 사람은 자기(self)를 표현하는 게 크게 어렵지 않아 내면과 표현이 일치하는 의사소통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하는 이들은 자기를 표현하는 게 어렵고 하더라도 적절하지 못한 방법을 사용한다. 즉 내면과 표현이 불일치하는 의사소통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예컨대 우리의 강사장이 스스로 느낀 모욕감을 두고, 대화도 해보지 않고 아까운 부하를 바로 죽이려 한다거나, 궁예가  여러 감정적인 상처를 겪고, 피해망상에 빠져 그 아픔을 관심법이라는 일방적인 방식으로 소통한 것은, 자신의 내면을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하지 못하고, 어떤 가면을 통한 불일치로 소통하려 한 것이다.

두 사람 외에도, 일상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우리의 리더들 중에도, '괜찮아, 다음부터는 잘해줘'라고 쿨하게 얘기했던 상사가 뒤에서는 다른 직원들에게 뒤끝 있는 분노로 험담을 시전 하는 경우도 이런 불일치적인 의사소통이라고 볼 수 있다.


같은 연기자라는 것 외에는 도무지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이 문제적 인물들이 비슷하게 보이는 이 불일치하는 의사소통의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태어난 가정에서 받은 트라우마적인 소통의 경험이지 않을까? 그들은 가정에서 소통의 방식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가족과의 꼬인 초기의 소통 경험이, 이렇게 복잡한 뒤끝을 지닌 사람으로 만든 것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영화 혹은 소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도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주인공 문유정(이나영)과 정윤수(강동원)는 서로 전혀 다른 어린 시절을 보냈다. 문유정의 가족은 상류층이고, 정윤수의 가족은 가난에 허덕인다. 그렇지만 두 사람의 공통점은 바로 가족이라는 광장에서 상처와 트라우마를 겪어, 사람들과 교류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

문유정은 15살 때 사촌오빠에게 강간을 당했지만, 가족들, 특히 엄마는 딸을 위로하고, 가해자에게 분노하여 처벌하는 것이 아닌, 딸의 처신을 탓하며 상처를 준다. 정윤수는 술을 마시고 처자식을 때리는 아버지와, 이를 피해 자식들을 버리고 집에서 도망친 어머니를 두었다. 한 명뿐인 동생은 결국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고, 이후에 정윤수는 살아남기 위한 방법으로 여러 가지 비행을 저지르다 범죄자까지 되어 (반전은 있지만) 결국 살인을 저질러 사형수가 된다.

두 사람은 우리 삶에서 첫 번째 광장인 가족으로부터 사람들과 잘 소통하고 교류하며 관계를 맺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그리고 이는 그들의 삶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두 사람이 변화된 것은, 서로의 존재를 통해, 새로운 가족으로서 교류하고 소통하면서 이루어진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맞이하는 광장은 바로 가족이다.


어느 사람이든지 생애 처음으로 겪게 되는 '행운'은 바로 어느 가정에서 태어나느는지, 누구에게 양육되는지에 따라 결정된다. 이건 경제적으로 단지 어떤 수저를 물고 태어나느냐를 넘어선다. 정말 가난하더라도, 혹은 엄청난 부자더라도, 태어난 생명체와 자라나는 가능성들과 어떻게 관계 맺고 대화하느냐가 '행운'의 질을 결정짓는다.

이제 곧 있으면 딸이 첫 돌을 맞는다. 그런 딸을 돌볼 때, 엄마의 도움을 많이 받고는 한다. 사람들은 태어난 지 3년 동안의 시기에 겪은 경험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지만, 대부분은 이때를 기억하지 못한다. 헌데 나는 우리 엄마가 내 딸을 대하는 것을 보면서, 나의 생애 초기 3년이 어땠는지를 알 수 있었다.

스스로 그 무엇도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인 아기일 때 나의 부모는 나를 어떻게 대해주었는가? 이 질문에, '사랑과 정성으로 대해 주었네'라는 답을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운인지 모르겠다. 세상의 모든 아이는 가족과의 교류와 소통에서 생애 모든 희로애락의 시작점을 얻는다. 그리고 그 감정은 그들이 살아가는 세상에서의 광장으로 이어진다.

그래서일까? 고전이라 부르는 많은 명작 소설들은 가족, 특히 양육자와의 관계를 주제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는 도무지 존경할 수 없는 아버지와 세명(혹은 네 명)의 아들들과의 복잡한 갈등과 관계가 주요한 이야기인데, 결국 아버지의 부도덕함은 아들들의 내면에 깊은 상처가 되어 파멸적인 결과를 겪게 한다. 주인공인 알료샤는 조시마 장로라는 성직자를 통해, 피가 섞이지 않았지만 이상적인 아버지 상과 그를 통한 신앙의 힘으로 이 트라우마를 극복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가계도.. 아직 안 읽어보신 분은 유심히 보지 않으시길.. (스포가 있거든요)
 '존 스타인벡'의 <에덴의 동쪽>은 악인인 어머니와 어떻게든 가정을 건사하려는 아버지, 그리고 쌍둥이 두 아들이 겪는 내면의 폭풍을 주요한 내용으로 다룬다. 어머니가 그토록 악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형제는 저마다 큰 뒤틀림을 겪는데, 이 과정과 결과에서 쌍둥이들의 선택이 선과 악에 관한 자유의지를 생각하게 한다.
창세기의 꿈쟁이 요셉을 모티브로 '토마스만'이 창작한 <요셉과 그 형제들>은 한 명의 아들을 편애하는 아버지로부터 발생하는 이야기를 다룬다. 권력을 가진 아버지로부터 만들어진 가정 내 기울어진 교류의 광장은,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착각하게 하는 자기애적 성격장애를 가진 아들과 애정결핍으로 살인과 폭력을 자행하는 아들들을 만들어낸다. 긴 고통의 시간이 이들을 물들이지만, 결말은 해피엔딩이다.
우리나라에 정식 번역된 요셉과 그 형제들. 토마스만이 13년간이나 썼다고. 우리나라 출판사와 번역가들 만세입니다!!
'A.J. 크로닌'의 <천국의 열쇠>나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는 하루아침에 찾아온 부모님의 죽음으로 삶이 송두리째 바뀌어버리는 주인공들이 나온다. 그들에게 가장 큰 아픔은 바로 부모로부터 경험되지 못하는 소통과 교류의 결핍이다.
'톨스토이'가 쓴 <안나 카레니나>는 단순히 양육자와의 관계를 넘어서, 친지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되어 서사를 풀어간다. 소설은 소통이 원활하고 서로의 감정을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는 관계에서는 상대적으로 안정된 결말을 맞는 반면, 소통이 부족하거나 감정이 왜곡된 관계에서는 비극이 발생한다. 톨스토이는 가족과 인간관계에서 열린 대화와 상호이해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 작품을 통해 자세하게 보여준다.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인 '행복한 가정은 모두 비슷하게 닮았지만, 불행한 가정은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다'는 잘 알려져 있다. 소설에서 주요하게 다뤄지는 관계들과 그들의 교류와 결말은 다음을 참고해 보자.

-안나 카레니나와 카레닌 : 안나와 남편의 관계는 교류와 소통의 부제로 점철된다. 남편인 카레닌은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체면을 최우선으로 중요시하며 감정 표현을 자제하고 아내와의 대화에서도 감정을 거의 드러내지 않고, 교류에 서툴다. 반면, 안나는 감정적이며 사랑을 강하게 필요로 하고 느끼고자 하는 사람이다. 부부 사이에 대화나 소통의 광장이 부재했기에, 안나는 필요한 것을 브론스키라는 남자에게서 찾는다.

-안나 카레니나와 브론스키 : 이들은 격정적인 사랑에 빠지지만, 결국 불륜이라는 잘못된 관계의 압박이 견디기 힘들다. 게다가 서로 갈등을 잘 해결하지 못하고 불신이 쌓이면서, 안나는 브론스키에게도 원하던 것을 얻지 못한다. 결국 안나는 열차에 뛰어들어 생을 마감한다.

-키티와 레빈 : 안나의 오빠인 스티바의 처제인 키티는 원래 브론스키를 사모했다. 그렇지만 여러 고민 끝에 브론스키가 아닌 레빈을 자신의 배우자로 정한다. 키티와 레빈 두 사람도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서로 오해를 한다. 특히 레빈은 불안이나 의심과 같은 감정을 느끼지만, 이를 키티와 진솔하게 소통한다. 결국 어려웠던 시작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안정된 가정으로 나아가는 관계의 기반을 만들어낸다.

-스티바와 돌리 : 두 사람은 부부다. 안나의 오빠인 스티바는 가정교사와 바람을 피우는 등 무책임한 사람이지만, 돌리는 가족을 지키고 아이들을 잘 양육하기 위해 남편을 용서하려 한다. 두 사람은 대화를 하려 하지만, 이미 만들어진 상처는 돌리로 하여금 스티바에게 이전처럼 같은 관계로 나아가는데 벽을 만든다.



우리의 일상에는 다양한 광장이 펼쳐지고 있다. 내가 지금까지 경험했던 광장에서 만난 사람들 중, 잘 소통하는 사람들은 대화에 열려있고, 상대방을 존중하며, 갈등 시에도 논리만 내세우기보다 먼저 공감하고 연대하며 설득하고는 했다. 나는 그들에게 이런 역량을 어디서 배웠냐고 묻고는 한다. 많은 경우는 아니지만, 솔직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부모나 조부모로부터 긍정적인 교류와 소통의 경험을 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양육자들이 자녀들에게 자주 하는 말의 배경에는 '명령·지시·훈계'의 가치가 더 많이 담겨있다. 물론 무조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나보다 어리고, 잘 모르거나, 모를 거라 생각하는 자녀에게 의견을 묻거나 그 결정을 따라는 건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렇지만 수직적인 소통의 방식을 함양해온 많은 사람들로 인해서 발생하는 폐해는 사회 곳곳에서 활발하게 펼쳐져야하는 광장의 경험을 부정적으로 만든다. 

가족 광장 안에서 경험된 교류와 소통의 경험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나의 기본값이 된다. 그렇지만 이것이 곧 결과값은 아니다. 사람마다 각고의 노력이라는 새로운 입력값을 통해 긍정적인 결과값을 만들어낼 수 있다. 동시에 기본값보다 더 나빠진 결과값으로도 이어질 수 있으니, 선택은 각자의 몫이다.



- 우리집에도 광장이 필요해(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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