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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Oct 22. 2018

30대가 빨간색을 기억하는 법

    밀레니엄 세대들에게 '빨간색' 이란 어떤 의미일까. 아마 '깨물면 점점 녹아든 스트로베리 그 맛' 이 가장 익숙할 것 같다. 방금 한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독자가 있다면, 당신은 시대가 낳은 '아싸' 일 확률이 높다. '아싸'가 무슨 뜻인지도 모른다면,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힘들지?' 라는 심심한 위로의 말부터 전한다.


강사시절 가르쳤던 고등학생 제자에게 받은 10대 친구들끼리의 카톡내용


    '깨물면 점점 녹아든 스트로베리 그 맛' 은 레드벨벳 '빨간 맛'의 노래가사다. 35살 삼촌의 마음으로 나도 레드벨벳을 좋아한다. 그 중 특히 좋아하는 멤버 하나를 꼭 집어 말하라면, 다소 징그러워 보일 수 있으므로 생략하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나도 레드벨벳을 좋아하는 삼촌팬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단 한번도 '빨간색' 과 레드벨벳을 연결시켜보진 못했다. 사실은 제목도 모르고 흥얼거렸던 아재성향의 노래듣기신공이 발현된 까닭도 있겠지만, 84년 갑자년생 35살 아재에게 빨간색은 확실히 레드벨벳의 것이 아니다.


    돌아보면 내가 빨간색을 가장 강하게 인식했던 때는 초등학생 때였다. 엄밀히 따지면, 당시는 국민학생이었는데 나는 초등학교와 국민학교를 함께 다닌 세대다. 아무튼 초등학교 3-4학년 무렵이었을 때, 우리나라에는 비디오 보급율이 꽤나 높았다. 화려한 컬러TV와 틀면 나오는 비디오는 많은 학생들을 TV 앞으로 모여들게 했다. 당시엔 IP TV는 커녕 케이블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던 시대라, 무지개 색깔의 화면조정시간은 인생에서 가장 큰 지루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비디오가 집에 있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정규방송의 화면조정시간 대신 플레이 버튼 하나면 우리가 원하는 콘텐츠들을 마음껏 볼 수 있었다. 그 중 초등학교 남자아이들에게는 가장 강력한 친구가 있었으니 바로 후레시맨, 바이오맨, 마스크맨 등의 전대물이었다. 꼽사리로 스필반까지 끼워주자. 일본에는 더 알려진 전대물들이 있겠지만, 당시 우리나라에 알려진 전대물은 저 정도가 다였다. 나도 그 전대물빠 중에 하나였는데, 전대물의 대장은 항상 '레드' 였다. '레드후레시', '레드원', '레드마스크'. 그 외의 동료들은 조금씩 색깔이 다른 경우도 있었는데, 대장의 경우는 모두 예외없이 '레드'였다.


이것이 역대 레드들의 포스


https://youtu.be/0ffUH2I6Eds

역대 레드 동창회(?), 오래된 영상이라 화질은 구리다


    참 열광적이었다. 아직도 후레시맨과 바이오맨, 마스크맨의 주제곡이 지금도 부를 수 있을 정도다. 레드마스크가 변신할 때 펼치는 특유의 핸드사인도 여전히 기억한다. 옐로 후레시의 목표물 서치 후 발사되는 무지갯빛 롤링발칸이 지금에는 정말 후진 CG 였다는 걸 이제서야 깨닫는다. 하지만 당시에는 정말 그런 과학기술이 존재하는 줄 알았다. 바이오맨이 쓰던 헬맷은 또 왜 그리 멋지던지!


    전대물의 전투패턴은 다 똑같다. 참 단순했다. 괴물과 싸운다. 필살기로 괴물을 죽인다. 그 괴물이 거대한 괴수로 부활한다. 그러면 전대로봇이 등장하고 로봇이 필살기로 박살낸다. 이 단순한 플롯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을 열광시킨 이유는 현실세계에서 이 로봇들은 장난감으로 항상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대로봇을 가지고 있는 친구가 있다면 그 친구는 영웅이 되기도 했다. 화면에서나 보던 합체장면을 직접 조립할 수 있다는 것은 당시 아이들에게 너무나 크나큰 로망이었기 때문이다. 


    남자아이들이 빨간색을 전대물의 레드로 기억한다면, 여자아이들은 아마 '빨간머리 앤'을 기억할 것이다. '주근깨 빼빼마른' 빨간 머리 앤의 주제곡 또한 가히 중독적이어서 우리 세대라면 누구나 다 흥얼 거릴 수 있을 정도다. 전대물이 때려부시고 지구를 구하는 플롯이었다면, 빨간머리앤은 여자아이들의 감수성에 조금 더 가까웠다. 어린아이들의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참 따뜻한 드라마였다. 요즘은 빨간 머리앤을 재해석한 콘텐츠들도 있는데, 아마 이런 추억이 서려 있어서 일 것이다. 그 외에도 빨간망토 차차도 꼽사리로 넣어주자. 


주근깨와 양갈래로 땋은 머리가 참 인상적이다


    남자와 여자들의 빨간색에 대한 기억은 2002년에 와서야 통합된다. 월드컵, 붉은 악마, 당시엔 전국민이 '빨간색' 에 열광했다. 나는 당시 저주받은 고3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문법에도 맞지 않는 'Be the Reds' 티셔츠를 입고 경기 때만 되면 악마처럼 뛰어다니고 소리 질렀다. 덕분에 당시 고3 남학생들은 역대 가장 저주받은 고3이 되었다. 전국민이 하나가 됐던 '빨간색'을 우리는 너무나 생생히 기억한다. 우리가 살면서 그렇게 하나가 되었던 적이 있었을까. 온 도시가 빨간색으로 물들 던 광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내가 빨간색을 기억하는 법, 전대물, 빨간머리앤, 붉은 악마.

    

당신에게 '빨간색'은 어떤 기억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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