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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성현 Oct 22. 2018

오전반과 오후반 아시는 분?

    나는 대구에서 태어났다. 동대구역이 가까운 파티마 병원에서 태어났다. 파티마 병원 옆 제일맨션이 외갓집이었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은 서구의 평리동이라는 곳에서 대부분을 보냈다. 서도초등학교를 나왔고, 당시 그 곳은 탁구부가 꽤 유명했다. 


    91년 초등학교 입학 당시는 서도초등학교가 아니라 서도국민학교였다. 91년에 1학년, 92년에 2학년, '9'자를 빼버리면 끝자리와 내 학년수는 일치했기에, 나는 내 어린 시절의 년도를 기억하는데 남들보다 조금 유리했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아니 국민학교, 뭐 어쨌든 학교는 학생수가 어마어마했다. 아마 그 당시 전국의 다른 초등학교들도 내가 다니던 학교와 비슷한 처지의 학교가 많았으리라 추측된다. 감당할 수 없는 학생수를 감당해야 했으므로, 학교는 오전반과 오후반을 나눠서 수업했다. 


    요즘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오전반/오후반 시스템은 학생들뿐만 아니라 학부모들에게도 참 많은 혼란을 주었다. 아마 선생님들도 고역이었을 것이다. 당시에는 한 반의 학생수가 60명에 육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많은 학생을 감당하지 못해 반을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누었다. 내가 수업을 들었던 1-6반은 엄밀히 따지면, 120명 가까운 학생들이 수업을 듣던 반이었다. 그런 반이 12반까지 있었으니, 한 학년엔 적어도 1,400명에 가까운 학생들이 학교를 다닌 셈이다. 



    오전/오후반 덕분에 나는 부모님께 참 많이도 혼났다. 당시 부모님은 맞벌이를 하셨는데, 내 등교시간보다 그들의 출근시간은 항상 빨랐다. 그래서 항상 내가 집에 문을 잠그고 등교를 했다. 문제는 가끔 나조차도 오전/오후가 헷갈릴 때가 있었다는 것이다. 오전반인데도 오후반인 줄 알고 학교에 나가지 않았던 적이 꽤 많았다. 더구나 네모나고 딱딱한 각진 학교건물은 굉장히 등교하기 싫게 생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늦게라도 등교해 지각을 했으면 될 일이지만, 나는 어린 마음에 아예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당연히 학교에서는 엄마 직장으로 전화를 했을 것이고, 엄마는 집으로 전화를 했다. 나는 그 전화조차 받지 않고 학교를 나가지 않았다. 


    오전반일 때는 오후반이었다고 부모님께 거짓말을 하고 집에 바로 들어오지 않은 적도 많았다. 오락실, 친구네집을 돌아다녔다. 놀다보면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고, 해가 떨어져서야 집에 들어오면 부모님은 이미 난리가 난 상태였다. 당시엔 유괴사건이 많았을 때였고, 휴대전화도 없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부모님 입장에서는 온갖 안좋은 상상을 다했을 것이다. 


    내게 오전/오후반 시스템은 별로 좋은 추억이 아니다. 부모님이 내 학교스케쥴에 대해 안내를 받고, 알고 있다고 한들, 사회생활에 쫓기다보면 마음대로 잘 챙기지 못했으리라. 내가 그런 부모님의 공백을 틈타, 딱히 나쁜 쪽으로 엊나간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걱정'을 끼쳐드림으로써 의도치 않은 불효를 저지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땐 불효의 개념도 희미한, 기껏해봐야 초등학교 2-3학년 학생이었다. 



    내 세대들 중에 오전/오후반 시스템을 겪은 사람들이 있다면, 나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당시엔 맞벌이 가정도 늘고 있던 추세였고, 사회적인 시스템 자체가 그리 친아동적이진 않았다. 오전/오후반 스케쥴은 사실 아이들이 소화하기 힘든 시스템이었다. 지극히 행정편의주의적인 발상이었고, 아이들이 그것을 일일이 알아서 챙기기란 굉장히 낯선 개념이었다. 아이들에게 뿐만 아니라, 부모들에게도 육아제도라는 개념이 미미했던 시절이라 나의 부모님들처럼 많은 부모들이 이 시스템으로 가슴 졸였으리라 생각된다. 


    아이들의 안전은 '일정성' 에서 유지된다. 그래서 우리는 '규칙'을 가르치고 방학땐 끊임없이 '생활계획표'를 작성하라고 배운다. 하지만 정작 학교시스템은 매주마다 바뀌는 수업스케쥴에 아이들에게, 학부모들에게 혼란을 주었다. 


    다행스럽게도 요즘은 이런 일이 거의 없다. 오히려 공교육과 사교육 사이를 넘나들며, 일정하지만 더 빡빡한 시간을 요즘 아이들은 보내고 있다. 혼란스럽진 않으나, 힘들다. 그래도 내가 살았던 초등학교에서는 그나마 조금 여유로웠던 것 같다. 어느 시대나 다 일장일단은 있겠으나, 어렵던 초등학생 시절을 보냈던 나와 지금의 아이들을 보면 상황은 달라도 약간의 서글픔을 느낀다. 


    나의 오전/오후반은 부모님을 가장 먼저 생각나게 한다. 온 가족이 다 꼬여버린 스케쥴, 불가항력적인 시스템, 흉흉했던 사회, 그 안에서 철딱서니 없게 굴었던 한 자식. 


당신에게 오전/오후반은 어떤 기억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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