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때였다. 인천에서 전학 온 친구가 대구 시내에 영화를 보러가자며 친구들을 꼬셨다. 당시의 나는 매우 평범했던 학생이서 가족들과 시내를 가지 않는 이상 시내를 갈 일이 단 한번도 없었던 그런 학생이었다. 요즘이야 아이들끼리 이곳 저곳 몰려다니는 것이 아무렇지 않은 시대지만, 당시만 해도 친구들끼리 노는 문화는 동네부근이나 피씨방 정도가 고작이었다.
역시 서울말을 쓰는 친구라서 친구들끼리 시내갈 생각도 다한다는 참으로 순진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사춘기 시절이 다 그렇듯,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건 이른바 '찐따'가 되는 지름길이라 생각했던 나는 조심스럽게 엄마에게 허락을 받았다. 어른의 간섭없이 대중교통을 타고 처음으로 내가 가장 멀리 나가 본 첫경험이었다.
당시엔 예매시스템이 전무했던 시절이라, 영화관에서 직접 티켓팅을 했다. 시간이 많이 남아 친구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시내를 돌아다녔다. 부모님과 외출했다면 절대 가보지 못할 도시의 구석구석 장소들을 누볐다. 카페라는 것도 처음 경험했다. 기껏해야 내 인생에 투게더나 부라보콘이 다였던 내가 '파르페'가 있다는 사실도 그때 알았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형들이 줄창 담배를 태우는 광경을 조심스레 곁눈질로 바라보기도 했다. 지금이야 전면흡연금지이지만, 당시는 버스에서도 기차에서도 담배를 태우던 시절이라 가게 내의 흡연은 낯선 광경은 아니었다. 다만 너무나 대놓고 담배연기를 뿜어대는 형들의 눈을 피하는 일이 조금 버거웠다. 뒤늦게서야 안 사실이지만, 그 곳은 원래 청소년들이 담배를 피우러 가던 그런 카페였다.
우리가 예매해놓은 영화를 보러갔다. 만경관이라는 제법 중국집 이름 같은 영화관, 그 곳에서 '쉬리'를 봤다. 한석규, 최민식 주연의 최초의 한국형 블록버스터. 남북을 소재로 한 스파이, 첩보, 액션 영화. 처음으로 나 혼자서 영화를 보던 순간이었다. 오롯이 내 스스로 본 처음의 영화였다. 여자 공작원이 쫓기다 작은 알약을 먹으며 자폭하는 장면에선, 꽤나 큰 충격을 먹었다. 사지가 그대로 찢겼다. 영화관을 나온 뒤에도 그 장면만 머릿속에 떠올랐다. 지금 와서 다시 본 '쉬리'는 온갖 클리셰 덩어리가 가득한데다, 함축적 의미들을 금방 알아챌 수 있지만, 중학교 3학년이 처음으로 영화관에서 스스로 본 영화는 충격과 흥분, 호기심의 세계였다.
한번이 어렵지 두번은 어렵지 않다는 말은 절대 진리다. 그 뒤로 나는 자주 시내로 나섰다. 오히려 내가 친구들을 꼬셔서 나간 적도 많았다. 요즘은 스마트폰으로 뚝딱 검색하면 대중교통이 금방 나오지만, 그땐 버스정류장에 흔한 안내전광판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던 시절이었다. 버스 노선은 출퇴근에 익숙한 어른들만의 것이었고, 청소년들은 물어 물어 목적지를 가야했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나는 대중교통이 겁나지 않게 됐다. 복잡한 버스노선도 꿰뚫어 봤다. 요즘말로 치면 '아싸'에서 점점 '인싸'가 되어간 것이다. 스스로 뿌듯했던 듯 싶다. 그 경험으로 내 청소년 시절이 조금씩 바뀐 것 같다. '매트릭스' 도 나는 버스를 타고 친구들과 함께 영화관에서 보았고, 다른 여자학교 학생들과 어울리며 이성에도 눈을 뜨기 시작했다.
청소년 시절, 어른의 현실세계를 처음으로 마주하게 해준 그 것, 영화 '쉬리'. 물론 '쉬리'가 아니었더라도 물론 다른 영화가 내 주변인 시절을 차지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영화 '쉬리'를 보며 느꼈던 감정이나 내가 청소년에서 조금씩 한발씩 어른의 세계로 진입하며 느끼던 그 감정이 결코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발짝을 내딛을때마다, 나는 마치 신생아처럼 모든 걸 신기해했고, 모든 것이 생경했다. '쉬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블록버스터답게 내 인생도 터뜨려 버렸다.
'쉬리'가 유치뽕짝의 액션영화가 되어버린 지금, 나는 다시 한번 그때의 '쉬리'를 느껴보고 싶다.
영화 '쉬리', 처음으로 어른흉내를 낼 수 있게 용기를 준 첫 영화.
당신에게 영화 '쉬리' 는 어떤 기억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