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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Dec 12. 2020

P16 시간은 멈춰 깊어지고

 "과연 아무것도 할 수 없을까?"

  

  해 저물녘 아스팔트 위로 긴 그림자 드리우며 삼거리를 비껴지나 가는 자식들 이름 호명하며 저녁 밥상 앞으로 불러들이는 엄마의 저녁 일과로 하루가 마무리되었다. 학교 공부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가방 던져놓고 친구들을 불러내 저인망 그물로 마을을 깡그리 쓸다시피 훑어지나며 반나절을 놀던 해변에 아이들이 짓다 만 모래성이 속절없이 파도에 삼켜 사라져도 아이들은 쉽게 실망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그렇다. 체질적으로 실망보다 그날그날을 즐겁게 놀 수 있는 몸과 마음으로 아침을 맞으며 에너지를 다 쏟아내며 시나브로 자란다. 아이들의 세상은 날마다 새로운 창조적 놀이를 통해 ‘살아있는 시간'을 제대로 즐긴다. 내 막내 동생은 어른이 되고 아들이 생기니 어린 시절 뛰놀던 마을 골목이 가슴 절절하게 그립고 가고 싶다는 말을 했었다. 그건 자신이 성장해온 역사를 오감으로 느끼고 싶은 마음에서 흘러나오는 절절함이었던 것 같다.


   고등학교 때까지 살았던 우리 마을이 재개발로 인해 공장지대로 흡수되어 지금은 옛 간판만 남아있지만 1980년대 말까지 그곳은 이웃 공동체가 정을 나누던 사람 살만한 곳이었다. 마지막 집이 이사 가고 나자 인적이 사리진 마을은 드라마 세트장처럼 박재된 물건들로 채워진 황량한 장소가 되었지만 사람들이 혀놨던 온기는 쉽게 식지 않는 것 같았다.

  그곳을 지나던 버스에서 다본 집에 열린 다락방 창문 안 풍경 고스란히 외부에 노출되어도 그 창문 닫아줄 주인이 이젠 더 이상 집에 없다는 건 아름다운 풍경이 아니었다. 실물이 아무리 초라하고 못났어도 기억에 먹칠하고 싶지는 않은 거다. 그나마 집 골조가 앙상하게나마 흔적이 있을 때는 애틋한 시선으로 쳐다보기라도 했는데... 이젠 공장이 들어선 옛 마을터는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들어졌다.



   해거름 가로등 불이 켜지면 으레 집으로 들어가는 게 루틴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최근 코로나 거리두기 단계가 격상되자 단골 카페 출입도 금지되고 도서관은 대출과 반납만 가능하게 되니 시간이 거꾸로 흐르는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역으로 흐르는 시간이 생경하지 않은 이유는 낮과 밤의 경계가 분명히 구분됐던 시대 살았던 경험치가 있어서라고 본다.          


   전력난을 겪던 시절에는 낮 동안에 노동을 밤까지 연장하는 건 당연한 일이 아니었다. 밤은 쉼과 충전의 시간으로 보내야 하는데 세월이 갈수록 발전이라는 사회적 모토를 내세워 밤이 밤 될 수 있게 하는 여지를 인위적으로 막아온 게 사실이다. 밤을 낮처럼 환하게 밝히면 식물들도 불면증에 시달려 성장을 멈춘다고 하는데 사람에게 하루 24시간, 일 년 365일 불야성 같은 눈부신 밤은 선물이라 할 수 없는 거다. 


  그래서 12월 크리스마스 시즌 성탄 트리에 오색 전등불을 새벽이 오기까지 밝히는 계절이 돌아오면 왠지 이유 없이 기분이 들뜨면서도 안쓰러운 양가감정이 생긴다. 요즘처럼 코로나가 급속도로 확산되는 엄중한 시기에 공존의 아름다움을 자연으로부터 배울 수 있으면 좋겠다.  천천히 가면 다양한 사물들의 다채롭고 아름다움을 깊이 있게 관찰하게 되듯, 밤도 길어져 그 시간도 내게 돌아왔고 오밤중에 고성방가 지르는 인간들도 조용해졌으니 멈춰 선 지금은 깊어질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도 하다.


뭔가 혼자 애쓰고 발버둥 쳐도 일어날 수 없는 생소한 일들이 자꾸 생겨서 사람의 힘이 닿지 않는 것은 기다려서 얻을 수도 있을 거라는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다. 과거에 인간의 힘으로 시간을 정복해보려 했었던 회주의 러시아에서도 7일의 일주일 개념 바꿔보려고 십일 단위로 쉬게 했더니 오히려 사회적으로 일상에 부작용이 더 심해져 원래대로 7일 일주일로 돌려놨다고 한다.


   너무 복잡해 보이는 작금의 상황에 대해 나는 정상으로 돌아가는 방법을 배우는 중이라고 믿고 싶다. 그리고 무엇이 정상인가? 에 대한 정의부터 찾아서 개념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맘의 준비를 하다. 사실, 집콕하는 날수가 잦다 보니 사소한 일에도 짜증 섞인 말로 받아치는 횟수가 늘어나는 요즘. 이렇게 기간이 더 길어졌다가는 내 인격의 밑바닥이 사정없이 까발려질게 자명한 현실로 다가왔음을 인정하고 있다. 누구도 모를 일이 생길 수도 있지 않을까? 코로나 전후가 전혀 새로운 질서로 들어간다고 하듯, 한 개인으로서 나의 질서도 정서적으로 인격적으로 새롭게 구축되는 진행형 상황일 수 있다고 본다.


 # 얼마 전 저녁을 먹고 쉬는 중에 아파트 단지 사이로 울려 퍼지는 "찹쌀떡~~ 메밀묵~!" 외치는 소리에 천 원짜리 들고 뛰어나가고 싶었다.  찹쌀떡 장사의 외침은 2020년도 아파트가 밀집된 도시에서 부조화스럽게 들렸다. 하지만 그 장사치 소릴 처음 듣는 이들의 기억에는 1980년대의 그 추억과는 다른 풍경의 아파트와 코로나 뉴스와 마스크, 손소독제 등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거다.  


   이렇듯 시대적 상황과 풍경이 다름에도 "찹쌀떡"이란 매개체가 사람들 맘 안에서 기거하고 있던 따스함이란 정서를 일으킨다면,  지켜야 할 규칙이 강화되어 행동에 제약을 받고 멈춘다는 불편함에 답답한 이때에도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저력이 우리 안에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사랑도 처음보다 깊고 넓어지고 미움도 그 대상이 보이지 않는 날수에 따라 흐릿해져 감정도 시들해지듯, 멈춰 선 지금은 깊어질 때라고 생각하고 내 우물 그릇을 넓히고 깊게 파서 좀 단단하고 상황 때문에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강직한 사람으로 다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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