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배지에서 조희룡이 보여준 모습들
유배지에서의 조희룡
섬마을 임자도에서 예순의 조희룡을 기다리고 있던 것은 지금까지 그가 보금자리요 안식처요 즐거움으로 살아왔던 문인의 껍질을 온전히 벗겨내기에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바닷가 마을의 평범함 이었다. 조희룡에게 즐거움을 주었던 지식과 문화의 다채로움이 빠져나간 자리를 대신할만한 희락의 요소들은, 그보다 먼저 임자도로 유배 온 우석 선생과 벗이 되었다는 것과 파도와 함께 촤~하고 쏟아져 들어왔다 나가는 돌 줍는 섬마을 아이들의 소리, 그리고 신분은 낮아도 남다른 재주가 있는 마을 사람들의 소소한 풍경이었다. 그는 마치 대도시 높은 건물들 사이에서 흙 밟을 기회조차 없던 도시남 이었을지 모른다. 추사 김정희의 문하에 있으면서 청나라에서 수입된 지식과 문화를 접하고 쌓아가던 지식의 맛을 지우려고 입을 헹궈야 했음에도, 다가오는 변화의 바람에 저항하지 않고 그는 임자도의 풍경을 글과 그림에 담기 시작했다.
유연하게, 자연스럽게, 그리고 변화.
조희룡이 부서지거나 망가지지 않은 그 무엇에 대해 생각하며...
‘성찰. 자기반성’ 그리고 ‘애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