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강집》 15세기 후반 남효온의 선집. 평전
'추강집'은 15세기 조선 문인 남효온에 대한 평전으로 그가 기록한 시문을 근거로 그에 대해 알 수밖에 없습니다.
‘방외方外’와 ‘절의节义’ 두 개의 코드로 기억되다. 두 개의 코드는 하나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소릉 복위’ 상소. 그것으로 빚어진 결과가 ‘방외와 절의’의 삶으로 이어졌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성균관 유생들의 벽서시=
(대자보에는 이런 내용들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폐비 윤 씨 사사를 반대한다.
*무능한 성균관 교수(가르침)를 풍자한 시를 썼다.
*이 일로 유생들 전원이 투옥되고, 한 달간 국문을 당하였으나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다
남효온은 참담한 자신의 처지를 술과 유람으로 보냅니다. 폭음으로 병이 들면 단주하고, 다시 나아지면 술을 마시기를 반복하다 보니 친구들이 하나둘 그의 곁을 떠나갔습니다. 친구들은 죽거나, 낙향하고, 귀양을 가거나, 남효온을 기피하며 멀어져 갔습니다. 그리움과 외로움을 품은 채 추강은 전국을 유랑하다 만년에 방랑을 그치고 서울로 돌아와 벗들을 추억하며 경지재에서(그의 서재) 《추강냉화秋江冷话》와 《사우명행록 師友名行錄》을 집필합니다.
39세 짧은 생을 살다 간 남효온의 사후 21년이 되던 중종 8년(1513년)에 신원되었고, 그로부터 270년이 지나 정조 대에 생육신과 함께 추증됩니다. 조선 조정에서 남효온의 사후 3백 년에 걸쳐 그의 신원을 회복시키고 벼슬을 하사했던 데는 신하의 선악을 구별하여 후대에 권장과 징계를 전하기 위한 목적이었습니다.
=소릉 복위=
추강의 나이 25세였던, 1478년 성종 9년 4월 15일에 그가 올린 '소릉 복위 상소'이다.
소릉은 단종의 모친(문종의 비. 현덕왕후)의 묘를 복위하는 것과 8개 조를 함께 올린다.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등되고, 모친은 서인으로 강등되면서 종묘와 능묘에서 내쳐졌다.
성종 9년 4월 1일 하늘에서 흙비가 내리는 상황에서 성종이 구언한다는 전지에 따라 올린 글이다.
그의 상소는 <성종실록> 9년 4월 15일 기록으로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상소를 계기로 훈구 대신들의 미움을 받아 벼슬길은 막혔고, 세상으로부터 그를 '미친 선비'라고 손가락질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