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 한 장에 몇백 년 세월을 실어 넘긴다면 다산의 《목민심서》가 안고 있는 세월의 무게가 가볍지 않다. '산이 높으면 골짜기가 깊다'는말은 그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들은 크고 작은 능선을 이룬 거대한 산맥이 되어 이미 그곳을 등정한 이들이 적지 않고, 앞으로도 행낭을 꾸려 다산을 향해 올라갈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추측해본다.
다산의 《목민심서》를 읽던 중에 눈앞에서 돌부리처럼 튀어나와 툭툭 걸리는 한문과 고어들과의 만남은 피할 수 없는 운명이거니 생각하면서 읽었다. 운명으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객주에서 쉬어 가듯 중간중간 숨 고르려 멈짓했던 시간도 꽤 보냈다. 게다가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옛 고을명과 관직, 도량형과 일상생활 도구들의 명칭을 사전에서 찾으며 남의 나라 책을 읽는 듯 낯설고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겨우 겨우 '목민심서'를 읽었지만 작품을 읽고 숙려 기간이 짧은 관계로 풋풋한 소감이 아니라 숙성이 덜 된 떫은맛 나는 글을 정리하게 되었다.
'고전 읽기' 두 번째 작품으로 '목민심서'를 선택했다. 다산연구회가 그간의 수고를 참아낼 수 있었던 '다산에 대한 애정'으로 다산 사상과 작품 연구가 이어져왔고, 현대 독자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2019년 '정선/목민심서' 개정판을 새롭게 내놓았으니, 우둔한 독자인 나에게는 이 책이 다산의 사상과 인간을 바라보는 그의 관점, 18세기 조선 수령에게 요구되는 도덕적 기준과 업무 처리를 위한 자세에서 다산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안내서가 되었다.
이 책은 총 12부로 되어 있고 각 편에 6조목을 두어 모두 72조로 구성되어 있다. ‘목민’이라는 개념이 ‘목민심서’의 키워드인데, 다산은 그의 <자서(自序)>에서 '목민'이란 백성을 부양하는 것이라고 썼다. 그는 '목민심서'를 완성하고 유배에서 풀려났으나 백성을 부양할 공적 지위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몸소 목민의 내용을 실행할 수 없었기에 '심서(心书마음에 쓴 책)'라는 제목을 붙였다'라고 자신의 마음을 밝혔다.
사람은 자기의 나무를 가지고 있다.
다산이 집필한 500여 권의 저서들 각각은 그가 심고 키워낸 나무들이다. 그래서 다산의 작품을 읽는 건 작은 씨앗을 찾는 과정이고 그것을 내 정신에 식수할 기회를 가지는 것이 아닌가 싶다.
'목민심서'에서 보여주는 다산의 정신은 '인간은 본래 선하다.'는 데서 출발했다. 그 본성이 환경과 조건의 영향을 받아 해를 입는 것과 같이, 흉년과 약탈로 백성들의 생활이 핍절해져 유리걸식하고 흉포해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의 생활을 돌봐야 할 책임이 지방 수령에게 있으니, 행정 및 사법 집행의 권한을 지닌 수령의 마음가짐과 역량을 민생 안정에 두고 임하라고얘기한다.
#1 백성을 부양하는 '목민관의 직무는 '사람이 사람을 위해 봉사하는 것'이니, 봉사자의 행위는 도덕적 '인간' 이해의 바탕 위에서 행해야 한다. '목민심서'에서 지방관의 능력은 사실 '사람을 우선'이라는 마음에서 나와야 한다는 의미로 이해했다. 그 마음은 지금의 공직에 있는 사람들의 자세가 되어야 하는데, 한국 사회에서는 연예인을 '공인'이라고 지칭하는 것으로 보면, 정부의 녹을 먹는 사람만 공인이 아니라 그 범위가 넓다. 대상범위를 제한해서 '공인은 그렇게 해야 하고, 그 외 다른 사람은 안 해도 된다.'는 이중 잣대로 나눌 이유가 사라졌다고 봐도 무방하다.
구제 물자 준비 과정에서 기부에 대한 정의와 자세, 구제에 대한 세부계획과 시행방법, 그리고 민생을 보충하는 대책을 기록한 제11부 <진황> 6조 마무리에서 이런 말을 한다. "사람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세 가지가 있다. 곧 백성이요, 하늘이요, 자기 마음이다." 구제하는 마음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점검하여 거짓 없이 진실된 마음으로 구제하라는 것이다. 나의 언행이 어떤 것인지가 타인의 반응으로 나타난다고 하면, 함부로 자기를 자랑하고 칭찬받으려고 애쓰는 일을 부끄러워하지 않을까.
#2 사람은 자신이 불완전한 주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완전해지려고 애쓴다는 것은 지금보다 나은 사람으로 '변화'되기를바라기 때문일 것이다. 새로운 것을 지향할 만큼 현실이 상당히 붕괴된 상태였을 것이고, 기존의 사상 토대로는 당시 조선 사회에 미래가 없다는 비판과 더불어 개혁의 필요가 간절했음을 '변화'에 초점을 둘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 단면을 보여주는 모습이 유배지 전라도 강진에서 집필한 다산의 '목민심서'를 당시 '지방 수령'을 독자로 설정하고, 그들이 이 책의 내용을 따라 정사를 행하고 민생을 구제하기를 바랐던 데서 찾을 수 있다. 비록 유교적 정치철학이 유명무실해진 조선 후기의 상황에서 그의 글이 각주구검(刻舟求剑)처럼 비쳤을지라도. 다산의 '목민심서'는 조선 후기 지방관들의 필독서가 되었다.
유배지에서 쓴 '목민심서'는 제목이 보여주는 것처럼, 다산 정약용 선생께서 관리로서 실천하고 싶었던 내용들로 가득하다. 비록 다산이 목민을 마음에만 새겼지만, 오히려 그를 통해 공동체적 사람들이 있어야 함을 발견한다. 농경 시대에 공동체적 삶이 품앗이, 두레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면, 씨 뿌리는 사람, 수확하는 사람, 함께 나누는 사람... 그리고 마을 공동체가 보여준 각자 할 수 있는 일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다산 선생은 '씨 뿌리는 농부' 역할을 다 감당하고 가신 게 아니었나 생각한다. 자신의 사상을 뿌리고 기록으로 남기고 권면하는 작업을 위해 배움과 집필에 지치지 않았던 모습이 바로 '씨 뿌리는 농부'의 모습이다.
낮은 것도, 높은 것도 다산(多山)이다.
'다산(茶山) is 다산(多山)'은 언어유희로꾸며본 것이지만'목민심서'가 다산(茶山)의 저서들 중 한 권이라는 점에서 그의 업적은 다산(多山 많은 산)을 이루었다고 표현해도 될 것 같다. 언덕을 넘을 때도 등산객이 산행을 위해 내딛는 첫걸음은 언제나 산 아래에서부터 출발해 중턱을 지나 정상에 도착한다.지형 때문에 호흡이 달라져도 산행은 아래부터 위로 오르며 역으로 걷는 건 하산하는 길 뿐이다. 그래서 나는 목차에 따라 구조와 내용을 살피면서 읽으려고 했다.
#3 시대마다 요구하는 직무능력이 다르다. 동시대에서도 능력이 출중한 사람이 등장하면 추앙받는가 하면 시대에 뒤쳐진다 싶으면 외면당하는 게 현실이다. 더욱이 지금의 경쟁 사회에서는 타인의 실수와 자신의 월등함을 극명하게 보여줘야 높은 평가를 받아 경쟁력 있는 사람이 되는 동시에 성공적인 미래를 보장받는 생존 방식을쫓아서 살고 있다.
다산의 '목민심서'가 지방의 실상을 파악하고 실천에 대비해야 할 필요를 피력한 데는 조선시대의과거제도가 현실에 맞지 않는 사실 때문이었다. 그 당시 수령을 뽑는 선발 기준은 경전에 대한 이해도와 문학적 표현력으로 합격이 결정되었다. 그러다 보니 지방관으로서 직접적으로 직무에 필요한 제반 행정과 조세 제도, 형법의 세목(내용들) 같은 실무에 대한 이해는 요구되지 않았던 거다.
과거시험에서부터 약점은 곧 수령으로서 실무 파악 및 처리 능력의 미숙함으로 이어져 오래 동안 실무를 맡아 온 하급관리와 인사들에게속거나 휘둘리는 일들이 왕왕 발생하게 되었다. 그렇게 직무능력이 미숙한 틈을 타고 유착과 비리가 기성을 부리는 환경에서, 결국 백성이 고통받게 되니 수령이 지방의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고 대비할 목적으로 '목민심서'를 쓰는 게 당연했다.
#4다산은 지방관의 업무 사이클을 이해하기 쉽게 체계적으로 기록했다.목민심서는 수령의 처음과 중간 과정과 끝을 조목조목 나열해서, 수령이 지방관으로 나가는 부임에서부터 임기를 마치고 돌아가는 해관으로 마무리하는 구조로 기록했다. 그렇게 12부 각6조씩 해서 72그루의 나무들이 '목민심서'라는 무성한 숲을 이루었다고 보면 될 것 같다.
[부임-3기와 6전 - 진황(추가) - 해관]
*3기에는 [율기. 봉공. 애민]으로 수령이 도덕적으로 자신의 마음과 태도를 돌아보고 유지할 수 있도록 썼다. *6전에서는 조정(국가)의 편제(체제)와 동일하게 [이. 호. 예. 병. 형. 공]여섯 편으로 나누어 행정과 사법의 제반 업무를 위해 참고할 수 있게 했다. *추가로 [진황]을 넣어 흉년과 화재, 수해 등 재난에 대비한 구휼(구제) 방안을 기록했다.
《목민심서》 아포리즘
1부(부임)
2조. 행장을 꾸릴 때, 의복과 안장을 얹은 말은 본래 있는 그대로 써야 할 것이며 새로 마련해서는 안 된다. (목민하는 데 검소함과 청렴을 힘써야 한다.)
3조. 전관에게 두루 하직인사를 할 때는 감사하다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전관은 국가를 위해 뽑은 것이므로 사적인 은혜로 생각하는 것을 조심하라.)
2부(율기)
6조. 절약만 하고 쓰지 않으면 친척이 멀어진다. 기꺼이 베푸는 것은 덕을 심는 근본이다. (지나치게 인색하지 말자)
3부(봉공)
2조. 확고히 지킬 것을 지켜 흔들리지도 말고 빼앗기지도 아니하면, 곧 인욕이 물러나고 천리가 흘러 행할 것이다. (꼭 지켜야 할 것을 지키면 욕심은 사라지고 세상은 순리대로 돌아갈 것이다.)
4조. 학문의 전체 맥락을 모르고 한 구절을 따다가 글을 써먹는 것이 속된 벼슬아치가 되는 것이다.
4부(애민)
1조. 정말 지킬 것은 없어지고 나서야 그 필요를 확인하게 된다. (사람들이 염려하는 것은 결국 '비용'이다. 지켜야 할 것을 지키면 비용을 낭비하지 않는다.)
6조. 백성을 다스리는 일은 어진 마음에 있지 행정능력에 있지 않다.
5부(이전)
5조. 옆에 가까이 있는 사람들이 하는 말을 그대로 믿고 들어서는 안 된다. 그냥 부질없이 하는 얘기 같아도 모두 사사로운 의도가 들어 있다.
6부(호전)
5조. 노동력을 부담 지우는 것은 신중히 하되 되도록 줄여야 한다. 백성들에게 이로운 일이 아니면 해서는 안 된다.
7부(예전)
3조. 목민의 직분은 백성을 가르치는 일일 뿐이다. 농지를 고르게 배분하는 것도 장차 백성을 가르치기 위함이요, 부제와 요역을 고르게 하는 것도 장차 백성을 가르치는 것이요, 고을을 설치하고 수령을 두는 것도 장차 백성을 가르치기 위함이요, 형벌을 밝히고 법규를 갖추는 것도 장차 백성을 가르치기 위함이다. 모든 정사가 정비되지 않아 백성을 가르치는 일을 일으킬 겨를이 없었으니 이 때문에 백대에 이르도록 좋은 정치가 없었던 것이다. (제도를 세워 백성을 위한 정치가 좋은 정치이다.)
10부(공전)
6조. 제조하는 일을 시키더라도 욕심과 더러운 속셈이 기물에까지 미치게 해서는 안 된다. (욕심 때문에 기준에 미달되거나 불량한 물건을 만들지 않도록 해야한다.)
대학을 졸업할 때쯤. 아버지께서 시골 배추밭 중간에있던 시골집 다섯 가구 중 한 채를 사셨다. 어쩌다가 백 평도 넘는 넓은 집에서 살게 되었는데, 집에서 논두렁을 따라 50미터 정도 걸어가는 곳에 태화강이 흐르고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그런데 어느 여름날 홍수가 나자 논밭이 잠긴 건 물론이고 강둑이 터질 위기가 닥쳤다. 마을 주민들이 나와 한 밤중까지 강둑 앞에 흙 포대를 쌓았고, 강 수위가 아슬아슬하게 넘치기 전에 비가 그쳐서 겨우 위기를 넘겼지만, 마당은물론이고 무릎 높이의 마루턱까지 차올랐던 흙탕물이 빠지자 물에 젖은 가재들. 장독. 닭장까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집을 복구하면서 완전히 소실되지 않았다는 안도감과 미리 대비하지 못했다는 자책하는 두 마음이 뒤섞여 나왔었다.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어야 대비할 곳을 발견할 수 있을 텐데, 이 책이 그 두 가지를 살펴야겠다는 동기를 준 것 같다.
사극 대장금에서 "제 입에서 고기를 씹을 때, 홍시 맛이 났는데... 그냥 홍시 맛이 나서 홍시라 생각했던 것인데..."라고 했던 어린 장금이의 말 뜻은 '홍시를 맛본(경험) 사람의 증언이 더 정확하지 않겠습니까?'라고 반문한 것이었겠지요.
제 앞에 경험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어도 취하지 않아서 흘려버린 기회에 대한 아쉬운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목민심서'를 읽으려고 도서관 서고에서 책을 꺼냈다가 집어넣기를 몇 번을 시도하다가, 원전 대신 다산의 독서법이나 자녀들에게 쓴 편지에 관한 책을 읽는데 그쳤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는 '고전 읽기'라는 목표를 정하고 용기 내어 박제가의 '북학의'를 시작으로 두 번째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읽었습니다.
'목민심서' 탐독은 지적 경계선에 미치지 못한 저의 발돋움이자 고전에 다가가는시도였고. '왜 읽는가?'라고 이유를 찾으려 하기보다 '읽은 뒤에 무엇?'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감사하게도 장금이가 홍시를 맛본 것처럼... 저도 맛을 본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