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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Apr 30. 2022

김치 맛은 "짠맛"에 있다

짠맛에 길들여지신 아버지를 이해하며


이번 주초 사흘 밤마다 사혈침으로 열 손가락을 찔러 검붉은 피를 쭉쭉 뽑아냈다. 먹은 게 체하면 피가 검게 보이는데 내겐 "죽은 피"로 통한다. 산 사람 몸에서 즙짜듯 피를 뽑는데 아깝지 않은 이유가 바로 "죽었다"라고 선고된 혈액을 제거하기 때문이다. 의학계에서 뭐라든 적어도 내 몸은 가정의학이랄까, 자가진단에 가까운 이웃에서 건너 건너온 사이비스러운 의식이 직빵으로 통한다.



자주 하면 일주일에 다섯 번 정도 매번 한 시간 이상 통화하는 서울에 있는 동생이 나의 몸속 장기에 이상이 생긴 건 아닌지?라고 의심자, 나는 기다리지도 않았으면서 바로 "아니야~! 장기는 괜찮아. 병원 안 가도 괜찮아"라며 대응했다.

 *동생은 침에 대해 일가견이 있고 자격증도 있어서 귀담아 들어도 좋을 내용이 많지만, 이번 체기는 그냥 내게 익숙한 거라서... '아, 이건 장이 안 움직이는 거군. 덥지도 않은 오히려 쌀쌀한 날씬데도 식은땀이 줄줄 나네? 영락없는 소화 안돼서 체한 거다.'라는 자가진단을 내렸다. 나의 판단이 옳았음을 입증하듯 침으로 손가락들을 찌르자 검붉은 피가 떡하니 나와줬고. 답답하던 속도 편안해지기까지 했으니까. 굳이 부채표 소화제 덕분만은 아니라고 본다.


쳇기로 피를 조금 뽑은 게 짠맛이랑 뭔 상관이 있었나 싶어서 서두부터 나는 "사혈침"을 뽑아 들었다.

* 사혈침이 없었던 시절에는 솜이불이나 구멍난 옷가지랑 양말 기울 때 쓰던 바늘을 이용했었다. 가끔 손에 가시가 박힐 때도 바늘을 쓰기에 그것의 활용도는 바늘 주인 하기 나름일 거다. 어쨌든, 사혈침 소유자가 된 후로 나는 내 손을 찌르기에 대해서 냉혈인처럼 주저없이 그냥 찌른다.





문제는 나흘 째 되던 목요일이었다. (코로나 이후 출근하는 날보다 건너뛰는 날이 많아진 관계로 쉬는 목요일) 아침부터 두통이 딱따구리가 나무를 쪼아대듯 이어졌고, 목구멍에서 열기운이 오르락내리락거려서 기분까지 언짢아지기 시작했다. 순간, 정말 뜬금없이 '코로나?' 이 세 단어가 떠오르자마자 갑자기 이년 넘게 눌렸던 공포심이 확 덮쳐왔다. (원수라면 2년 하면서 머리끄덩이 쥐어뜯고 싸웠을지도 모르지만) *연로하신 부모님에게 코로나가 덮치면 나는 감염병 전파자로서 이 집안에서 죄인 수준의 취급을 당할지도 몰라?!  *아니, 나는 암 수술을 두 번이나 받았던 인물로 지금도 앞으로도 약을 계속 먹어야 하는데... 곧 코로나 기사에 관용어처럼 박힌 "기저질환자"에 분류될지도? 최근에 오미크론은 기침이 한 달 이상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들었는데.. 아ㅠ 기침. 참기 힘든데...  *뭐야. 내일 점심 약속도 잡혀있는데. 어디서부터 설명하는 게 좋지? 월요일부터? 아니면, 엊저녁부터? 내 상태가 영 이럴 걸로 조짐이 보였다고? 하ㅜㅜ 아플 때 해야 할 게 많아지는 것부터 버겁다.

토요일 새벽부터 나이롱환자가 되고 보니 목요일의 기분을 볼드체로 처리하긴 민망한 두려움인 게 밝혀졌다. 



코로나 검사 음성 결과와 함께 앞에 증상은 몸살감기임이 확인됐다. 천만다행이다. 피해 가는 게 상책이니까. 삼일 치 약 처방을 받아와서 먹고 자고 계속 자며 감기 증세가 아니라 약 성분이 날 잠으로 밀어 넣는 기분이 들었다. 긴 잠을 자느라 끼니를 건너뛰고 입맛도 사라지니 죽으로 장 마사지하는 정도로 채웠다. 약 기운으로 깨지 않는 비몽사몽 간 잠도 잠이지만, 내 몸에 수분을 배출하는데 땀으로 머릴 감은 듯 물이 떨어졌다. 당연히 갈증이 심해져 물을 자주 마시게 되니 화장실도 계속 들락거리고...  이래서 몸살이 낫겠나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탈수증에 소금을 먹는 거구나 싶다. 땀으로 옷을 적셨으니 그럴 만도 하지. 짠맛에 대한 이야기가 이렇게까지 이어질 거라곤 예상치 못했다.





이 와중에 아버지의 처방은 전복죽이었다. '그래! 아무 죽이라도 만들어 먹을까 싶던 차에. 감기에 입맛도 없으니. 울 아버지가 어인 일로 딸내미 아프다고 죽을 끓여주시나?' 과유불급 일종의 진리에 가깝다고 믿고 싶다. 아버지가 전복죽을 날 위해 끓여주신다는 기쁨도 잠시. 과유불급이라는 도덕률을 깨뜨린 건 "들깨"였다. 전복죽에 갈색 버섯. 주황 당근으로 색을 가미한 것까지 좋았는데... 최종적으로 들깨를 두 스푼 듬뿍 넣으시는 게 아닌가.  "나 들깨 싫어한다고~~. 죽에다 웬 들깨를 넣는데? 그것도 전복죽에 ㅠ"  생떼를 부렸지만 아버지 맘대로 전복죽은 만들어졌다. 소금 간을 하시겠다기에 "죽은 내가 먹을 건데 왜 간을 아버지가 하냐고~~?" 두 번째 생떼는 내가 이겼다. 들깨죽이랄지 전복죽이랄지 콜라보죽을 맛있게 먹은 저녁. 밤 깊은 시각에 들깨의 기름기로 배탈이 났다. 그렇게 탈이난 배는 하루를 감기랑 겹쳐 나를 방구석에 붙들어놨다. 탈수에 배탈까지 내 몸속에 짠 성분의 눈금 게이지가 줄어들었던 걸까.





금요일 오후 한 시가 넘어갈 즈음. 짭조롬한 김치를 먹고 싶었다. 영상에서 얼갈이김치. 오이김치를 검색하는 동안 왠지 도망갔던 입맛이 오고 있음을 알아챈 나는.  오이를 다듬고 양념을 버무려 오돌오돌 씹히는 식감에 기분까지 좋아지는 계획된 미래를 그리다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시장가방을 들고서 맘먹은 대로 오이 8개. 얼갈이 한 단. 무 한 개. 부추 조금 2천 원어치를 사들고 와서 김치를 담기 시작했다. 김치 담는 법 영상 하나를 정해서 고. 스톱으로 반복 시청하며 완성한 오이김치. 그 맛에 대한 아버지의 평가는 약 20점으로 느껴졌다. "니맛도 내 맛도 없다!" 게다가 "너 혼자 먹어"라고까지...  울 아버지 맞나 싶었다. 근데 평소와 다르게 반응한 건 나였다. '혼자 먹지 머' 하지만... 낙제점 평가에 얼갈이김치를 당장 만들면 망칠 것 같아서 어지러운 감기약 기운에 다시 수면 모드로 들어갔다. 푹 잔 것 같아 깨어보니 저녁 일곱 시 반이 넘은... '내가 죽을 먹는다고 해도 그렇지 ㅠㅠ;; 저녁 먹으라고 깨우지도 않고. 섭섭하네~'




 아까 씻어둔 얼갈이를 어떡하든 맛있게 만들어보자. 오이김치에서 받은 설움을 만회하려면 우선 기도하자. "맛난 김치로 가족 모두가 행복해지길 바랍니다"  

신중하게 영상 따라 그대로 내 손이 복붙 하듯 잘 만들기를 간절히 바라며 얼갈이김치 만들기를 이어가다가.  한 가지 깨달음!

"저 옛날 우리 선조들이 김치를 왜 갔겠니? - 저장해서 오래 먹을라고.   그럼 무슨 재료가 가장 필요했겠니? - 소금이지." 유레카~~

"그래서인가? 김치 속 짠맛이 부족해서 오이김치에 저평가를 받은 건가? 그러면, 적당히 짠맛을 넣고 얼갈이김치를 만들자." 내일 아침 밥상에 올라가면 맛있게 먹게 되기를 기대하며... 당장 내 입에는 맛이 괜찮은 얼갈이김치에서 김치 맛은 "짠맛"에 달려있다는 기본을 찾은 거라면 좋겠다. 잠깐 동안 아버지의 까다로운 입맛에 욱했던 나 자신을 돌아보며 아버지의 입맛에 맞는 음식을 자주 하면 좋겠는데...



p.s. 오전8:00

김치맛 평가될 토욜 아침. 잠깐 새벽기도 갔다와서 엄마에게 "얼갈이김치 해놨는데?" 운을 띄웠는데... 이럴수가. 오리고기 구워드시느라 다른거 안 드셨단다. 힝..  점심 때가 와야 되겠네.  난 얼른 부족분의 잠을 더 자던가 해야겠다.



p.s2  12:13

누룽지에 얼갈이김치를 곁들여 먹고, 운동화 씻고, 방에 들어온 사이. 부모님이 점심을 드셨다. 잠시 후~ 설겆이하는 엄마 옆으로 가서 "엄마, 김치 맛 어떻던데? 아버지는 뭐라 그랬는데?"  "맛있네!" 그러셨다.  음~~  다행이네. 진짜 딸인데 며느리가 된 기분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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