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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북청로 로데 Sep 22. 2020

《양치는 언덕》

미우라 아야코 지음

"인간이란 완전하지 못해요.
언제나 무슨 잘못을 저지르고 있어요.
잘못을 저지르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인간이에요."   (인용)


이른 아침 아파트 근처 시장 골목을 지나다보면 마주대할 수 있는 모습들이 있다. 가게 문 밑으로 신문을 집어넣는 신문배달원, 을 돌돌말아 최대한 크게 보따리를 묶어 봉고차에서 물건을 내리는 야채 장사, 수족관에 신선한 해양수를 횟집마다 공수하는 트럭 운전사, 공단과 회사로 출근하기 위해 통근버스를 기다리며 줄을 선 직장인들, 잰 걸음으로 건널목을 건너며 버스 시간을 확인하는 부녀들의 모습은 매일 비슷한 시각과 장소에서 만날 수 있다.


<양치는 언덕>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살아가는 모습 역시 내가 마주치는 사람들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림과 술과 여자를 좋아하고 분방한 삶을 살아가는 료이치와 그의 아내 나오미, 이들의 가족과 친구, 애인과 고교시절 선생의 이야기 절반을 읽고난 첫 감상은 '막장'이었다. 막장 같은 세상을 향해 작가가 던지고 싶은 메시지를 발견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으로 책을 읽었다.


이 책은 '우리에게 여전히 사랑과 용서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왜 그 '사랑과 용서'가 필요한가는 독자 개인이 찾고 해석해야 할 과제로 떠안아야 한다. 작가 미우라 아야코는 '사랑과 용서'를 통해 인간의 구원('구제' 혹은 '건져냄'이라고도 할 수 있다)을 쓰려고 했다.


삿포로에 기다미즈여고(라일락 여고)에 전학 온 나오미는 아름다운 소녀이지만 누구에게도 마음을 열지 않고 수업시간에 창밖만 내다보며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다. 게다가 뚜렷한 이유 없이 불만족을 갖고 있는 학생이다. 영어 선생인 다케야마 데쓰야는 나오미의 무관심한 태도를 안타깝게 지켜보면서 남몰래 그녀에 대한 사랑을 키운다.

한편 나오미의 친구인 교꼬의 오빠이며 다케야마의 친구이기도 한 스기하라 료이치는 나오미의 아름다움에 반해 적극적인 애정 공세를 퍼붓는다. 나오미는 료이치의 인간 됨됨이를 보지 못하고 그에게 강하게 이끌리고 마침내 결혼을 결심하기에 이른다.


목사인 아버지 고스케와 어머니 아이코는 료이치와 결혼하겠다는 나오미와의 대화에서:

"자신에게 충실하다니..... 어떻게 말이냐?"
"기쁠 때는 기쁘게, 슬플 때는 슬프게 사는 거예요. 자기감정을 숨기지 않고 말이죠. 료이치 씨는 그래요. 료이치 씨의 순수함이 좋아요."
"얘, 나오미야! 네가 말하는 자기 충실이란 감정에 충실한 걸 말하는 거니?" 설거지를 하던 (어머니) 아이코가 말했다.
"그래요."
"자기라는 것 안에는 감정만이 전부라는 듯한 생각이로구나. 자기의 의지나 이성이나 신앙에 충실한 것도 자기에게 충실하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오미는 머뭇거렸다. "그렇지만 그중에서도 자기감정을 숨기지 않는 것이 제일 순수하다고 생각해요."

-116쪽에서 인용-


"사랑한다는 건 상대방을 살리는 거야." 아이코가 거들었다.
"그래, 너는 과연 스기하라 군을 살릴 수 있겠니? 아버지가 보기에 그 사람을 살린다는 것은 무척 어려울 것 같더라. 나오미, 네 힘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거야. 잘못하면 죽여버리게 돼."
"어머! 너무하세요. 아버지, 저도 한 사람 정도는 사랑할 수 있어요."
"그래? 사랑한다는 건 용서하는 것도 돼. 한두 번 용서하는 게 아니라 끝없이 용서하는 거야. 너는 스기하라 군을 용서해가면서 살 수 있겠니?"

-117쪽, 118쪽에서 인용-


마침내 나오미는 료이치와 결혼식 없이 동거를 시작하지만 점차 료이치의 인간 됨됨이가 드러나면서 실망과 좌절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된다. 료이치와의 불행한 생활을 이어가면서 나오미는 부모님과의 대화를 떠올리며 자신이 점점 냉정한 사람으로 변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저도 한 사람 정도는 사랑할 수 있어요.'

'사랑은 살리는 거야'라는 말은 감정만의 사랑이 감당할 수 없는 차원의 사랑이라는 의미였다고 본다. 나오미의 어머니 아이코가 했던 '자기라는 것 안에는 감정만 있는게 아니다.' 라는 말에서, 온전한 자기 자신과 자신의 됨됨이는 감정만으로 대표할 수 없고 이성과 의지에 대해서도 충실해야 하는 것이다. 나오미는 순수함에 대해 자신의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것이라고 이해했고 그런 순수함을 동경했지만, 의지나 이성이 결여된채 감정으로의 사랑만으로 료이치와의 생활을 이어가는데 고통스러워한다.


'높은 차원에서 본다면 다케야마 스스로는 분명히 간음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왜냐하면 다케야마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나오미였기 때문이었다.'  - 288쪽에서 인용-

자신의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것에 사람은 이끌리게 된다. 혹시 사람에게 '마음 사용권'이 있어서 그것을 누군가 혹은 무언가에 다 이양한다는 것은 자신의 의지까지 넘겨주는 것과 다르지 않다. 다케야마의 마음이 그랬던 거다. 사랑이라는 말로 위장했지만 사랑이 아닌 감정이 자신의 의지와 이성까지도 송두리째 끌고가도록 허용한 것이다. 다행히 료이치(나오미의 남편이자 자신의 친구)가 폐병을 앓으면서 점점 변하는 모습을 본 후로, 다케야마 자신도 자신의 양심의 소리를 듣기 시작한다.


료이치는 폐병을 앓으면서 나오미 부모님 집에서 지내게 된다. 고교시절 료이치의 동생 교꼬를 양공주라고 놀려대며 무시하던 데루코는 료이치의 애인이 되었다. 게다가 그녀가 그토록 질투했던 나오미가 료이치의 아내라는 것과 료이치에 대한 애착 때문에 쉽사리 그를 포기하지 못했다.

"그럼 대체 어떻게 하라는 거야?" 료이치는 정말 데루코와 끝맺기를 원했다.

'적어도 오늘 밤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대로 돌려보낼 수 없다.' 데루코는 이렇게 다짐했다. (359쪽)

-

-"당신이 다시 가져온 이 브랜디로 이별의 건배나 해요."

"~ 다만 이별주를 마시자는 것뿐이예요."

데루코는 재빨리 평소에 먹던 수면제를 잔에 넣고 위스키를 따랐다.


'이 한 잔의 술로 이 여자와 헤어질 수만 있다면......' 료이치는 잔을 바라보다가 결국 술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말없이 술을 마셨다. 그렇게 수면제가 든 위스키를 마시고 밖으로 나온 료이치는 짙은 안개 속을 걸어갔다. 삿포로에 살아온 지 삼십 년 이렇게 심한 안개를 료이치는 본 적이 없었다.


'졸리다. 왜 이렇게 잠이 오는 걸까.'

'단 한 잔의 술로.....'

료이치는 뽀얀 안개에 싸여 홀로 눈 위에서 죽어갔다. 료이치는 병을 치료하는 동안 그림을 그렸다. 데루코를 마지막으로 만나 관계를 매듭지으려고 집을 나서던 길에 나오미에게 다녀오면 주고 싶은 선물이 있다는 말을 남겼다.

캔버스 위에 놓인 그림에는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가 피를 뚝뚝 흘리고 있었다. 그 십자가 밑에서 그리스도의 피를 맞으며 그리스도를 지그시 쳐다보고 있는 청년의 얼굴, 그는 료이치의 얼굴이었다.
이 책은 인간의 구원(구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료이치에게 어떤 구원이 시여되었는지 알수는 없지만 그는 십자가가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신을 사랑해서 자유분방한 삶을 원했던 료이치는 사실 정직하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알지 못하고 살았다. 그는 나오미와 그녀의 부모님이 보여준 헌신적인 사랑과 용서를 경험하면서 그 바탕 위에서만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 수 있음을 깨달았던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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